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에서 방영할 때마다 넋 놓고 앉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긴 하지만 나는 딱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열혈 팬은 아니다. 그가 2001년에 만들었다는 박물관인지 미술관인지 하는 건물의 정확한 명칭도 지난달에야 알았다. 내가 다녀온 곳의 풀네임은 ‘미타카의 숲 지브리 미술관’이다. ‘미술관이라니 지브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의 원화가 잔뜩 걸려 있는 곳인가’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다. 미야자키가 이곳을 구상할 때 염두에 둔 타이틀은 ‘이런저런 볼거리 관’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으려면 그런 이름은 곤란하다고 해서 결국 ‘미술관’으로 결정되고 말았다.
이번에 새삼 알게 된 사실 가운데 하나는 지브리 미술관을 구경하는 일이 꽤 까다롭다는 것이었다. 입장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네 번뿐이고 입장객의 수도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서 ‘일본에 온 김에 잠깐 들러볼까’ 하는 자세로는 건물 입구의 토토로 인형 앞에서 기념사진이나 찍는 걸로 만족해야 한다. 나는 보름 전에 공식 사이트에서 예약을 마쳤다. 비용은 성인 한 명당 만 원, 한국에서 결재를 해두면 언제든 일본 편의점 로손에서 티켓을 수령할 수 있다.
많은 제작비가 소요되는 오리지널 단편을 매번 새롭게 만들어서 상영하는 ‘토성좌(土星座)’의 대단무쌍함이나 애니메이션이 엄청난 양의 노동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걸 알 수 있는 ‘움직이기 시작하는 방’의 신묘막측함, 스토로보를 비출 때마다 달리는 고양이버스를 턴테이블 위에 구현한 ‘토토로 뿅뿅’의 깜찍발랄함을 굳이 여기에서까지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세계 각국에서 올라온 후기들이 온라인에 차고 넘치니까. 다만 내게 할당된 두 시간 동안 이리저리 둘러보며 느꼈던 아쉬움에 대해서는 적어두고 싶다.
지브리 미술관의 순로(順路)가 굳이 적시되지 않은 이유는 ‘길을 잃자’라는 모토에 맞게 자유로운 관람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의도였을 텐데 대관절 자유로운 촬영은 왜 막는 건지(심지어 고양이버스에서 노는 아이들 사진을 찍는 것조차), 나는 약간 불만이었다. 인터넷에 공개되면 신비감이 떨어져 관람객이 줄어들까봐 그런 모양이라고 비아냥거렸을 정도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반환점>을 읽으며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매출이 목적이었다면 “십여 분짜리 애니메이션에 3억 엔씩”이나 쏟아 부으며 만들 필요 없이 기존의 애니메이션을 적당히 편집해서 틀어줘도 무방했으리라.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곳에서의 촬영을 금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그가 치히로의 부모를 돼지로 만들어버린 이유와 비슷하다. 아이(치히로)가 능력을 발휘하는 데 부모가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놀도록 두면 좋을 텐데 (사진을 찍기 위해) ‘거기 서봐’라고 하지요. 어디에 가도 카메라로 찍힌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세레머니로, 이게 애정표현이란 착각을 부모가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보다 자신의 눈으로 봐주세요, 이 시간을 소중히 해주세요, 라는 의미를 담아서 촬영은 금지하기로 했습니다.”
아아 그런 거였나. 촬영이 허락됐다면 나 역시 추억을 간직하겠다며 아이들을 향해 “거기, 잠깐만 비켜볼래?”라는 식으로 손을 휘휘 내저었겠지. ‘이 시간을 소중히’라는 대목을 두 번쯤 눈으로 읽은 후에 나는 지브리 미술관 내에서 몰래 찍은 사진을 전부 지웠다. 조금쯤 미안한 마음으로. 아울러 ‘그 순간밖에 볼 수 없는 체험을 할 기회를 주고 싶다’는 그의 소박한 바람을 모르고 비아냥거렸던 것도, 이렇게나마 정중하게 사과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