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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머리앤 May 27. 2024

조금은 특별했던 저의 출산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남자는 군대이야기 여자는 뭐다, 출산이야기.

출산일이 다가왔습니다.

어디서 출산을 해야 할지 정해야 했어요.

다니던 병원에서 출산하면 되지 

그걸 왜 정하냐고요?


성별확인 이후로 거의 병원을 안 갔거든요.


그러다가 출산 두 달 전 즈음에

출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됩니다.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일본 산부인과 의사의 인터뷰 내용이었어요.

제왕절개를 했던 아이들 중 몇 몇 아이가

제왕절개 당시의 상황을 기

억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후로 

그 의사선생님은 제왕절개를 안 했다고 했던 것 같아요.


'뭐야.... 너무 무섭잖아.'


산모분들 중에 

출산을 처음 해보시는 분들은

자연분만과 제왕절개를 

처음부터 선택하시는 분은 드문 것 같아요.

보통은 출산일이 다가왔을 때 양수가 먼저 터진다든가

출산 중에 피치 못할 위험한 사정으로 

제왕절개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죠.


한 번 제왕절개로 출산한 산모들은

그다음 출산은 보통 제왕절개를 선택합니다.

브이벡이라고 제왕절개를 했던 분들 중에서

자연출산을 하는 분들도 계시기는 하는데

많이 보지는 못한 것 같아요.


제가 병원에서 아이를 낳게 되면

자연분만을 하고 싶지만

부득이 제왕절개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제가 찾은 방법은

조산원에서 출산을 하는 방법이었어요.


조산원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병원이 아닌 가정집(?) 같은 곳에서

조산사님의 도움으로 

무통주사나 마취주사를 맞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출산을 하는 거예요.

어떤 산부인과 병원에서는 

그런 시설을 마련하는 곳도 있더라고요.


너무 늦게 알아봐서

서울에 있는 조산원들은 

이미 예약이 가득 찬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남양주에 있는 조산원을 예약을 하게 됩니다.


출산 예정일 열흘 전부터

친정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몸이 진짜 너무 안 좋았거든요.


엄마께서 해주시는 밥을 먹고

편안히 있으니 

참 좋았지만,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커피를 못 마시게 되었습니다.


엄마께서 마시지 못하게 하셨거든요.


저는 원래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 아니었어요.

임산부가 되니깐 진짜 덥더라고요.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여름이 출산예정일이라 

더 더웠던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아이스바닐라라떼가 얼마나 먹고 싶던지요.


더운 여름 어느 날,

친정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새벽부터 통증이 느껴지더라고요.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깨실까 봐

조용히 방 안에서

문화센터에서 배운

요가를 했습니다. 

양도 세보기도 하고요.

시간이 참 더디 흘러갔습니다.


아침에 엄마께 말씀드렸어요.

"엄마, 통증이 좀 있어서 잠을 잘 못 잤는데

출산하는 거 아니겠죠?"


"응. 아니야.

네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아직 멀었다."

라고 하시면서 동네 산책이나 하래요.


터덜터덜 걸었어요.

이따금씩 통증이 계속 와서

걷다가 서다 걷다가 서다 했습니다.

원래 10분이면 돌 거리를 

30분이 넘어서 낑낑대며 집에 돌아왔어요.


통증은 계속되었습니다.


엄마께서 오후에 드라이브를 가자고 하세요.


"엄마, 그럼 커피 사주실 거예요?"


진통이 계속되었지만 

엄마를 따라 시원한 공원에 가니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엄마께서는 제가

곧 출산을 할 거라는 예감이 드셨던 것 같아요. 


그 근처 카페에서 먹었던 

아이스바닐라라떼의 맛을 잊을 수가 없어요.


맛있게 커피를 마시면서 

행복해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옵니다.


"네?! 결혼사진 촬영한 스튜디오가 망했다고요?!"


와... 진짜 타이밍이 기가 막혀요.


결혼촬영을 했던 스튜디오가 망해서

사진과 앨범을 받을 수 없다는

황당한 전화를 받게 됩니다.


스트레스를 받았더니 

통증이 멈췄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스트레스를 받으면

진통이 

멈출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두 시간 정도 지나니

다시 통증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녁엔 엄마께서 삼겹살을 

구워주셨어요.


엄마께서 고기를 굽는 동안

동네를 한 바퀴 산책했습니다.

아침보다 더 오래 걸려서 

집에 도착한 것 같아요.


너무 아프니 

삼겹살도 먹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출산이 임박했을 때의 통증을 

파도에 비유하더라고요.


출산을 하기 전에

진통이 오면 

계속 아픈 게 아니에요.

30분 간격으로 통증이 오다가

20분

10분

이런 식으로 통증이 오는 간격이

점점 짧아지는 거거든요.


진통의 간격이 점점 짧아지는 것도 같았어요.

그런데 출산을 해본 적이 없으니

얼마나 아파야

출산을 하는지 알 수 있어야지요.


사실 오후에 남편에게 

문자를 한 번 보냈었어요.


여보, 나 배가 많이 아픈 거 같은데

출산하려고 그러나.


뭐 이런 식으로 보냈던 것 같아요.


