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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앨리스 Jul 28. 2023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포레누아 케이크

EP.5 마음을 나누는 일


본격적인 무더위의 시작이다.

잠잠하던 숲 속 동네에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내리쬐는 태양 사이로 여우비가 내린다.

잠시 지나간 비에 그새 촉촉해진 흙내음과 짙은 녹음의 향이 바람에 실려온다. 우산 위에 반짝이는 빗방울을 툭툭 털고 나면 머리 위로는 솜사탕 같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흘러가는 것이 아쉬운 여름이지만, 조금만 걸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운 날씨는 아무리 경험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시원한 공기를 찾아 실내로 숨어들어, 추운 날들을 추억하면 조금이라도 시원해질까 싶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나는 크리스마스에 진심이다. 1년의 반은 오로지 크리스마스를 위해 사는 사람 같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올해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낼까를 생각하며, 트리 오너먼트를 만들거나 새로운 인테리어를 구상해보기도 한다.

날이 선선해지기 시작하면 마치 오후 네시에 올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오후 세시의 사막여우처럼 행복한 마음이 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날이 추워지는 11월이 되면 파티의 메뉴를 구상한다. 어떤 요리를 할지, 크리스마스 케이크로는 무엇을 만들지 등의 고민이다. 사실 이것을 고민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구체적인 파티의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너무 설레 소풍 가기 전날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날들이 이어진다.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준비


자, 이제 진짜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는 12월이다.

판타지 마니아인 나는 특히 ‘해리포터 시리즈’의 오랜 팬이다. 이 시기가 되면 한 달 내내 해리포터의 모든 시리즈를 다시 본다. 영화 도입부의 메인 테마곡만 들려와도 온몸에 전율이 일면서, 어느덧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교정 한가운데 서 있는 상상을 하게 된다.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이보다 잘 어울리는 영화는 없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그렇게 설레는 날들 속에서도 할 일로 마음이 분주하다. 커튼을 교체하고, 그 위로 꼬마전구를 달아준다. 벽에는 커다란 리스와 산타클로스 액자, 그와 어울릴만한 분위기의 엽서들로 데커레이션 해준다. 산타클로스 액자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는데, 진짜 바닐라 쿠키 위에 설탕으로 입체감을 준 '아이싱 쿠키'와 슈거 페이스트를 더해 액자처럼 만든 것이다.

또 다른 벽면에는 솔나무 가지를 걸어 전구를 엮어주고, 미리 뜨개질로 만들어둔 오너먼트를 달아준다. 작은 집이다 보니 트리를 들여놓기에는 부담스러워 벽에 걸 수 있는 솔나무 가지로 대신한다.

아직 끝이 아니다. 나는 디테일에 예민한 사람이니까, 작은 분위기 하나 놓칠 수가 없다.

식탁 위 펜던트등의 클래식한 플리츠 유리갓을 벗기고, 크리스마스를 위해 구매한 귀여운 쉐이드로 교체한다.

평소에는 식탁보를 따로 깔지는 않지만, 좀 더 따뜻한 분위기를 위해 손뜨개 식탁보를 덮어준다. 이것도 원래의 용도는 커튼이었으나, 뭐든 응용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다.

그 위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정점인 체크 러너를 깔아준다. 쉐이드와 세트처럼 딱 맞아서 마음에 든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느낌이 진짜 같은 LED 초까지 켜주면 비로소 크리스마스의 인테리어가 완성된다.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합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작지만 성대한 홈파티를 했다. 판나코타 에피소드에도 등장했던 친한 동생인 그녀는, 파티의 유일하고도 귀한 손님이었다.

작은 동거인 때문에 요리는 꿈도 못 꿨지만, 디저트만큼은 직접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작은 동거인을 둘러업고 포레누아 케이크를 만들었다. 퐁신퐁신 구름처럼 가벼운 초코 제누와즈를 굽고, 가나슈 크림과 체리 콩포트를 올려 샌딩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크 커버춰 블록 초콜릿을 갈아 아이싱 된 케이크 표면에 붙여 완성했다.

포레누아 케이크는 그때 처음 만들어봤는데, 크리스마스 파티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케이크여서 정말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요리 대신 피자를 주문하고, 서로 준비한 선물을 교환했다. 그녀는 나에게 핸드크림을, 나는 그녀에게 셀프 심리케어를 할 수 있는 다이어리를 선물했다. 아름다운 마음들이 오고 가서 더욱 따뜻한 하루가 되었다.

아, 잠시 잊고 있던 우리 집의 작은 사람은 그날 처음으로 피자와 스파게티를 맛보았다. 신세계를 만난 듯한 그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이후로 작은 사람의 최애 음식은 피자가 되었다.

리로라는 이름의 산타클로스 인형과 함께 크리스마스 코스튬 복장을 한 작은 사람과 나와 그녀는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눈과 입을 미처 그려주지 못한 진저브레드쿠키도 함께였다.



그 사이 졸려하는 작은 사람을 아쉽지만 반가운 마음으로 꿈나라에 보내놓고, 우리는 포레누아 케이크를 나눠먹었다.

길고 긴 대화와 함께 절반을 먹고 나서야 그녀는 원래 초콜릿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렇게 맛있는 케이크는 처음 먹어 본다며, 한 조각을 더 먹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좋아하지 않는 음식에 극찬을 더해 맛있게 먹어주던 그녀에게 나는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후에 그녀가 다시금 그날의 포레누아 케이크 이야기를 꺼내며 재차 칭찬해 준 것을 보면, 확실히 맛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나 보다.

그렇게 우리의 크리스마스 파티는 아름답고도 반짝거리는 추억으로 남았다.



한 조각의 달콤한 위로


처음 베이킹을 경험했던 날, 나는 대단한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그날 내가 받았던 그 위안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것이었다.


