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이 <호빗>의 속편이고 <호빗>이 아이들을 위해 쓰인 동화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톨킨이 언제부터 이 소설을 썼는지에 관해서는 아직까지도 이런저런 설이 분분하다. 그가 옥스퍼드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1930년과 1931년 사이의 어느 날, 제자가 책상 위에 두고 간 시험지에다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땅 속 어느 굴에 한 호빗이 살고 있었다”라고 읊조리면서 대서사의 막이 올랐다는 게 그나마 신뢰할 만한 풍문이다. 이후로는 자식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오락거리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는데 퇴고도 거의 하지 않아서 제대로 정리된 형태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다 자란 후에는 더 이상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소설은 마무리되지 못한 채로 책상 서랍 어딘가에 처박혀 있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호빗>이 출간되기까지의 과정은 꽤 드라마틱하다. (1) 미완으로 남아 있던 원고를 본 사람 중에 톨킨의 제자가 있었다. (2) 제자는 톨킨의 추천으로 런던에 있는 출판사에 취직한다. (3) 출판사 대표가 제자로부터 톨킨이 쓴 동화가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4) 대표가 어찌어찌 원고를 건네받아 출판에 적합한지 검토한다. (5) 원고에 확신이 없었던 대표는 최종적으로 열 살짜리 아들에게 원고를 읽힌다. (6) 아들은 “신나는 모험, 굉장한 전투, 다섯 살에서 아홉 살 사이의 아이들이라면 다들 좋아할 것”이라는 소감을 아버지에게 전한다. (7) 이로써 출간이 결정되어 가운데땅(Middle-earth)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1937년 9월의 일이다.
<호빗>은 출간되자마자 굉장한 속도로 팔려나갔다. 종이신문에 실린 호의적인 서평들, 특히 톨킨의 오랜 문학적 동지인 C. S. 루이스의 지원사격 덕분이었지만 무엇보다 복잡한 설명이나 배경지식 없이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그에 비하면 출간을 목표로 십 년 넘게 공을 들인 톨킨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반지의 제왕>은 시작부터 난항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호빗> 정도 수준의 후속편을 애타게 바랐던 출판사에서 ‘자칫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는 경제적 모험’이라고 판단했을 만큼 스토리가 어렵고 복잡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출간은 되었지만 이번에는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다. “통제를 벗어난 어린이책”으로 “인간의 분별력과 깊이가 담긴 주제가 결여”되었으며 “단순히 도덕적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쏟아졌고 그중에는 톨킨이 소설가로서 아마추어적인 데다 상상력이 모자란다는 평도 있었다.
분수령이 된 사건이 벌어진 건 <반지의 제왕> 출간 후 십 년이 지난 1965년의 어느 봄이었다. 당시 통일된 저작권법이 있었던 유럽과 달리 미국은 저작권 개념이 희박했다. 때문에 톨킨과 정식으로 계약을 맺은 출판사(밸런틴북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지의 제왕>이 해적판(에이스북스)으로 출간된 것이다. 밸런틴북스에서 부랴부랴 정식 페이퍼백을 출간했지만 어이없게도 표지와 장정, 그리고 가격 경쟁력까지 에이스 판이 더 뛰어났다. 미국의 독자들은 왜 아니겠냐는 듯 해적판 <반지의 제왕>을 구입했다. 상황을 역전시킨 이는 톨킨이었다. 미국의 독자들이 보내온 엄청난 양의 팬레터에 톨킨이 하나하나 답장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주위에서는 ‘아니 뭘 그렇게까지’라거나 ‘쓸데없는 시간 낭비’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답장을 받은 독자들은 이내 ‘톨킨의 열광적인 추종자’가 되었고 저작권자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톨킨의 전기를 집필한 험프리 카펜터의 얘기를 들어보자.
“이것(팬레터에 대한 톨킨의 답장)은 놀라운 효과를 발휘했다. 미국 독자들은 자기들이 에이스 판을 사지 않기로 하는 정도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서점에서 에이스 판을 철수시킬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즈음 생긴 ‘미국 톨킨 학회’라는 일종의 팬클럽이 전투의 선봉장이었다. 그해 말부터 에이스 판의 판매부수는 격감했고 결국 에이스북스는 판매한 모든 책의 인세를 저자에게 주겠으며, 현재 남아 있는 물량이 소진된 후에는 재판을 찍지 않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이렇게 하여 어느 기자의 표현대로 ‘가운데땅의 전쟁’은 조약에 서명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_<톨킨 전기>, 408p
사건의 전말은 미국 전역으로 퍼지며 놀라운 홍보효과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나 같은 야매 출판업자에게도 깨달음을 주었던 건 바로 이 대목이었다. ‘가운데땅의 전쟁’을 전후로 ‘팬심’이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며 <반지의 제왕>의 판매가 급속하게 늘어난 것이다. 에이스북스가 팔아치운 10만 부의 열 배에 달하는 100만 부가 순식간에 동이 나면서 톨킨의 소설은 시대의 빛나는 상징이 되었다. 신비주의를 표방한 잡지 《간달프의 정원》이 창간되었고 ‘중간계’라는 이름으로 개업한 런던의 클럽에서는 핑크 플로이드 같은 락 밴드들의 공연이 이어졌으며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만끽하려는 이들을 위한 의류 브랜드 ‘로한’이 만들어졌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간달프를 대통령으로’라는 슬로건이 등장할 정도였다. 흡사 마법 같은 이야기다.
그다음은 대부분 익히 알고들 있는 대로다. 비록 간달프가 대통령에 취임하진 못했지만 그해 말 <반지의 제왕>은 300만 부를 넘겼고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세 시간 분량의 3부작 영화로 만들어져 일 년에 한 편씩 극장에서 개봉했다. 2010년까지 판매된 부수는 5000만 권이라는데 앞으로도 이러한 기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절대반지를 앞세워 잘못된 신념과 욕심을 관철시키려는 그림자의 나라 모르도르에서 우리는 앞으로도 쭉 살아나갈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