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파수는 23.426 헤르츠. 보이는 라디오 <리디오 read-io>를 시작합니다.
삶은 '?'이다.
저는 매일 블로그에 일상을 기록하고 있어요. 하루의 기록은 간단하지만 이 기록들이 쌓여서 일 년 치가 쌓였을 때, 자리에 앉아 일 년의 기록을 몰아서 다시 읽어보면 그 해의 전반적인 기분과 생각이 잘 드러나요. '올해는 제법 즐거웠구나.', '올해는 작년에 비해 좀 힘들었네.'
2023년도 벌써 4분의 1이 지나가는군요. 얼마 전까지는 지루해 미칠 것 같았습니다. ...지루하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뭘 해도 재미가 없었습니다. 아무것에도 흥미가 느껴지지 않고, 아무 일에도 흥이 나지 않았어요. 저는 재미가 정말 중요한 사람인데 말이에요!
번아웃일지도 모르고, 평소 주변 도파민 자극이 지나친 탓에 자극에 무뎌진 걸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유가 어찌 되었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제가 어느 날 일어나자 마자 너무 재미가 없다고 엉엉 울어버렸단 겁니다. 아무 원인도 없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너무너무 지루했어요. 이런 적은 처음이라 울면서도 당황스러웠죠.
그때의 저는 지쳐있었을까요? 어쨌든 생계는 책임져야 하니 바깥세상을 무감하게 대할 수 있도록 마취약 맞은 것 마냥 지친 나를 모른 척 한 걸까요? 올해의 기록을 모두 쌓고 다시 읽어볼 때, 저는 올해를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요?
1. 삶은 행복이다.
사람들이 삶을 보는 관점은 다양합니다. 누군가는 도전의 대상, 누군가는 경멸하고, 또 누군가는 사랑해 마지않고, 혹은 그저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가기도 해요.
저는 인생을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삶의 자잘한 것들에 자주 의미를 부여했어요.
'아침에 해가 따뜻하게 빛나서 행복해.', '버스가 빨리 와서 행복해.', '커피를 얻어 마셔서 행복해.'
정말 자잘하죠? 행복한 인생을 위해선 매일 행복한 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성격상 생각이 많은 편이고, 워낙 어릴 때이다 보니 감정의 폭이 커서 자주 들떠있던 탓이기도 해요, 하하.
2. 삶은 고통이다.
그렇지만 나이를 먹으며 이리저리 치이고 저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무감해지면서 인생이 정말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인지 의심이 들더군요. 행복이란 목표를 얻기 위해 걸어가는 길이, 그 길을 걸어야 할 나의 몸뚱이가 너무 지쳤고 또 무기력했습니다.
마음도 몸을 따라 건조해졌어요. 해가 들지 않는 날은 날씨를 따라 우울해졌고, 버스를 눈앞에서 놓치면 불평했고, 내 돈 주고 사 마신 커피가 맛이 없으면 돈이 아깝다며 속상해했습니다.
행복을 찾기 위한 매일의 삶, 작은 행복을 찾아내며 쌓아가는 하루. 이때의 제게는 더 이상 공감 가지 않는 얘기였죠.
"넌 생각이 너무 많아."
엄마가 그러더군요. 사는 건 그냥 사는 거라고. 그렇게 하나하나 의미에 집착하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만 살게 될 거라고. 세상은 의미가 없어도 살아가야만 하는 때가 있는 거라고.
그 말을 듣고 저는 머리를 비우기 시작했습니다. 루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자기 개발서들처럼 그냥 하고, 그냥 받아들이고, 그냥 살기 시작했어요. 그러니 콩깍지가 벗겨진 삶이 보이더군요.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어요.
저는 삶의 새로운 정의를 받아들였고, 이렇게 사회적인 어른이 되었습니다.
3. 삶은 계란이다.
이제 저는 그때보다 더 나이를 먹었습니다. 요즈음은 예전보다 더 생각을 비우고 살아요. 그래서 예전에는 고통이라고 생각했던 삶을 이제는 아예 정의하지 않기로 했어요.
살아보니 굳이 무겁게 생각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우리 인생은 좋았다가 나빴다가 또 좋아지는 일의 반복이니, 당장 벌어진 일에 지나치게 매달리며 너무 즐겁거나 괴로울 필요가 없단 걸 느꼈거든요.
삶은 고통이다? 아뇨, 삶은 계란입니다. 어깨 무거울 필요 없이, 우리 그냥 언어유희나 즐기며 물 흐르듯이 살자고요.
그렇지만 이런 맹숭맹숭한 맛의 삶은 계란에도 가끔은 너무 들뜨고 가끔은 너무 피곤하기 때문에 우리를 달래줄 색다른 이벤트가 필요할 때가 있긴 해요.
그럴 땐 아무 생각 없이 훌쩍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먼 여행지도 좋지만 가까운 곳도 충분히 좋아요. 너무 가까운 곳이라 가보지 않았던 곳이라면 더더욱이요. 익숙하게 느꼈던 곳에서 새로운 감상을 얻는 일은 생각보다 더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랍니다.
저는 얼마 전, 다대포 해수욕장에 다녀왔어요. 일몰이 아름답다고 유명하지만 살고 있는 지역 내이기 때문에 언제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가지 않았던 곳이에요. 저는 그곳에서 석양이 지는 다대포를 만났습니다.
아, 이 팍팍하고 재미없는 삶에 낭만이 어디 있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노을 지는 다대포에 있다고 말하겠어요.
무감한 흑백의 삶에 노을색이 입혀진 것 마냥 황홀하더군요.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덕분에 한동안 이 노을을 회상하며 종종 기분이 좋아졌고요.
제 삶은 이전에도 지금에도 똑같고 그대로예요. 나의 생각만 달라질 뿐이죠. 여러분은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즐겁다면 지금의 삶을 즐기고, 버겁다면 마음이라도 가볍게 가질 수 있기를 바라요. 그저 그렇다면? 그럼 맹숭맹숭한 삶은 계란에 가끔씩 짭짤한 소금 치며 한 번씩 자극적으로 살아봅시다. 뭐, 어때요. 주어진 삶 너무 심각하게 살지 말자고요? 하하.
오늘의 리디오는 여기까지예요. 그럼 우리는 다음에 또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