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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포 김 사장 Nov 13. 2019

소설가는 얼마나 벌까

예전에 한두 번 비슷한 얘기를 쓴 것 같은데 막연하게나마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계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학창시절에 장래희망 같은 걸 적어내야 할 때는 꼭 ‘소설가’라고 적었다. 문제는 뭘 어떻게 해야 그게 될 수 있는가, 하는 걸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거다. 우연한 기회에 몇몇 사람(이를테면 엄마라든가)에게 슬쩍 물어본 적이 있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 같았다. “왜 그딴 걸 하려는 거냐, 굶어죽기 딱 좋은 직업이다.” 그랬다. 굶어죽기 딱 좋은 직업. 나에게는 이것이 ‘소설가’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첫 번째 이미지였다. 


그나마 중학교 3학년 때 우리 반 담임이기도 했던 국어선생님이 해준 얘기는 좀 나았다. “일단 많이 읽고 나중에 국문과에 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읽었다. 세상 사람들이 ‘쓸따리없는 책’으로 분류하는 것들을 잔뜩 읽느라 성적은 신통치 않았지만 어찌어찌하여 국문과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들은 얘기는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설만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차라리 기술을 배워라”라는 것이었다. 그런가. 재능 없이 열심히만 해서는 돈을 벌 수 없는 직업. 나에게는 이것이 ‘소설가’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두 번째 이미지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부터는 작가들이 쓴 노트라고 할지 작법서를 읽기 시작했다. 몇 번의 습작 끝에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꿈을 접었으니 이 무렵부터는 어디까지나 순수한 호기심 때문이었겠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라든가 딘 쿤츠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쓰는 법>, <작가는 왜 쓰는가>(제임스 미치너), <글쓰기의 항해술>(어슐러 르 귄), <스토리 메이커>(오쓰카 에이지), <유혹하는 글쓰기>(스티븐 킹)  같은 책을 하릴없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저자들은 소설을 쓰는 자세와 약간의 요령을 적어놓았는데 ‘아아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겠구나’ 하는 의미에서 밑줄을 그을 만한 대목이 많았을 뿐 먹고사니즘적 차원에서 깊이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전에 없이 희한한’ 에세이가 일본에서 출간되었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모든 것이 F가 된다>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미스터리 작가 모리 히로시가 쓴 책이었다. 그는 “소설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받는 질문 중에는 얼마나 버느냐 하는 절실한 문제도 있다. 가령 신인상 같은 문학상의 상금이 얼마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만, 그 후로 무슨 일을 해서 얼마나 버는지, 그 구체적인 금액은 의외로 알려져 있지 않다”고 운을 뗀 뒤에, 이 책을 쓴 이유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소 길지만 저자의 진의가 담긴 대목인 듯하여 인용해 본다.


“일본에는 예로부터 ‘돈 얘기는 천박하다’고 보는 풍토가 있다. 돈 벌려고 일하는 거 아니다, 고객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족하다, 라는 아름다운 정신이 옛날에는 있었다. 그러나 요즘 같은 정보 공개 시대에 그런 말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을까.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흘러들어오는 정보는 있지만 정작 중요한 액수가 빠져 있거나 액수가 있어도 보통 ‘카더라’ 식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그 정보가 정확한지 어떤지 분명치 않다. 작가의 수입을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자료는 전무하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사실을 밝히는 것도 직업 작가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명’이라고 쓰지 않은 것은, 역시 내가 정직한 탓이다.”


이 정도면 대충 감이 잡히시는지. 책의 제목은 <작가의 수지>이다. 즉, 이 책은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한 인간이 평생 동안 얼마나 벌었고 또 어떻게 벌었는지에 관해 상세하고도 구체적인 데다가 실증적인 숫자를 제시해 가며 기록해 놓은 작가노트이다. 소설을 써서 자신이 벌어들인 원고료 및 인세는 물론이거니와 저서 이외의 수입, 이를테면 (1) 추천사를 쓰면 얼마를 받나 (2) 만화화가 되면 얼마를 받나 (3) 번역권을 팔면 얼마를 받나 (4) 강연을 하면 얼마를 받나 (5) 영상화가 되면 얼마를 받나, (6) 교과서나 문제집에 글이 실리면 얼마를 받나, 하는 것까지도 그에 대한 코멘트를 곁들여 밝혀놓았다. 


돌려서 얘기하거나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젠 체하는 기색 없이 담백하고 솔직하게 사실과 의견을 적시하고 있다. ‘다들 천박하게 여기는’ 돈 얘기를 말이다. 놀랍지 않은가. 나는 상당히 놀라고 말았다. 솔직히 그동안 나도 꽤 찾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건 처음 봤다. 아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상 최초가 아닐까 싶다. 그런 만큼 일본에서는 “오오! 대단하구만”이라는 호평과 “쯧쯧, 자본주의의 막장일세”라는 비난이 공존하는 모양이다. 나는 감탄한 쪽이다. 모리 히로시가 여기저기서 날아올 비난을 예상했으면서도 이런 얘기를 거침없이 술술 털어놓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의 이력과 상관이 있는 듯하다. 


작가 히로시의 첫 직장은 대학이었다. 1990년에 국립 나고야 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같은 학교에서 조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과학적으로 꽤나 있어 보이는 대사를 술술 막힘없이 읊조리거나, 수학문제가 트릭의 일환으로 자연스럽게 제시되는 설정 등은 이러한 경력에 기인한다. 독자들은 이를 ‘이공계 미스터리’라고 부른다. <모든 것이 F가 된다>의 해설을 쓴 히데아키가 지적한 대로 그의 작품 전반에는 '모두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따를 것이 아니라 상식으로 여겨지는 것도 자기 머리로 검증해 봐야 한다'는 기조가 깔려 있는데 이러한 점이 모리의 작품을 ‘이공계 미스터리’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듯하다.    


