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주병 한 병 값이 얼마인 거야?!
"장소는?"
"무슨 호텔에서 한다고 했는데 기억이 잘 안나네."
'호텔에서 50명 넘는 인원이 식사를 하면 비용은 얼마인 거야??'
감이 오지 않더군요.
주위에 여쭤봤더니
환갑에는 보통 직계가족끼리 식사를 했다고 하지,
환갑잔치를 했다는 분은 없었어요.
장소를 정하는 권한은 저에게는 없었습니다.
남편의 남동생이
몇 년 전에 결혼을 먼저 했거든요.
장소를 정하는 건
어머님과 동서가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건가 보다 했는데
장소가 호텔이 될 줄을 몰랐어요.
직계 가족 식사면 호텔도 상관없는데
환갑잔치는 이야기가 다르니까요.
나중에 알고 보니
비슷한 이름의 음식점을 동서가 이야기했는데
그걸 호텔로 알아들은 어머님께서
호텔로 예약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냥 직계가족까리 식사만 하고
용돈을 좀 많이 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면 어머님 아버님
여행을 시켜드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냥 해.
아빠가 원하시는 대로 해드려."
원하시는 대로 해드릴 상황이 아닌데
해드려야 하니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고민 끝에
동서네에게 식사비용을 반반 부담하자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동서네에게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싫데요.
금액이 너무 부담스럽다고 말하면서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드리자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동서네도 이해가 되었어요.
왜냐하면 어린 자녀 둘이 있는 데다 외벌이인지라
상황이 여의치 않았을 거예요.
식사 비용이 너무 많이 나올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남편에게 물어봤어요.
남편이
식사값은
자기가 내겠답니다.
대한민국 장. 손. 이니까요.
환갑잔치
당일 날이 되었습니다.
사실 직계가족만 해도
우리 부부 2명
동서네 4명
아가씨 1명
시부모님 2명
할머님(시어머님의 어머님) 1분
이렇게 10명이거든요.
(시어머님께서 친정어머님을 모시고 살고 계셨어요.)
여기에 더해서
시이모님 두 분 내외와 자녀분들도 오시고
6형제이신 시아버님 형제 내외분들, 그 자녀와 자녀의 자녀분들까지...
정확히 몇 명이 온 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50명보다 더 많이 오신 것 같았습니다.
환갑잔치를 위해 차려놓은 뷔페가 있었습니다.
자리마다 소주와 맥주도 있더라고요.
원래 많이 먹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입덧 때문에 잘 못 먹었던 시기였어요.
딱히 할 게 없으니 멀뚱멀뚱 앉아있었습니다.
가만히 앉아있다가
자리 옆에 소주와 맥주 가격표가 나와있는 걸 봤어요.
그 당시 소주 한 병에 9000원인가 만원인가 그랬던 것 같아요.
'호텔이라 진짜 비싸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하기가 너무 부끄럽지만
그 가격표를 보는 순간,
맥주병 따는 소리와 소주병을 까는 소리가
유난히 귀에 크게 들렸던 것 같아요.
남편이 중간에 저에게 오더니
카드를 달라고 했습니다.
분위기를 봐서
끝날 때 즈음에
자기가 식사 비용을 계산하겠다고요.
삼백오십만 원 넘게 나왔던 것 같아요.
약 세 시간 동안 쓴 금액이라고 하기엔
영수증에 찍힌 금액이 너무 현실감이 없었습니다.
하필 아버님 형제 분 중에
호텔 엘리베이터 문이 갑자기 닫히는 바람에
이마를 다치셨어요.
급히 인근 병원으로 가셨습니다.
잔칫날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잔치가 끝나고 나서
어머님께서
"밥 값 많이 나왔지?
이거라도 보태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환갑 축하금으로 받은 돈에서
백만 원 정도 주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아버님 환갑잔치는 끝이 났습니다.
그때가 6월이었고
이젠 진짜로 제 출산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출산예정일 세 달도 안 남았거든요.
그런데 저,
무슨 돈으로 출산 준비를 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