보통 케이크라고 하면 축하와 기쁨이 넘치는 자리에 빠지지 않는다. 주인공을 위해 존재하면서도, 한껏 화려한 모습을 하고 나 좀 봐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케이크를 전문적으로 배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도, 나는 그런 화려함에 더욱 끌렸던 것을 고백한다.

전문 직업인으로서 케이크를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에 급급한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사랑하는 베이킹이 아닌, 철저히 업무를 처리하는 입장이 되어 정성보다 효율이 우선이 된다. 물론 사업이라면 운영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무엇이든 정성을 다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죄책감이 밀려든다.


그때 나는 내가 어떤 마음으로 베이킹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깨달았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받을 사람에 대한 애정을 담아 만들었을 때, 상대 또한 디저트를 통해 진정한 교감을 이룬다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마음을 나누며 달콤한 위로를 전하는 것이 내가 베이킹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지난봄 ART.P예술심리연구소에서 교육생으로 지내는 선생님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포레누아 케이크를 꼭 함께 나누고 싶었지만, 체리철이 다 지나 버려 생체리를 어디서도 구할 수가 없었다. 아쉬운 대로 냉동체리로 대신 콩포트와 데커레이션을 완성했다. 많은 분들과 함께 케이크를 먹으며 삶의 이야기들을 공유했는데, 개인적으로 대화를 직접 나눠보지 못했던 선생님 한 분이 조곤조곤하게 '케이크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네셨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후 나는 그분께 ‘종달새 선생님’이라는 별명을 지어드렸다. 내면에 소녀의 모습을 간직한 선생님에게 딱 어울리는 별명이었다.

얼마 전에는 그분이 나의 글을 다 읽고, 마음이 두근거려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며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선생님을 꼭 안아드리며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우리 모두 반짝이고 멋진 사람들이라고도 말씀드렸다. 아마도, 그날의 케이크 한 조각이 위로가 되어 서로의 마음이 닿아 지금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빌어 그 선생님에게 내가 정말 많이 응원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체리향이 가득한 포레누아 케이크


포레누아(Forêt noire)는 프랑스어로 검은 숲을 의미한다. 그래서 영어로는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라고도 부른다. 이 케이크는 독일에서 가장 처음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독일에서는 슈바르츠밸더 키르슈토르테(Schwarzwälder Kirschtorte)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겉면에 초콜릿을 깎아 잔뜩 뿌린 초코 쉐이빙이 검은 숲을 거닐고 있는 것을 연상시키기도 해서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체리의 제철은 6월부터 8월까지이다. 이때 미국 캘리포니아산 생체리가 수입되는데, 이 기간의 체리는 새콤달콤한 맛을 자랑한다. 겨울이 되면 여름의 체리보다는 다소 맛이 떨어지지만 칠레산 체리를 맛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의 포레누아 케이크에는 달리 선택지가 없으니 설탕 절임인 체리 콩포트를 만들어 사용한다.

콩포트를 만들 때는 생체리를 쓰는 것이 가장 좋을 테지만, 여의치 않다면 냉동체리를 써도 무방하다. 반으로 갈라 씨를 제거한 체리에 설탕과 레몬즙을 넣고 설탕이 다 녹을 때까지만 데워준다. 체리의 새콤달콤함을 더해주는 과정이다. 너무 끓이면 식감이 물컹해지니 주의한다. 여기에 시나몬스틱을 하나 같이 넣어주면 좀 더 고급스러운 맛과 향을 낼 수 있다. 완성된 콩포트를 조금 식힌 뒤 체리 리큐르인 키르슈를 넣고 냉장고에서 반나절 이상 숙성 시키면 풍미가 더욱 짙어진다. 나는 포레누아의 가장 큰 특징이자 성공포인트가 이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 공들여가면 사람이든 음식이든, 깊이가 생기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포레누아는 초코 제노와즈를 사용하는데, 일명 초콜릿 스펀지케이크라고 이해하면 쉽다. 제노와즈는 케이크의 가장 기본적인 시트이면서 가장 까다롭기도 한데, 코코아 파우더가 들어간 초코 시트의 경우에는 난이도가 더욱 올라간다. 볼륨감이 중요한 제노와즈에 코코아 파우더가 추가되면, 가루를 섞으면서 뭉침도 더 많아지고 반죽의 볼륨이 꺼지는 속도가 더 빨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초코 제노와즈를 만들 때는 스피드가 생명이다. 느긋함을 즐기는 나와는 잘 맞지 않아 베이킹 초보였을 때는 제노와즈를 구워야 할 때면 잔뜩 긴장하기 일쑤였다.

지금은 능숙해져서 반죽을 하는데 어려움은 없지만, 이 과정을 통해 하나 깨우친 것이 있다. 우리네 인생도 거품이 가득하면 하루아침에 바닥까지 푹 꺼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중요한 삶의 지침들을 베이킹을 통해 얻는다.


샌딩 크림으로는 휘핑한 생크림에 가나슈를 넣고 섞어 만든 초코 생크림을 사용한다.

초코 제노와즈와 초코 생크림, 체리 콩포트의 레이어로 이루어져 있으니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다. 냉장고에서 하루의 숙성 기간을 거치면 더욱 촉촉하게 맛있어지는 포레누아 케이크. 추운 겨울에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케이크지만, 요즘처럼 무더운 날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기분으로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때로는 축하의 자리에 기쁨을, 때로는 심신이 지친 날의 위로를 전해줄 이 케이크 한 조각으로 당신은 분명 마음을 나누는 일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이다.





CAKE RECIPE

어둠이 내려앉은 크리스마스의 검은 숲, 체리초콜릿케이크 포레누아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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