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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도 마음만은 풍요로울 수 있을까

by 아를

누군가 그랬다. 우울증은 다 한가해서 그런 거라고,

정신없이 바빠보라고.

누군가 또 그랬다. 먹고 살 여유가 생기니 부자 같은 병에 걸린 거라고.

당장에 먹을 게 없으면 그런 병 걸리지도 않는다고.

아직도 이 시대에 우울증이란 그저 기분이 가라앉고 슬픈 것이라 인식되거나,

함께하면 잠식되니 피해야 하는 존재로 불리곤 한다.

나 스스로도 이미 썩은 꽃잎과도 같은 관계가 있었기에

누군가를 믿을 수도, 안심할 수도, 사랑받을 수도, 사랑할 수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겁이 났다.

또다시 그런 사람이 될까 봐.

나를 지켜주고 싶었다.

나는 직감이 아주 좋다. 물론 매번 맞지는 않겠지만,

그 또는 그녀가 날 피하는지, 외면하고 싶어 하진 않는지, 오해하고 있는 중인지, 나는 매번 느껴진다.

모든 우주의 감각을 총동원한 것 마냥 저절로 빠르게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어쩔 수 없겠지 이미 나는 감정의 병이 든 사람이니까

이 세상 돈이라도 많으면 돈으로 못 고칠 병이 있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고, 하고 싶은 거 다 해 보고, 다 사보면 이런 병쯤 절대 오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내게 말했다.

“무명 씨가... 지금 억지로 일을 하기 싫어하는 건 아닌가요? 무명 씨 환경이 힘들어서 일 거예요.

무명 씨가 지금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돈도 많고, 좋은 남자친구가 있다고 합시다. 그럼 우울하겠어요?”

라고 말이다.

그는 그 말을 하고선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마치 나에게 나도 이러고 산다. 나도 고민이 있다. 사람은 다 그런 거 다와 같은 공감의 말을 해주려고 한 것일까?

그의 말은 이렇다.

“저는 대학부터 친한 여자 동기가 있는데요. 너무 대화가 잘 돼요. 저는 이 친구만큼 잘 맞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여전히 친구로 지내고 싶어요. 하지만 아내가 싫어해요. 제 아내는 너무 철이 없고, 제가 기대기에는 아무튼.. 기댈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에요. 그럴 때마다 친구에게 전활 걸고 싶은데, 아내가 싫어해서 참아요. 저도 외로워요. 저도 너무 힘들어요. ”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무명 씨, 이제 약 용량 올릴 만큼 올렸어요. 그래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제가 더 이상 해드릴 게 없습니다. 만성이라고 생각하셔야 해요. “

난 이럴 때 이기적인 레이더가 발동한 것일까?

아님 내게는 현명했던 것일까?

난 그 병원을 떠나기로 했다. 보통은 다니지 않는다 표현하겠지만, 나는 떠나가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또다시, 쿵 내려앉았었다.

의사마저... 이젠 날 책임져주지 않으려 하는구나.

날 고쳐볼 의지조차 내질 않는구나.

그리고 아내가 싫어하면... 당연히 이성친구와 멀어질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왜 결혼을 했을까 싶었다.

그리고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에게 하는 것이 프로답지 못하다고 느껴졌다.

그 사람은 나와 친밀감이 형성되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나는 아니었고 부부의 일에 관해 비유를 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때 그는 나의 우울을 깊이 들여다보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고민을 늘어놓기 시작했기 때문에 씁쓸했다...

유능하다고 소문이나 예약을 해도 대기시간 기본 1시간 이상 걸리는 곳이었는데...

유명하고 잘 나는 그곳은 나에겐 생각보다 쓸모가 없었다.

나는 이모를 통해 좋은 병원을 곧잘 찾았다.

지금도 잘 다닌다. 의사다운 의사를 만난 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이 너무 그립고, 좋다.

돈, 권력, 경쟁에서 이기는 힘만이 풍요의 삶일까?

‘사’ 자 직업을 가지면 성공한다 했던 나의 세대는 여전히 직업에 대한, 직장에 대한 경쟁과 의식이 존재한다.

어쩌면 이것이 평생 인간의 숙명이자 숙제일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AI가 활약하는 요즘 시대보다는

내가 태어난 90년대 시절이 좋다.

핸드폰이 없어도 좋았고, 유튜브가 없어도 넷플릭스가

없어도, SNS가 없는 그 시대가 그립다.

그 시절엔 돈 없이도 풍요로웠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고, 진짜 마음과 마음을 나누고, 사람과 사람이 표현이 되는 시대였기에 그리고 흙이 잔뜩 있는 놀이터가 그립고, 공중전화박스를 보면 여전히 반갑고

왜 어른들이 본인의 시대를 그리워하고 추억하는지

어렸을 땐 이해하지 못했다.

잘 사는 지금이 훨씬 좋은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이 나에게 향수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시대가 너무도 빨리 변화하는 점 때문이겠지.

난 햇살을 받고, 숲을 거닐며, 바람을 가르며, 자연을 만끽하며 누리고 싶다.

세상에 모든 인간에게 주어지는 Free 이용권과도 같아서 난 이 풍요를 계속해서 붙잡고 놓치고 싶지 않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돈 없이도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풍요로움이다.

그래서 나는 돈 없이도 마음만은 풍요로운 삶을 살기로 했다. 더 많은 것을 바라기보다, 이미 내 곁에 있는 이 작은 풍요를 놓치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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