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카톡을 보낸 지 3일 만에 전화가 왔다. 절친한 친구 정이었다. 15년 지기 정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보건대학을 나온 정은 응급구조사가 되었다. 카페와 백화점, 베이커리 숍에서 빵을 굽는 사람이었다. 동대문에서 옷을 떼와 사진을 찍고, 택배를 보내는 사장이었다. 집을 찾는 이들에게 매물을 보여주는 보조인이기도 했다. 매칭이 잘 되지 않는 일이어서 다른 일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동공이 커졌다. 정은 언제든 새로 시작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다. 겁쟁이인 나에게 종종 대리만족과 묘한 쾌감을 선사해 주는 친구.
나는 사회가 안정적이라 말하는 길을 단 한 번도 벗어난 적 없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전공을 살려 중견기업에 취직했다. 대기업으로 이직해 5년 간 직장인으로 살았다. 내 인생을 소설로 쓴다면 밋밋하고 지루할지도 모른다. 반면 정의 삶은 베스트셀러처럼 다채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인간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존재여서일까. 우리는 서로 부러워했다. 나는 걔의 마르지 않는 용기와 다양한 인생 경험을, 걔는 나의 꾸준함과 안정적인 직장을.
그러나 우리는 서른을 기점으로 부러워하던 삶을 살게 된다. 나는 아예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섰다. 대기업 엔지니어에서 프리랜서 카피라이터가 되기로 한 것이다. 정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기로 했다. 일찌감치 공부는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정이 명문대에 합격할 정도로 몰입하는 모습을 보았다. 매일 밤 12시, 어떤 날은 새벽 2시까지 온라인 강의를 듣고, 문제를 풀었다. 최근 3개월 동안 집과 스터디카페, 헬스장 외에는 가본 적도 없다고 했다. 스터디카페에 있던 이름 모를 수험생들이 정을 보며 자극받았다고 했단다. 힘에 부치는 날도 있었지만 광안대교를 달릴 때면 이 세상 다 가진 것처럼 벅차올라 기운이 났다고. 혼자서 뭔가 이루어보고 싶다던 그는 어딘가 신나 보였다.
꼭 합격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공시생 시절을 지나온 나는 시험 준비가 2년이 넘어가면 체력과 의욕과 초심이 얼마나 깎여내려 가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티끌만큼도 방해되고 싶지 않아 연락을 참았다. 대망의 시험 당일. 겨우 한 줄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밤 11시가 넘어도 정은 묵묵부답이었다. 설마. 아니겠지. 1년을 더 준비하는 건 너무 가혹하잖아. 만약 떨어진 거면 어떻게 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 마음이 복잡해지는 찰나 머리맡에서 진동이 웅웅 울렸다. 정이었다. 평소 취침시간 보다 훨씬 지났지만 지금 당장 받아야만 할 것 같았다.
“미안, 이제야 전화하네. 1차는 합격했는데…”
차마 뒷얘기를 들을 수 없을 것 같아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었다. 이어지는 정의 말을 듣고, 스마트폰을 꼭 쥐고 있던 손이 스르르 풀렸다.
“2차도 합격!”
긴장이 안도로 바뀌면서 괜히 약이 올라 한 소리 했다. 왜 이렇게 늦게 알려주었느냐고. 혹시나 해서 마냥 기다리고만 있었다고. 정은 조금 전에 대리를 불러 아버지를 모셔다 드렸다고 했다. 동네 식당에서 축배를 들었다고. 낮에는 아버지와 부둥켜안고 조금 울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불러주시는 가답안을 듣고 채점을 했는데 커트라인 보다 10점이나 높은 점수가 나왔던 것이다. 듣고 보니 양보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이후로도 한창 기쁜 시절을 보내고 있어야 할 정이 잠수를 탔다. 3일 만에 돌아온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단다. 평소 냉장고에 식재료를 가득 쟁여두고 한 상 푸짐하게 차려먹는 정이었다. 지금은 온 집안에 배달음식 용기가 쌓여있다고 했다. 부모님의 안부 전화도 나중으로 미루었댔다. 오로지 합격만을 목표로 쉼 없이 달려온 정이 번아웃에 시달릴 법도 하다. 곧 일을 다시 시작하면 언제 또 멈출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원하는 만큼 휴식하며 숨을 골라야 멀리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혼자 틀어박혀 우울과 공허를 견뎌냈다는 말에 먹먹해졌다. 이겨내는 방식이 나와 똑 닮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후회했다가, 혼자 감사하다가, 혼자 걱정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지쳐 선택지를 정하고 나면 비로소 무기력이 소멸한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이 나를 치유해 줄 때까지는 어쨌든 혼자다.
