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라면 일정한 업무 루틴이 있을 것이다. 주간업무보고, 메일 수신함 확인, 이슈 모니터링 등등. 내 경우, 아침 루틴이 현장 점검이었다. 설비와 시설이 적법하게 운영되도록 관리하는 것이 업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3만 평 부지를 2시간 정도 걸으며 대기오염 방지시설, 유해화학물질 탱크, 폐기물 보관장을 살핀다. 체크리스트에 특이사항을 기록하고, 이상이 있는 설비는 즉시 보완조치를 한다. 특히 대기오염 방지시설은 정부 시스템을 통해 점검 내역을 보고하게 되어있다. 법규에 명시되어 있는 조항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45대의 설비를 보러 나섰다. 일교차가 큰 초겨울이라 쌀쌀했다. 밤새 차가워진 공기가 지면에 깔려 상층보다 온도가 낮았다. 원래 상공으로 올라갈수록 온도가 낮아지는데 반대였다. 전공책에서 본 기온 역전 현상을 실제로 목격한 날이었다. 대기 방지시설 굴뚝에서 나오는 백연이 아래로 깔렸다. 공장동 옥상문을 열어젖히니, 일곱 대가 동시에 내뿜는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 같았다. 매캐한 냄새도 풍겼다. 보안경과 마스크를 얼굴에 최대한 밀착시키며 걸음을 뗐다. 오염물질이 정화되어 나올 테지만 제거효율이 100%인 설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법적 기준 농도 이하로 배출되지만 인체에 완전 무해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만일 이곳에서 질식사라거나 참변을 당하게 된다면 한참 뒤에나 발견될 것 같았다.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직무라고 누군가는 기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참았던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유해화학물질 저장탱크로 향했다. 날씨로 인해 발산되지 못한 악취가 짙게 진동했다. 화학물질마다 고유의 향이 있다. 이 약품은 생선비린내가 났다. 탱크마다 붙여진 경고표지에는 해골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발암성’이라는 단어도 쓰여있었다. 독성을 유발하는 표적장기는 간이었다. 불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했다. 공무팀 차장님이 방류벽 안에 들어가 점검 중인 나를 향해 한마디 툭 내뱉고 가셨다.
“이 냄새 오래 맡지 마. 몸에 안 좋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이곳에 10년 넘게 계신 분도 있는데 괜찮을 거라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어진 일에 몸과 마음을 다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그래도 오늘은 정시퇴근! 말이 퇴근이지 회사 울타리는 넘어보지 못하는 현실. 약품 냄새가 밴 작업복을 세탁기에 던져두고, 곧바로 공동 샤워실로 직행했다. 아무도 없기에 샤워기 물살이 강한 자리를 차지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밖에 없는 줄 알았다. 모처럼 베르가못 향 바디워시에 심취해 있는데 검은 물체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순간 나는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바퀴벌레였다. 공장에서 무얼 먹고 자랐는지 주먹만 한 크기였다. 살충제를 가지러 나가자니 알몸이었다. 가뜩이나 출입문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어 지나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제자리에서 도무지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집어던질만한 도구도 마땅찮았다. 품고 있던 알이 터지면 수 천마리가 번식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떠올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와줄 사람도 전무했다. 기억에 기대어 보기라도 해야 했다.
‘언니는 어떻게 했었지?’
곧바로 수도꼭지를 맨 끝으로 돌렸다. 물에서 김이 펄펄 나자 샤워기를 양손으로 붙들고 바퀴벌레를 향해 쏘아댔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순간이 어서 끝나길 기도하면서.
험난했던 샤워를 마치고 방에 오니, 공기청정기에 빨간 불이 켜져 있었다. 인근 하수처리장에서 날아오는 계란 썩은 내가 굳게 닫힌 창을 비집고 방안을 가득 메운 것이다. 공장 약품 특유의 생선 비린 내와 환상의 합주를 펼치는 바람에 아찔했다.
베란다 라도 열어두면 나을까 싶었지만 포기하고 말았다. 어제 벽에 붙여둔 바퀴벌레 약이 이렇게나 강력할 줄이야. 바닥에 배를 까고 뒤집힌 시체 행렬이 줄줄이 이어졌다.
