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쯤 전의 일이다. 박찬욱 감독에게 글을 청탁한 적이 있다. 평소 에스에프 소설을 즐겨 읽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관련해서 몇 권의 에스에프 소설에 관한 리뷰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단편영화 준비로 분주했다. 리뷰를 쓰려면 책을 전부 다시 읽어야 하는데 그 정도의 시간은 도저히 낼 수 없겠다며, 미안해했다. 그러고는 메일의 말미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늘 좋은 책을 내줘서 고맙다고. 그래서 술을 한잔 사겠다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며칠 후에 그는 정말 술을 샀다. 연남동 ‘송가’에서. 만나기로 한 건 저녁 일곱 시였는데 내가 20분 일찍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근처에서 볼일을 마치고 시간이 남아서 미리 온 게 아니라 집에서 출발했다는 대답을 들으며, 이 사람은 늘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 있는 모양이구나 싶어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기억나는 게 하나 더 있다. 그날 송가의 주방장이 만든 요리를 이것저것 맛보는 와중에 내가 “북스피어에서 펴낸 추리소설이 한국에서 영화화된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추리소설의 영화화에 관해 물었는데, 그는 “대개 반전이 있는 추리소설을 영상화하기 좋을 거라고들 생각하는데 이런 종류의 스토리야말로 영화로 만들기가 가장 어렵다”라던가 하여간 그 비슷한 얘기를 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각본 쓰기의 어려움’으로 흘러갔다. 그때 ‘공동각본’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 그는 <친절한 금자씨>를 만들 때부터 정서경 작가와 함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컴퓨터 하드는 공유하면서 모니터와 키보드를 각자 한 벌씩 가지고 정서경이 초고를 쓰면 박찬욱이 그걸 수정하고 박찬욱이 쓴 초고를 정서경이 고치는 식으로 완성해 나간다”고 했다. 예컨대 정서경 작가가 “너나 잘해”라고 써놓은 걸 박찬욱 감독이 “너나 잘하세요”로 고치면서 명대사가 탄생한 거다.
물론 나는 영화에 문외한이라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도 ‘공동각본=시나리오를 함께 쓰는 것’ 정도로 이해했을 뿐이다. 공동각본이라는 게 내가 막연히 짐작했던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박찬욱 감독이 예를 들어 설명한 『복안의 영상』이라는 책을 읽고 난 후다. 거기에는 “영화계에서 공동각본을 쓰는 경우는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것들은 누군가가 쓴 각본에, 프로듀서나 감독이 수정하고 싶지만 각본가가 응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작가를 기용해서 손을 보고는 공동각본이라 부르는 경우가 99퍼센트다. 아주 드물게 마음 맞는 동료가 있어, 공동으로 일을 맡아 분담하여 작업하는 예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구로사와 감독의 각본 집필 방법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례없는 독자적인 것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대관절 그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례없는 독자적인 공동각본’이란 무엇인가. 우선 감독을 포함하여 두 명의 각본가가 필요하다고 구로사와는 말한다. 이를 편의상 A(각본가), B(감독 구로사와), C(각본가)라고 하자. A는 B가 정한 테마에 맞추어 간단한 줄거리를 쓴다. 초고니까 잘 쓸 필요는 없고 필요한 내용만 열거하면 된다. A가 초고를 마치면 B는 캐릭터를 설정한다. 키는 얼만지, 걸음걸이는 어떤지, 뒤에서 누가 말을 걸면 어떻게 돌아보는지 등을 구체적인 그림까지 그려가며 기록해 둔다.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구로사와의 재능이 십분 발휘됐음은 물론이다. 건물로 치면 여기까지가 ‘지반 다지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C를 불러서 세 사람이 함께 합숙에 들어간다. 호텔에 감금당한 채로 수학능력시험 문제를 내는 이들을 연상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합숙 시간표는 다음과 같다. 기상은 8시, 아침을 먹고 10시부터 작업을 시작해서 오후 5시에 일과를 마친다. 저녁때는 식사와 함께 반주를 하고 10시가 되면 취침한다. 당연히 탈고할 때까지는 하루도 쉬지 않는다. 다음은 작업 방법인데 이 대목이 실로 흥미진진하다. 먼저 커다란 탁자를 방 중앙에 놓고 A는 6시, B는 3시, C는 12시 방향에 조르륵 앉는다. 초고를 토대로 A가 장면(scene)을 묵묵히 써내려간다. 다 쓴 원고는 반시계방향으로 B에게 전달한다. B는 “이 부분은 이렇게 고치는 편이 낫겠다”든가 “이 장면은 삭제하고 이런 아이디어를 넣자”는 등의 의견을 내며 직접 수정한다. 수정이 끝난 원고는 C에게 전달된다. 내용이 C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원고는 시계방향으로 되돌아가고, C가 마음에 들어 오케이 하면 원고는 9시 자리에 쌓인다. 이렇게 하루 일곱 시간 동안 작업하면 평균적으로 15매를 완성할 수 있다. 영화 한 편에 필요한 원고는 300매 내외라서 이들의 합숙 기간은 3주 정도였다고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C의 역할이다. 공동각본에서 C는 자동차에 비유하면 내비게이션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방향만 지시할 뿐으로 글을 쓰는 작업에는 결코 참여하지 않는다. A와 B가 열심히 쓰고 고치는 동안 C는 멍하니 앉아 있거나 잡지를 보거나 하여간 딴짓을 하고 있다가 B의 손을 거쳐 자신에게 도착한 원고가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작업을 진행하면 당연히 혼자 쓰는 것보다 시간이 곱절 이상 걸린다. 그럼에도 구로사와는 왜 이런 방법을 고수했을까. 말할 나위도 없이 각본의 완성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즉, 공동각본은 “동일한 장면을 복수의 사람이 각각의 눈(복안, 複眼)으로 써내고, 그것들을 편집하여 혼성합창의 질감이 있는 각본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이것이 희대의 걸작을 담보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졸작을 만들 가능성이 없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구로사와 감독의 최고작이자 세계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라쇼몽>이나 <살다>, <7인의 사무라이> 같은 작품들은 이 시기에 탄생했다. 이때 공동작가로 참여한 이들이 시나리오 작가로서는 완전히 아마추어였음에도 주저 없이 운명을 함께하기로 결정한 밑바탕에는 구로사와 스스로가 일급의 시나리오 작가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구로사와의 시나리오는 ‘자신이 아무리 뛰어나도 언젠가는 매너리즘에 빠질 것이라는 자각과 무명의 작가가 가진 잠재력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통찰력’이 빚어낸 결과물이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다만 공동각본에도 ‘빛과 어둠’이 있어, 훗날 구로사와는 C도 집필에 참여시키는 바람에 흥행에 참패하고 마는데 이것까지 설명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지니까 궁금하신 분은 『복안의 영상』을 읽어보아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