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파수는 23.419 헤르츠. 보이는 라디오 <리디오 read-io>를 시작합니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문장,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지 않나요? 김용택 시인의 유명한 시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의 서두랍니다. 문장 자체로도 유명한 이 시는 한때 또 다른 의미로도 유명했어요. '달이 떴다고 전화를 줬다'라는 말을 들은 MBTI별 반응 때문에요, 하하.
먼저 말하자면 저는 F유형이에요. 아주 골수까지 F랍니다. 저는 처음 저 말을 듣자마자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달이 떴다고 제게 전화를 주는 그 따뜻한 마음이 순식간에 가슴에 퍼졌거든요. 기분이 좋은 이유를 찾을 필요도 없었죠. 그냥 너무 좋은 거예요!
하지만 T유형은 달랐습니다. 제 주변의 T들은 모두 "왜? 달이 떴는데 왜 전화를 주는데?"라며 제가 느낀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달이 떴는데 전화를 준 맥락만 찾더군요. 그리고 저는 그런 T들을 이해하지 못했고요. "아니, 달이 떠서 전화를 준 건데 왜 또 그걸 왜냐고 물어보냐."
그렇게 문장 속에 담긴 따뜻한 감정을 먼저 느끼는 F와 문장의 맥락을 먼저 이해하고 싶은 T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꽤 재밌는 시간이었어요. 여태까지는 그냥 감정을 느끼기만 했을 뿐, 왜 이런 감정이 좋은지 싫은지는 잘 생각해 보지 않았거든요.
"예쁘게 뜬 달을 보며 기분이 좋아지고, 그런 달처럼 내 기분을 좋게 하는 네가 함께 생각이 났어. 이 예쁜 달을 나만 보긴 너무 아쉬우니 사랑하는 네게도 달을 보여주고 싶은 거야. 맛있는 걸 먹으면 좋아하는 사람 생각이 나고, 그 사람에게 먹여주고 싶은 마음처럼 말이야."
벅차오르는 감정의 맥락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니 T는 그제야 달이 떴다고 전화를 하는 프로세스를 이해하더라고요. 그리고 좋아했습니다. "그럼 달이 뜬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생각이 나서 전화한 거구나!"
혈액형 테스트의 인기가 잠잠해지고 이제는 MBTI가 유행하고 있어요. 이 인기, 언제쯤 사그라들까요? 아직도 MBTI 테스트가 단톡방에 돌고 도는 걸 보면 인기의 절정은 아직도 다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MBTI를 좋아합니다.
이전에는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찾기 힘들었어요. 저는 성향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면 진득하고 깊은 대화를 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드는 감정 에너지가 매우 커요. 그래서 어지간하면 에너지 소모를 택하는 대신 '저 사람은 나와 다르구나'라고 억지로 수긍하는 쪽을 선택하는 편이었습니다. 비록 머릿속으로는 그 사람을 납득할 수 없음에도 말이에요.
하지만 사람의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설명하는 MBTI의 등장으로 인해 저는 성향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이전보다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제는 더 이상 우울해서 화분을 샀다는데 어떤 화분 샀냐고부터 물어보는 사람에게 서운하지 않아요. 그 사람의 사고는 '화분을 샀다는 행위'에 맞춰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더불어 우울해서 화분을 샀으니 우울한 감정을 먼저 알아 달라는 위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답니다.
상대방도 저와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어느 날부터 T의 반응이 묘하게 달라졌어요. '갑자기 왜 이렇게 걱정을 해주니?'라고 물어보니 '너 같은 타입은 감정 공감이 먼저라며?'라고 답하더군요. 상대방도 어떤 화분을 샀는지 궁금하지만 일단 제 감정을 알아주는 게 먼저란 걸 인지하기 시작한 거예요.
뭐, 그렇다고 문제에 해결법을 안 주진 않더라고요. 괜찮아요. 저는 이제 해결법을 주는 게 T의 사랑 방식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요.
MBTI 덕분에 저는 상대의 사고방식을 알고, 이해하고, 서로가 바라는 방식으로 상대를 대할 수 있게 되었어요. 진득하고 깊은 대화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마음의 응어리도 없이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가이드라인 MBTI! 얼마나 고마운가요.
하지만 다들 알고 계실 거예요. 무엇이든 과몰입은 독이라는걸요.
제 주변인들의 MBTI는 다양합니다. 아주 다양해요. 그중에는 저와 MBTI 궁합이 최악인 친구도 있어요. 하지만 우린 아주 가까운 사이랍니다. 궁합이 맞지 않은데도 이렇게 친한 이유를 머리를 맞대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는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 유머 코드가 잘 맞더군요.
그래요. 서로 간의 관계를 이어주는 데에는 수많은 요소가 있기 때문에 MBTI만 맹신할 순 없어요. 그러니 MBTI에 과하게 몰입하는 건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과몰입 하는 순간 상대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 타입의 틀에 맞춰 상대를 욱여넣고, 상대의 의사와 상관없이 내 입맛대로 그 사람을 재단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MBTI를 즐기되 MBTI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진 말자고요.
여러분의 MBTI는 무엇인가요? MBTI 덕분에 이해되지 않았던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던 경험이 있나요? 나와 너무나도 다른 사람을 수용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MBTI, 그렇다고 맹신은 하지 말아요. 사람은 다 제각각이고, 모두에게는 MBTI를 뛰어넘는 각자의 특성이 있으니까요!
수용과 이해가 가득한 하루가 되길 바라며, 다음에 또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