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夏)

언어의 재이해

by 티후


아래 일련의 과정은, 익히 알고 있는 단어들을


쪼개어 보고 그 온전한 의미를 받아들이는 데에 의의가 있다


어떠한 전문성도, 정확성도 띄지 못함을 앞서 밝히는 바이다.





세상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정말 많다. 초등학교 받아쓰기 성적부터 대학교 학점에 이르기까지 내가 처음 마음먹은대로 일이 흘러간적이 있었던가? 세상에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 중에 가장 피부로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계절의 변화이다. 집에서 엄마가 불러주는 발음을 그대로 받아적는 연습을 한참 하면 조금 오르던 받아쓰기 성적이나, 밤을 새가며 전공책을 돌려보면 조금 오르던 학점과는 달리, 여름이 오는건 좀처럼 어쩔 도리가 없다. 특히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더욱 그렇다.




매년 4월, "이게 봄이야 여름이야?" 하는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눌 때 쯤이면 어김없이 뉴스에선 '금년 역대급 더위 예상. 11월까지 더위 이어질 예정' 같은 반갑지도 않은 기사들이 나오곤 한다. 여름 같은걸 누가 바란다고. 길가에 자란 이름모를 들꽃들과 푸른 싹을 틔우는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봄을 다 느낄 새도 없이, 여름은 그렇게 찾아온다. 여름 이 자식은 자기가 찾아온 걸 시끄럽게도 알린다. 처음엔 귓가에 맴도는 모기들의 앵앵거림으로, 좀 지나면 지붕을 때리는 장마 소리로, 가을이 오기 전엔 귀청이 떨어져 나가는 매미소리로 말이다. 또 여름 이자식은 자기가 찾아온 걸 성가시게도 알린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고, 하루 종일 내린 비가 바지 밑단을 다 적셔버리면 여름인줄 알면 된다. 또 여름 이자식은 욕심이 엄청나서, 봄이고 가을이고 다 싸워서 자기걸로 만들어 버린다. 삼대독자 독불장군 외동아들 처럼. 이젠 5월도, 9월도, 10월도 여름날씨다.




이런 여름이 오는 걸 내가 어찌 할 수 없다는게 참 아쉬울 따름이다. 아무리 달리기를 해도, 책을 읽어도 여름이 좀 늦게 오거나 빨리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어쩔 수 없는 여름이라면, 좀 좋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봄에는 황사가, 가을엔 은행냄새가, 겨울엔 질척한 눈이 있지 않은가? 괜히 덥다고 여름만 미워했던건 아닐까 싶다. 그래, 초여름까진 또 좋다. 친구들하고 계곡에 가 물장구를 치든가, 바다에 가서 옷을 다 벗고 뛰어놀면 금방 지나간다. 늦여름도 또 좋다. 가을이 오기 전에 좀 선선해지는 밤 산책과, 꽁꽁 언 캔 맥주의 시원함은 늦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감상 아닌가? 하지만,, 선풍기를 틀어도 뜨거운 바람만이 나오는 그런 여름은 도저히 좋아할수가 없다. 사람이 가득한 통학 버스의 문이 열리면 풍기는 미지근한 땀냄새와, 장마철 지하철에서 맡을 수 있는 비릿한 비 냄새, 귀에 꽂은 이어폰 마저 날 덥게 하는 그런 무더위 말이다.




한 해를 잘 보내려면 4개의 계절을 온전하게 잘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름은 좀 덜 온전했으면 좋겠는데.. 내가 좀처럼 어쩔 수 없는 것 중에 여름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꽤나 고통스러운 사실이다. 여름 얘기를 아직 여름이 오기도 전인 5월 말에 긴팔과 긴 바지를 입고 하는 이유도, 한 여름엔 좀처럼 좋은 얘기가 나올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여름을 잘 보내는 방법을 소개하면, 난 모든걸 포기하고 여름을 온 몸으로 받아낸다. 한 여름에 10km를 달려버리고 나면 땀을 한 3kg 흘릴 수 있는데, 그럼 그날 하루는 좀 덜 더운 것 같기도 하다. 온 지구가 더운데 나만 시원하게 보낼 순 없는 일 아닌가? 차라리 온전히 더워하기. 이게 내 방법이다. 독자들은 어떤 방법으로 여름을 맞이하는가? 좀 현명한 방법이 있다면 꼭 알려줬으면 한다. 온전히 덥기만 하다가 온 몸이 익어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1화의구(疑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