그토록 갈망해 온 자격증도 쟁취했겠다, 앞으로 탄탄대로를 달리기만 하면 될 정이었다. 그런데 왜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었을까. 아마도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일 것이다. 합격만 하면 자리를 잡고, 집도 사고, 차도 사고, 통장과 마음이 금세 풍요로워질 것 같다. 하지만 합격 이후에도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하고, 중고차조차 사기 어렵고, 원하는 회사는 채용을 하지 않는다. 월 천, 수십 억대 자산가는 차치하고, 당장 어떻게 먹고살지 막막하다. 일단 최저 생계비만큼 벌 수 있다면 작은 업체라도 들어가는 게 맞다. 큰돈은 안되지만 경험을 쌓고, 일을 배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선뜻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고작 이렇게 살려고 돈과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은 건 아닌데. 여전히 초라하고, 실망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정에게 연락을 받고 적잖이 놀랐다. 우울감에 빠져있던 나와 정확히 똑같은 감정 서사를 정이 겪었기 때문이다. 목표를 세우고, 매진하고, 이루고, 번아웃이 오고,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불안하고, 조급하고. 한 사이클을 먼저 돌아본 내가 말했다.
“근데... 해보면 막상 별거 없다?”
나는 대기업만 들어가면 인생이 술술 풀릴 줄 알았다. 높은 연봉으로 빠르게 돈을 모으고, 재테크로 자산을 만들고, 퇴사 후 원하는 일을 돈 걱정 없이 만끽하는 삶. 하지만 중소기업 다닐 때 보다 반도 저축하지 못했고, 주식은 몇 년째 물려있고, 원하는 일은 찾지 못했다. 연봉이 2배 올라도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았고, 돈 걱정은 여전했다. 이루고 보니, 막상 별 게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직무가 만족스러웠던 것도 아니고, 팀장의 모습은 내가 그리는 미래가 아니었다. 억지스러운 나날을 견디게 해 주었던 목표가 전부 사라지자 하루하루 심각하게 불행했고, 건강도 무너져 내렸다. 이대로 체력과 시간을 돈과 계속 맞바꾸다간 살아보고 싶은 생을 영원히 살아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문득 궁금해졌다.
‘우선순위를 바꾸면 어떨까? 원하는 일을 행복하게 하다 보면 돈도 따라오지 않을까?’
소위말하는 '성공' 이후 허무해지고 싶지 않았다. 성공은 불꽃놀이처럼 순간 번쩍이고 사라지는 이벤트일 뿐이었다. 가끔가다 터지는 행복, 허무하게 꺼지는 행복. 이 찰나를 위해 우리는 오랜 시간 공을 들인다. 1년 중 성공이 1일이라면 과정은 364일에 맞먹을 것이다. 단 하루 짜릿한 삶과 매일 잔잔하게 즐거운 삶 중 어떤 것이 더 나은 일생이라 할 수 있을까? 아마도 후자가 아닐까.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명언도 있잖나. 나는 일회성 쾌락보다 반복적인 행복을 좇아보기로 결심했다.
7개월 간 프리랜서 생활을 해보고 알게 되었다. '행복을 좇으면 돈은 따라온다'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아니면 정답이라 말하기까지 어쩌면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걸. 프리랜서로 살면서 소소하게 자주 행복하긴 했지만 시원찮은 벌이로 상당히 불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생계유지가 불가능한 액수이고, 그조차 언제 끊길지 모른다. 고정 수입이 없으니, 미래를 계획할 수 없어 고민이 줄줄이 딸려 나온다. 내 집 하나는 있어야 할 텐데 대출 이자를 값을 수 있을까, 주식에 돈을 묻어두고 오피스텔에 살더라도 월세는 낼 수 있을까, 애써 모아둔 돈만 까먹다가 빈털터리 백수가 돼버리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를 찾을 수 있을까. 약간의 자금을 비축해 두고 퇴사했음에도 자주, 급격히 불안해지곤 하는데 정은 오죽할까.
