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유통업으로 잔뼈가 굵은 기타다 히로미쓰 씨의 저서 <앞으로의 책방>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보통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 책의 매력을 아무리 설명해도 책에 흥미를 갖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책이 있어 읽어보니 재미있더라’는 체험을 한 적이 없다면 책의 세계에 깊게 발을 들일 수 없겠죠. 때문에 책방의 역할은 그 ‘최초의 한 권’과의 만남을 좀 더 매력적으로 연출하는 것입니다. 보통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 책을 알리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과 작은 수법이 필요합니다.”
이 책을 읽고 가만히 돌아보니 그런 사례가 꽤 눈에 띈다. 이를테면 네덜란드의 도미니카넌 서점은 ‘뻔한 건물 대신 네덜란드에서 제일 오래된 교회에 지점을 내보자’는 아이디어를 실현하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소개되면서 궤도에 올랐다. 일본의 B&B 서점은 지금과 달리 서점에서 주류를 판다는 걸 떠올리기 어려웠던 시절에 서점에서 ‘맥주를 팔아보자’는 전략으로 이목을 끌어 경영난을 극복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내 마음에 들었던 건 미스터리 소설의 편집자로 이름을 날리던 오토 펜즐러가 맨해튼에 연 작은 서점에 관한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의 장소였던 서점을 직접 경영하는 것은 펜즐러의 오랜 바람이었다. 그 꿈의 장소를 사람들은 ‘미스터리 서점(The Mysterious Bookshop)’이라 불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펜즐러의 삶을 지속적으로 행복하게 해준 것은 미스터리 서점을 방문한 고객들의 다정한 말 한마디였다.
하지만 반스 앤 노블 같은 대형 서점 체인들이 무차별적으로 책값을 할인하고 대대적인 광고를 시작하자 사람들은 동네 서점 대신 대형 서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거대한 공룡에 비유되는 아마존닷컴의 출현으로 상황은 점점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것은 마치 필름 카메라 대신 디지털 카메라가 시장을 석권하는 것과 같은 시대의 변화처럼 보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펜즐러의 미스터리 서점 역시 극심한 재정난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서점을 방문한 고객에 대한 보답과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친한 작가들에게 짧은 이야기 한 편을 써달라고 부탁한다. 다만 그냥 이야기여서는 안 되고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첫째, 미스터리적 요소를 포함할 것.
둘째, 시간적 배경은 크리스마스일 것.
셋째, 공간적 배경은 미스터리 서점일 것.
펜즐러와 미스터리 서점을 아끼던 에드 맥베인, 로렌스 블록,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처럼 쟁쟁한 작가들은 무려 17년 동안 차례로 익살스러운 이야기와 긴장감이 넘치고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을 보내주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단골 고객들은 물론이거니와 평소에 별 관심이 없던 독자들도 이 팸플릿을 손에 넣겠다는 일념으로 책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덕분에 펜즐러의 미스터리 서점은 대부분의 어려움을 극복했다. 마침내 17년간의 전통을 이어온 기념비적인 17편의 미스터리를 책으로 엮으며 펜즐러는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작가 여러분의 따뜻한 우정이 없었으면 이 책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장담하건대 그들은 돈을 바라고 글을 쓰지 않았다.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다 해도 기고자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겠지만 우리 서점의 명운에는 영향을 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