모리 히로시의 에세이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하여>에도 나와 있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소설을 아예 읽지 않았다고 한다. 이과적 인간의 특징이라고 할지, 학창시절에도 국어 성적이 제일 저조하여 뭘 쓰는 일에는 도통 취미가 없었다. 당연히 습작 시절도 거치지 않았고 심심풀이로도 소설을 끼적인 적은 없었다. 계기가 된 것은 1995년 여름, 그의 나이 서른일곱 살의 일이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딸이 “굉장히 재밌어, 아빠” 하며 보여준 미스터리 소설을 무심코 빌려 읽게 되었다. 하지만 읽기를 마친 그의 감상은 “이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일본 소설계라니 한심하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미스터리로서의 논리성이 보이지 않아서 실망했다.


모리 히로시는 '이것이 미스터리다!'라고 할 만한 소설을 딸에게 읽히고 싶다는 생각으로 소설을 써보자고 결심한다. 때마침 그가 (1) 연구의 최전선에서 한발 물러서야만 하는 나이였고 (2) 넓고 쾌적한 주거지를 손에 넣은 후 서재에서 책상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으며 (3) 취미 용품을 구입할 용돈이 필요해졌다, 는 것도 이러한 결심에 한몫 한다. 취미 용품을 구입할 용돈이 필요해서 저녁시간에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비슷한 일이 뭘까 궁리하다가 소설 쓰기를 택했다는 얘기다. 대학교수 봉급도 적지는 않았을 텐데 무슨 취미에 얼마나 돈이 필요했을까, 하고 나는 좀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위키피디아에 올라와 있는 설명을 보고 바로 납득했다.


학창시절부터 철도, 비행기, 음향장치, 자동차 등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소설을 써서 벌어들인 돈으로 자신의 집에 사람이 승차할 수 있는 철도 모형을 제작하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갔다고 한다. 실제로 모리 히로시는 매일 정원에서 자신이 만든 철도 모형을 타고 노는 것이 일과의 하나다. 현재는 “정원 철도들을 개업하고 차량제작을 위해 대형 공작기계를 도입하는 등 본격적인 수준의 활동을 하고 있으며 철도에 매료된 작가나 편집자, 팬들에게도 승차회를 열어 타볼 수 있게 해준다”니 이 정도면 한두 푼으로는 어림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소설을 써보자 마음먹고 3일 후에 그는 정말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첫 작품은 <차가운 밀실의 박사들>이라는 제목의 경장편인데 탈고까지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쓰긴 썼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그는 서점에 나가서 눈에 띈 잡지 <메피스토> 편집부에 무작정 원고를 보낸다. 이 대목은 교고쿠 나츠히코의 데뷔와도 흡사하다. 경기침체로 인해 운영하던 회사가 망하자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소설을 썼고 무심코 전화기 옆에 놓여 있던 출판사로 투고했는데 원고를 받은 편집자가 "고단샤 편집부의 역량을 시험해 보기 위해 미스터리 계의 대작가가 무명의 신인인 척하며 보낸 게 아닐까 의심했다"는, 교고쿠의 데뷔작 <우부메의 여름>에 얽힌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이런 인연으로 두 사람이 친하게 된 게 아닐까 잠시 웃으며 생각해 보는데 알 길은 없다.


어쨌거나 1995년 9월에 <차가운 밀실의 박사들>을 쓴 모리 히로시는 그해 10월에는 <웃지 않는 수학자>를, 11월에는 <시적 사적 잭>을, 12월에 <모든 것이 F가 된다>를 연달아 써낸다. 모두 장편소설이다. <메피스토> 편집부에서 연락이 온 건 이 즈음이었다. <차가운 밀실의 박사들>을 읽고 모리 히로시와 만난 <메피스토>의 편집장은 그의 작품을 모조리 출판하기로 결정한다. 다만 시리즈의 첫 책은 처녀작이 아니라 네 번째로 집필한 <모든 것이 F가 된다>로 정해졌다. 작가의 의도는 아니고 편집장이 강하게 밀어붙였다는데 결과적으로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시리즈 중에서 몰입감이 가장 좋았고 현재까지도 판매면에서 월등한 기록을 세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늘까지 그가 쓴 책은 278권, 총 판매 부수는 1400만 부, 이 책들로 벌어들인 돈은 한화로 약 155억 원이다. 각종 해설과 추천사, 영상화에 따른 부가 수입까지 합치면 모리 히로시의 수입은 200억 원이 훌쩍 넘을 듯하다. 1년에 10억 이상을 벌어들인 셈이다. 본업(대학교수로서의 강의)이 아니라 부업(소설가로서의 글쓰기)로 말이다. 하지만 “글을 소일거리로 쓴다는 자세는 결코 아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모리 히로시는 작품을 쓸 때마다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많은 독자들이 그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그 새로움에 열광했다. 돈을 벌기 위해 ‘적당적당히’ 썼다면 20년 동안 작가로 활동할 수 없었으리라. 혹자는 ‘문학을 자본주의적 관점으로만 본다’고 모리를 비난하지만 글쎄, 이런 관점을 가진 작가가 한 명쯤 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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