하지만 최저 시급도 안 되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고, 더 잘 해내고 싶다. 이제 나에게 돈은 생계수단이자 보너스일 뿐, 인생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회사로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될 만큼 벌어보자는 생각이다. 어떻게 벌 수 있을지는 최근에 조금 뚜렷해졌다. 심사숙고해 기획한 북클럽이 오픈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마감된 것이다. 1기 참가자 70% 이상이 2기에 재신청하는 성과도 나타났다. 단 돈 만 원이라도 내 힘으로 벌어보니, 어떻게 10배, 100배 확장시킬 수 있을지 사고의 확장이 일어났다. 나에게 얼마가 필요한지 알고, 스스로 돈 버는 법을 알고 나니 비로소 빨리 크게 벌어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졌다. 매 순간 감사히 즐기며 차차 쌓아나가자고 중심 잡을 수 있었다.
종종 내면이 충만해지는 경험을 하면서 마음은 더욱 견고해졌다. 먼저 블로그에 올린 서평을 보고 사람들이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자신에게 딱 필요한 책이라고. 바로 구매하러 간다고. 다음으로 드디어 내게 마이크가 주어졌다. 대학 강연에 초청되어 학생들에게 도움 되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맞는 커리어를 쌓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정해진 길을 벗어나도 큰일 나지 않는다고. 꿈을 이루는데 글쓰기가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최근엔 1:1 첨삭 컨설팅을 하며 과분한 찬사를 받았다. 강점과 약점을 명확히 집어주어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린다, 용기와 응원이 되는 피드백을 받고 거의 울뻔했다 등등. 온 마음과 몸을 다해 빚어낸 첨삭 결과지를 알아봐 주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일에 몰두하자 사람들이 지갑을 열었다. 행복하게 일했더니 정말로 돈이 따라온 것이다. 얼마나 증명해내고 싶었던 순간인가. 남이 쓴 글을 보며 살아보지 않은 생을 살아보고, 뭉클한 감정을 느끼고, 글공부도 되는데 금전적 대가가 주어진다니. 흥미, 적성, 시장성 모두 만족하는 내 길을 드디어 발견한 것인가. 수익성은 풀어야 할 숙제지만. 이 외에도 뉴스레터 발행, 책 출간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있다.
어쨌거나 내가 사는 이유는 '오랫동안 이 일과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가 되었다. 그럴 수 있도록 공부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건강을 챙길 것이다. 책을 펼치고, 노트북을 열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길을 걷고 필라테스 센터에 갈 것이다. 매일을 그러는데 쓸 것이다. 정과 통화하는 동안 고뇌했던 시간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정이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길 바라지만 어떤 말이 힘이 될지 몰라 한참 문장을 골랐다. 나름대로 내린 명쾌한 결론이 나에게만 유효하고, 정이 원했던 대답이 아닐까 봐 망설여졌다. 우물쭈물하다 겨우 입을 뗐다.
“일단 저지르고 생각해도 안 늦어. 완벽하게 준비됐다 생각해도 막상 뛰어들면 계획을 수정해야 하게 될 테고, 그럼 상황에 맞게 대처하면 되니까. 그리고 나 회사 다닐 때 월급 200만 원부터 시작해서 만족할 만큼 버는데 5년 걸리더라. 시간이 필요하더라고. 근데 난 시간도 돈이라고 생각해. 목표에 맞는 커리어를 쌓으면서 배울 수 있는 곳에 시간을 쏟고, 지금은 최저 생계비만 충족된다면 일단 지원해 봐.”
이게 아닌데. 무책임하게 등 떠미는 것 같진 않았을까. 이미 알고 있고 그저 스스로 납득할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던 건데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았나. 자세한 여건도 모르면서 경솔하게 내뱉었나. 아무래도 내가 속속들이 다 알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정이 파티가 끝난 무대에서 산뜻하게 내려와 다시 광안대교를 자신만의 속도로 달려 나가길 바랄 뿐이다. 행복을 먼저 좇으면 돈은 따라오니까. 그래야만 우린 다시 허탈해지지 않을 테니까. 그저 충분한 수입이 만들어지는 날까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즐기며 행복하게 살면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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