‘괜찮아. 살아 움직이는 것보단 낫잖아.’
대신 청소기를 집어 들었다. 누런 벽지와 장판은 아무리 쓸고 닦아도 표가 나지 않았다. 침대 매트리스도 언제부터, 누가, 어떻게 써왔는지 알 수 없었다. 자고 일어나도 온몸이 무겁고 찌뿌둥하다. 삐걱 대는 스프링 소리는 꼭 내 관절이 지르는 비명 같았다.
‘그래도 침대 살 돈 굳었잖아. 천년만년 살 곳도 아닌데 괜히 큰 짐 늘리지 말자.’
잠들면 업어가도 모르는 내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수시로 깼다. 한 밤중 코를 찌르는 악취로 서너 번, 새벽녘 지게차 소음에 두어 번. 머리끝까지 이불을 끌어올리고 다시 잠을 청했다. 매일이 숙직에 걸린 기분이었지만 장점을 보기로 했다.
‘안락한 집에 살았다면 더 출근하기 싫을 거야. 갭이 적은 이곳이 나을지도 몰라.’
마인드셋을 바꾸자 왱왱 거리는 기계 소음은 출근 전 워밍업이 되었다. 어떤 일이나 장단점이 공존한다.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은 내가 정할 수 있고, 보는 대로 살게 된다. 나는 인생의 어두운 면보다 밝은 면을 향해 서기로 했다. 혹자는 정신승리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당장 현실을 바꿀 수 없고, 살면서 파도처럼 찾아오는 불운을 저지할 수 없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까지, 패배에서 벗어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최소한 그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서라도 장점을 좇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무엇보다 참기 힘겨운 고통은 가난일 것이다. 월급이 충분하다고 느끼는 직장인은 거의 없겠지만 중소기업 연봉은 정말 쥐꼬리만 하다. 종종 억울하고, 분통이 터진다.
‘나를 갈아 넣어도 이 정도밖에 못 벌다니.’
‘월급으로 내 집마련이 가능하기나 할까?’
티끌 모아 티끌일지라도 종잣돈이 있어야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해볼 수 있다. 다만 많은 경제 전문가가 시드머니는 1억 원 정도 있어야 유의미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3년 안에 1억을 모으기로 결심했다. 월급의 70%를 저축하고, 생활비를 10~60만 원 선으로 유지했다. 돈만 생기면 자유적금에 모조리 갖다 부었다. 노후 사택은 악취와 바퀴벌레가 들끓었지만 덕분에 월세를 아낄 수 있었다. 남들이 출퇴근하느라 땅바닥에 버리는 시간에 나는 돈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경제 도서를 60권 읽고, 팟캐스트 <신과 함께>를 상시 틀어놓았다. 외국어처럼 알쏭달쏭했던 용어들이 점차 보이고, 들리기 시작했다. 책으로 시선을 옮기자 열악한 환경이 흐리게 보였다. 저축하고, 공부하고, 투자하다 보니 3년은 금방이었다.
그 사이 회사 일도 손에 익었다. 업무는 예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 매년 반복되었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어지자 매너리즘에 빠졌다. 무료한 일상에 동태 눈깔처럼 생기를 잃어갔다. 저축액도 거의 목표에 다다른 시점이었다. 그러나 더 빨리, 더 많이 벌고 싶었다. 20대에 할 수 있는 재테크 전략 중 ‘몸 값 높이기’가 가장 수익률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직무 전문성과 고액 연봉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선택지는 대기업 이직이었다. 업무 시간을 외에는 자소서와 면접 준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새벽 5시 통근버스 안에서도, 야근한 날도, 데이트하고 돌아온 일요일 밤도 예외는 없었다. 두 눈은 빨갛게 충혈돼 있었지만 내 심장을 두근거리고 있었다.
가난했기 때문에 열악한 환경을 견디고, 온갖 수모를 웃어넘길 수 있었다. 가난해서 좋은 점도 있다. 단점보다 장점을 보면 좋은 날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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