밤 10시쯤 일을 마친

남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 나 지금 일이 끝났는데

내가 데리러 갈까?"


"아냐, 괜찮아.

아프긴 한데 

진짜 출산통증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여보가 아프다고 하는 거 보니깐

진짜 출산할 것 같아.

내가 지금 출발해서 갈게."


남편은 

밤운전을 두 시간을 해서

친정집으로 왔습니다.


오자마자

저와 엄마를 태우고 서울로 갔어요.


서울집에 도착하니

밤 12시 반정도 되었습니다.

미리 챙겨놨던

출산가방을 들고 

남양주로 다시 출발했습니다.


조산원에 도착하니 

새벽 2시였습니다.


남편과 마주 보고 서서

같이 복식호흡을 했습니다.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게 느껴졌습니다.

너무 아프더라고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를 계속 생각하면서

참았던 것 같아요.


소리는 단 한 번도 안 질렀습니다.

그저 얼른 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랐습니다.


서서 진통을 겪었더니

다른 산모들은 잘 느끼지 못한 신기한 경험도 했어요.


아기가 필사적으로

산도를 찾으려고 내려옵니다.

그러다가

길을 못 찾으면

포뇨처럼 다시 올라가요.

('벼랑 위의 포뇨' 애니메이션을 아시나요?

비눗방울을 만들면서 위로 떠오로는 포뇨처럼

아이도 그렇게 양수 안에서

움직이더라고요.)


그리고 다시 엄청난 힘으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길을 못 찾으면

다시 올라가요.


아기가 진짜 산도를 찾으면

엄청난 힘으로 밀고 내려 와요.


출산을 할 때 

산모도 힘들지만

아이도 힘든 건 마찬가지래요.


조산원 선생님께서는

제가 초산이라

반나절 이상은 지나야 

출산할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동트기 전에

출산을 했습니다.


저는 하루종일 진통을 겪고

간 거였으니까요.


출산을 할 때

마음 편히 있으면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환희에 차오른다고 했던 것도 같은데

그러진 않았어요.

많이 아팠으니까요.

그리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태어난 아기는 

금붕어처럼 입을 뽀금뽀금거리고 있었습니다.


조산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배가 고파서 그런 거래요.


제가 출산이 다 끝나기까지

아기는 남편 품에 안겨서

남편의 젖을 물었습니다.


아무리 빨아도

먹을게 나오지 않자

그제야 아기가 울더라고요.


출산과정을 다 겪고 나니

선생님께서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하셨습니다.

화장실에 굳이 안 가도 되고,

기운이 없어서 안 간다고 말씀드렸더니

다녀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발짝을 떼는 순간

제가 휘청하면서

주저앉았습니다.


하루종일 먹은 거라곤

거의 없고 

커피 한잔이 거의 다인 데다가

진통을 하루 이상 했으니

기진맥진할 수밖에요.


남편은 바쁘니

제가 출산을 하고 나서

한 시간 후에 일을 하러 갔습니다.

남편은 그 날 밤을 샜습니다.


그날 저녁에

시어머님께서 

시이모님 한 분과 함께 조산원에 오셨어요.

아기 내복과

봉투를 들고 오셨습니다.


사실 좀 이상했어요.

제가 출산을 했는데

왜 돈을 주시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축하금이라고 하긴 하는데...


직장동료분이 출산했을 때

선물을 준 적은 있었는데...

뭐 그런 거랑 비슷한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받았습니다.


너무 힘들고 기운이 없어서

며칠 후에 금액을 확인했던 것 같아요.

백만 원을 주셨더라고요.

어휴.. 많기도 해라.


남편은 출산 휴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남편이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저와 엄마를 

친정에 데려다주었습니다.


500만 원 주고 산 

아반떼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어요.

저는 뒷자리에 아이와 함께 누워서 탔고요.

엄마랑 남편은 앞자리에 탔습니다.


조리원은 안 가냐고요?


저의 조리원은 

친정이었어요.

엄마께서 

저랑 아들을 돌보느라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예전에 

출산하고 몸조리를 잘 못해서

발에 바람이 들었다는 친정엄마께서는

땡볕 더위가 내리쬐는 8월에

보일러를 틀어주었습니다.


정말 더워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ㅜㅜㅜ


그 덕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여름에 발이 너무 시리다는 

그런 경험은 안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쓴 출산 비용은

조산원 비용이 다였어요.

그리고 친정어머님께 

돈을 좀 드렸어요.

제가 조리원에 가는 대신 엄마께서

고생을 정말 많이 하셨으니까요.


엄마, 감사해요.



뒷 이야기: 결국 아이가 태어나고 한 달이 지나서 

웨딩촬영 사진은 받았습니다.

업체를 끼고 준비를 했던터라 

업체에서 노력을 해줘서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도 개인적인 이야기라

글을 써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을 많이했습니다.

제왕절개는 나쁘고

자연분만이 최선이다 

이런 의도는 전혀 아니고

그냥 제가 그 때 했던 생각과 경험한 일들을 

최대한 솔직하게 적은 글입니다.


아...이런 사람도 있구나...이렇게 출산할 수도 있구나...정도로만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관심가져주시고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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