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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앎 Dec 30. 2022

불안고백

불안은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다가 내 존재를 위협하려 불쑥 찾아온다. 의학적으로 취약한 사람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로는 최대한 불안한 사건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몸을 사린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공포는 불현듯 나를 잠식시킨다. 아무리 도망가려 해도 소리 없이 눈앞에 와 있곤 한다.


마음의 휴식이 도움이 될까 싶어 등산을 무리하게 했는데, 덕분에 허리 디스크가 또 말썽이다. 길어지는 통증으로 몸에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다는 예감이 들었다. 피할 수 없는 MRI 검사, 불안 앞에 당도해 있음을 직감했다.


하루에 수 십 명을 상대하는 방사선사는 무심하게 촬영 시간이 20분 정도 걸릴 거라는 말을 건네고 귀에 실리콘 마개를 단단히 끼어준다. 공포를 느끼기에 완벽한, 크고 새하얀 기기에 억지로 몸을 눕혔다. 떨리는 몸으로 심호흡을 한다. 불안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자기 암시와 함께 눈을 감았다.


기기 소음진동을 일으키며 작동을 알린다. 꽂아 둔 귀마개는 단지 큰 소음을 줄이기만 할 뿐 전신으로 퍼지는 공포를 막아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몸 안의 세포 하나하나가 집 채만 한 자기장에 그대로 노출되며 움찔거린다. 괴로운 감각으로 비좁은 통 안에서 눈을 떴을 때 호흡 불수의 상태로 헐떡다. 나는 살고 싶다는 공포를 느꼈고 살기 위해 검사를 중지해야 했다. 이것이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의 일상 단면이다.

     

이전에 강인했던 정신은 어디로 간 것일까. 아니, 강인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게 아닐까. 나에 대한 미숙함에 속아 젊음에 가려진 연함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모른 척했던 건 아니었을까. 살기 위해 강인하다고 믿던 건 아닐까.


이젠 다른 방법이 필요한 때가 온 것 같다. 오랫동안 나를 지킨다고 믿어왔던 강한 척은 약발이 떨어진 지 오래다. 도리어 사람들에게 약함을 고백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것이 적절한 처사 것이. 척추 신경에 깊숙이 주사를 맞아야 할 때에는 믿지도 않는 신떠올렸다. 무신론자 주제에 참 뻔뻔하기도 하다 싶다가도 기도가 필요한 순간에는 어김없이 신을 찾게 되는 한 낯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불안 나를 더없이 작은 존재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지금은 감사한 마음도 새로이 함께한다. 매 순간 스스로 지키기 위한 의지를 확인하며 기 위한 신호라는 것 알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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