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뇌에 위협적으로 불안을 느끼게 하는 존재는 아무래도 타인이다. 아주 어렸을 적, 기본적인 안심을 느끼지 못한 채 성장했거나 자녀의 안전에 무책임한 부모에 의해, 아이의 욕구를 무시한 채 권위적인 태도로 부양한 부모, 그 외 여러 가지 이유로부터 불안은 만들어진다. 아이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안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주로 양육자에게 감정을 맞추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게 되고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면서 살아간다.
이렇게 성인이 되면 내적으로 분노와 적대감이 커지게 된다. 세상이 모두 적이 되는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답게 살지 못하고 항상 타인의 감정에 눈치를 보게 되며 늘 안심을 느끼기 어려운 삶을 살게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삶에서 세상을 향한 분노와 적대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문제는 본인이 이러한 감정 상태라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불쾌한 감정의 근원인 불안이 느껴지기 전에 다른 감정으로 회피하다 보니 자기가 자기를 모르고 살게 된다. 분노와 짜증, 심하면 폭력이 될 수도 있고 신체적 반응이 나타난다면 소화불량, 두통, 근수축이나 땀 분비 등으로 보이기도 한다.
보호와 안전 욕구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며 이것을 충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2차적 유대감이다.
에리히 프롬 『인간의 마음』
2차적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서 스스로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믿을 만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누군가에게 믿을만한, 보호와 안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자신의 불안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나 해결할 노력이 먼저 필요하다.
불안을 해소하는 잘못된 방법으로 소극적 해결법이 있는데 합리화하기, 부정하기, 불안한 장소로부터 도망치기, 의존증이 있다. 그런데 당연히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상태를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올바른 방법으로 적극적 해결법이 있다. 자신이 왜 불안을 느끼는지 원인을 찾을 수 있도록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고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을 위한 확실한 목표와 행동이 있어야 한다. 심리학자 아들러가 ‘인간 무리에 속한다고 의식하는 개인은 불안 없이 살아갈 수 있다.’라고 말했듯 믿을만한 사회적 유대감은 필수적이다.
그 외 여러 방법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방법으로는 의식영역의 확대, 즉 무의식의 의식화가 있다. 뇌과학적 기술이 필요한 접근법인데, 이것은 오랜 시간과 나름의 공부가 뒷받침되어야 자신의 불안을 인지하고 조금이라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성공하려 했을까. 성공과 명예에 대한 욕구가 커질수록 마음에 분노가 함께 커진다는 것을 인지하기에는 스스로에 대해 참 많이도 무지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금이라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놓치지 않으려 한다는 것..
성공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할 때쯤 주변의 시선과 걱정에도 불구하고, 이룬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보기로 한 선택에는 지금도 후회는 없다. 내가 나를 잘 아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지금 가장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