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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머리앤 May 20. 2024

출산 준비로 쓴 돈은 0원입니다.

-병원 진찰료만 빼면요.

"여보, 아무래도 임신을 한 것 같아.

여보가 약국에 가서 임신테스트기 좀 사다 줘."


"내.. 내가?"


남편이 당황하더라고요.

웃음이 났어요.


"여보는 누가 봐도 결혼한 사람 같아.

그니깐 얼른 다녀와."


"가서 뭐라고 말해?"

"뭘 뭐라고 해. 임신테스기 달라고 하지."


남편이 한참을 밍기적밍기적거리더니

주섬주섬 잠바를 챙겨 입고 나갔다 왔어요.


아마 이게 

임신기간 동안 했던 

유일한 부탁 같은 거였던 거 같아요.


아기가 뭐가 먹고 싶데


이런 말은 해본 적이 없거든요.

부탁을 남에게 잘하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요.


남편은 회사가 다른 임신테스트기 두 개를 사 왔습니다.

하나만 하면 정확하지 않다고 했던 것 같아요.


임테기가 두 줄로 뜬 이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은

병원을 언제 가야 하는지 찾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임신 초기에 가면 

병원에 가서도 할 게 없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한 달 정도 지나서 병원에 갔어요.

(임신 5주 차 때 가면 아기집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전 8주 차에 갔습니다.)


어느 누가 병원 가는 걸 좋아하겠냐마는

저는 병원 가는 걸 진짜 싫어합니다.

웬만하면 

참아요.


산부인과도 무서워서

가기 싫었는데

산모수첩을 받고 

아이 상태를 확인해야 하려면 

가야 한다고 해서 갔습니다.


초음파 사진을 찍었습니다.


초음파 사진을 보면서

"어머, 아빠 닮은 것 좀 봐."

"애기가 눈이 참 크네."

이런 말을 한다던데

초음파 사진엔

강낭콩 같은  

사람의 형상 비슷한 것만 보였습니다.


사람의 몸 안에서 

작은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아기 심장소리도 들었습니다.

너무 잘 들려서 놀랍기도 하고

형체는 완전하진 않지만

심장소리는 사람 심장소리와

같다는 게 참 경이로웠습니다.


병원에 한 번 가고 났더니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았어요.

초음파를 받는 것도 너무 아프고

임신 초기라 

잠이 계속 오고 몸도 너무 힘든데

병원에 시간 맞춰 가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한 달 뒤에 한 번 더 갔고

16주 즈음에 성별을 확인하러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성별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건 안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아기가 아빠를 많이 닮았네요."


아들이었습니다.


성별까지 알고 났더니

병원에 잘 안 가게 되더라고요.

마침 담당 의사 선생님도 병원을 그만두게 되었고요.


병원엔 아픈 사람이 가는 건데

여자가 아이를 갖는 건

몸이 아픈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글

을 책에서 봤고

어느 정도 동의가 되었거든요.

(물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리고 저처럼 산부인과에 자주 가지 말라고

 말씀드리려는 의도도 전혀 없습니다.

그냥 제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거라

그때 저의 생각과 제가 했던 일들을 적는 거니

이런 특이한 산모도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글을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물론 임산부가 산부인과에 가는 게

몸이 아파서 간다기보다는

산모와 아이의 상태를 점검하러 가는 거긴 하지만요.

물론 임산부중에는 위험 산모도 있지만요.


스트레스받지 말고

마음 편한 게 

제일 큰 태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루는 남편에게 물어봤어요.


"여보, 육아하려면 필요한 것도 많다던데

 우리도 하나씩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출산 준비도 해야 하고 

육아용품도 사야 하는데

뭐가 필요한지 잘 몰랐거든요.


그래서 두어 번 산모교실을 찾아다녔습니다.

혼자서 다녔어요.

남편은 주말에도 일하느라 바쁘고

주변 친구들에 비해 결혼을 빨리하기도 했고 

아기도 빨리 가진 편이라서요.


지금 생각해 보면 

임신하고 몸이 많이 힘들었는데

산모교실 같은 건 가지 말고

주말엔 그냥 집에서 쉴 걸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땐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나 봅니다.


산모교실에 두어 번 다녀왔더니

거실 한쪽 구석에 육아용품이 꽤 많아졌습니다.

한 번가면 종이가방 가득 받아왔거든요.

정리를 해야 하는데

뭐가 필요한지 잘 모르겠어서

그냥 두었던 것 같아요.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오신 

친정엄마께서 육아용품을 보더니 한마디 하십니다.


"이런 거 굳이 필요 없어. 

엄마가 가제손수건이랑 이것저것 사 왔어."


그 후로 몇 달 뒤에는

동서네가 두 아이를 키우면서 사용했던

휴대용 유모차와 카시트를 주었습니다.

신생아용품과 아이 옷도 물려주었습니다.


동서에게 받은 휴대용 유모차를 가지고 아이 둘을 키웠어요.

그래서 한 번도 유모차를 사 본 적이 없습니다.


카시트는 동서에게 받은 것 외에

남편 친구 분께 하나 더 받았습니다.

그래서 카시트도 사 본 적이 없어요.


경제적 능력이 되어서 좋은 육아용품을 사주면 참 좋았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럴 상황이 아니었고 

만약에 형편이 좋았다고 해도 

물려받은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냥 썼을 거예요.


가끔 아이들 어릴 때 사진을 보면 

많이 못해줘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아요.


아이들이 나중에 자기가 백만 원짜리 유모차를 탔는지 

낡은 유모차를 탔는지 관심이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주위 분들 덕분에

출산 준비는

산모교실에서 받은 거 조금,

엄마 협찬 몇 가지, 물려받은 물건들 덕분에

돈을 많이 아낄 수 있었습니다.^^



*태아 성별 고지 합법화

: 현행 의료법 20조 2항에 따라 임신 32주 전에 태아 성별을 고지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원래는 전면금지였는데 2008년 헌법재판소의 영향으로 32주라는 문구가 들어갔다고 하네요.

그 후로 십여 년이 흐른 2024년 2월 28일 헌법재판소는 태아성별고지금지가 위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은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고 하니, 37년 만에 태아성별고지가 합법화되었습니다.

단,  입법권을 가진 국회에서 아직 법 개정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하니 참고하세요.(오늘 날짜는 2024년 5월 20일입니다.)


*의료법 20조 2항: "의료인은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나 임부를 진찰하거나 검사하면서 알게 된 태아의 성(性)을 임부, 임부의 가족, 그 밖의 다른 사람이 알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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