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自我)

언어의 재이해

by 티후

아래 일련의 과정은, 익히 알고 있는 단어들을

쪼개어 보고 그 온전한 의미를 받아들이는 데에 의의가 있다

어떠한 전문성도, 정확성도 띄지 못함을 앞서 밝히는 바이다.




서론


자아(自我)란 무엇인가?



지적 허영심의 충족에 유명한 이들의 말을 옮기는 것만큼 적당한 방법은 없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사람의 심리는 이드(원초아), 에고(자아), 슈퍼에고(초자아)로

나뉘어 있으며 그중 자아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 본능의 욕구인 이드의

무분별한 욕구를 통제하고, 현실과 조화시키려는 욕구이다.



네이버 국어사전: 대상의 세계와 구별된 인식, 행위의 주체이며,

체험 내용이 변화해도 동일성을 지속하여,

작용, 반응, 체험, 사고, 의욕의 작용을 하는 의식의 통일체



자, 지적 허영의 충족은 다 했으니 나만의 이해를 해보자.



스스로 자 自, 나 아 我

초등학교 1학년 때 땠던 한자 9급의 실력을 빌려보면

'자기 자신'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자아에 대한 어떠한 서술에 앞서,

'자기 자신'의 범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어디까지가 '자기 자신' 인가?



1. 내가 하는 모든 사고와 행동

2. 사회적 동물로써 타인과 주고받는 사고와 행동

3. 나 혼자 있을 때 하는 사고와 행동

4. 나의 글

5. 타인이 읽을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글

6. 공적인 자리에 나가 읽을, 평가를 당할 예정의 글



넓은 의미부터 좁은 의미로 나름 정리해 봤는데,

사고와 행동보단 글이 좀 더 나의 생각의 집합이라고 생각해서

아래 3개의 항목이 글이 되었다.

난 아직 4번과 5번 사이에서 고민하는 중이다.



독자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난해 단풍이 막 물들기 시작할 즘,

내가 혼자 좋아서 쓰는 글과, 타인이 읽을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글 중

무엇이 진짜 나일까? 하는 고민을 했다.



당시는 굉장히 즐겁게 읽었던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학교 비평문 공모전에 나갈 때였다.



달리기와 좋은 음악과 삶이라는 주제를 엮어 쓴 한 편의 회고록을 그저 즐겁게 읽는 것과,

그 감상을 나의 말로 풀어서 쓰는 것과,

그 감상을 누군가 읽고(수 십 년을 글을 쓴 어른들이) 평가를 내린다는 사실은

상상 이상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일관된 흐름으로, 타인이 읽기 좋게, 문단의 분량은 적절하게, 시의적절한 주제를 담아,

같은 생각들이 글을 쓰는 내내 날 괴롭혔기 때문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나열하듯 토해낸 평소의 글을 쓰며,

글쓰기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난

새로운 '나'와 '나의 글'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일종의 부조리였다.



그러다 최근 한 블로그에서

'날것의 기록이 항상 좋고 나다운 기록일까? 다듬는 것 자체가 문제의 본질은 아니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라는 문장을 만났다.

이 분도 다른 블로그의 글을 보고 얻은 인사이트를 정리한 것이었는데,

결국 편집의 주체도 자신이라면 글은 그 자체로 나를 더 잘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말이 내게 주는 인사이트 또한 매우 컸다.



타인이 읽을 것을 염두에 두고 글을 작성하다 보면

수많은 검열과 검증을 거치게 된다.

표현에 이상한 부분은 없는지, 누군가 불편해할 글은 아닌지,

맞춤법은 올바른지, 나의 생각이 과하게 드러나진 않았는지 등의 채점 표와 함께 말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던 초기엔 이런 채점 표를 한 손에 들고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부끄럽고 나답지 못한 일이란 생각이었다.

하루키나, 헤밍웨이 같은 위대한 작가들이

채점 표를 들고 글을 쓸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을 쓰는 과정에서 퇴고는 필수적이다.

초고를 쓰는 것만큼이나,

사실 초고를 쓰는 것보다 200번은 더 중요한 과정이 퇴고이다.

'타인이 읽을 것'이라는 사실 자체가 퇴고의 기준점 중 하나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또 내가 타인에게 부여하는 의미와 역할에 따라 그 기준점이 달라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5. 타인이 읽을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글 또한 '나 자신'이다.


또한,

날 것 그대로의 내 글을 세상에 내어 놓는다면

이는 그저 배설이나 배출에 불과할 것이다.

어떠한 흐름과 맥락 없이, 어떠한 도덕적 가치 판단 없이

행동과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버거워 하듯

퇴고 없이, 일종의 검열 없이 배출된 글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읽기에 버겁고, 무겁기만 할 뿐이다.



예를 들면,

난 글을 쓸 때 쉼표를 너무 섞어서 쓰는 습관이 있다.

지금도 바로 위 문단의 쉼표를 4개나 지워낸 상태이다.

나의 글쓰기를 늘 도와주고, 응원해 주시는 교수님의 조언에 의하면

정말 그러한 의도가 있다면 그래도 좋으나, 과한 사용은 글의 가독성을 떨어트릴 수 있다.

그런 이유라면 충분히 쉼표를 지워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1,2,3의 '자기 자신'은 온전한 '나' 인가?

나의 의견은 '충분히 그렇다'이다.

누군가의 행동은 오랜 사고의 결과물이며

그 행동들이 모여 한 인간의 사고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론



난 내가 하는 모든 사고와 행동, 타인이 읽을 것을 염두에 두고 작성하는 모든 종류의 글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일련의 도덕적 가치 판단과, 약간의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고 하는 모든 행위들 말이다.



다만, 비대해진 자아와 이에 수반되는 모든 사고와 행동들을 조심하고자 한다.

내 판단의 근거와 가치관이 타인의 그것 위에 있으며, 나의 것보다 가벼운 것이라 여기지 않으려 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생각과 말을 '배설'하는 인간보다 더 혐오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자아에 깊이 빠져, 타인을 가벼이 생각하는 인간들을 자아도취, 혹은 나르시시즘이라고 부르던가?



글 전체를 돌려보며 퇴고를 거쳐야만 할 것 같다.

글의 흐름이 일관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위 문단도 너무 폭력적인 것 같아 순화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엔 좀 날 것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



독자는 어디까지를 '자기 자신'으로 정의 내리는가?

자신의 생각과 행동, 말과 글이 타인의 앞에서 전혀 다르다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표리부동이라는 사자성어의 어감이 너무나 표독스러운 탓에,

표리부동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정말 큰데,

사람은 누구나 겉과 속이 다르다.


생각하는 그대로 말로 뱉어내는 사람들만 세상에 산다면,

단 15일 안에 지구는 전쟁으로 멸망할지도 모른다.



아, 또 쉼표를 너무 많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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