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보 패르트: 거울 속 거울

by 리디언스


Spiegel im Spiegel (거울 속 거울)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다면) 가장 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영화 〈어바웃 타임 About Time〉은 그 능력을 오로지 사랑을 위해 사용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타임슬립이라는 익숙한 장치와 다소 뻔한 전개를 품고 있지만 그 안에는 사랑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진심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유치함을 넘어 조용히 마음을 건드린다.


〈어바웃 타임〉은 OST 역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에스토니아의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의 〈Spiegel im Spiegel(거울 속 거울)〉은 가슴에 오래 남는 곡이다. 단순한 리듬과 화성으로 이루어진 미니멀리즘 음악의 대표작이다. 영화 〈Gravity〉의 트레일러에도 삽입되었다.


1978년에 작곡된 〈Spiegel im Spiegel〉은 1999년 레이블 ECM에서 발매된 앨범 〈Alina〉를 통해 아르보 패르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 되었다. 이 앨범에는 〈Für Alina〉와 〈Spiegel im Spiegel〉 단 두 곡만이 각각 몇 개의 버전으로 수록되어 있다.




아르보 패르트는 레이블 ECM의 ‘뉴 시리즈’ 탄생을 이끈 상징적인 인물이다. 우연히 차 안에서 그의 음악을 들은 레이블 창립자이자 프로듀서인 만프레드 아이허가 재즈에 머물러 있던 ECM의 지평을 클래식과 현대음악으로 확장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패르트 역시 1984년 ECM에서 발표한 첫 작품 〈Tabula Rasa〉를 통해 대표적인 현대음악 작곡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곡명 그대로, 〈거울 속 거울〉은 단순한 멜로디와 리듬이 끝없이 반사되며 이어지는 듯한 인상을 준다. 무한한 대칭이 펼쳐지는 것 같지만 음악은 놀라울 만큼 담백하다. 조심스러운 연주 탓에 긴장감이 고조될 법도 한데 오히려 마음은 차분해진다.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가 모든 것을 천천히 가라앉힌다. 이 반복은 부담이 아니라 쥐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싶게 만드는 안온함에 가깝다.


반복되는 피아노음 위로 발끝으로 조심스레 걷는 듯한 첼로와 바이올린의 울림이 얹힌다.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요란함과 현란함, 귀를 찌르는 고음과 의미 없는 비유와 은유로 가득 찬 이 시대의 음악이 오히려 초라하게 느껴진다. 소리가 아니라 침묵이 있다.


지금은 상대의 가슴을 찌르는 비수 같은 언어가 아니면 허공을 메우는 클리셰로가 난무하는 시대다. 그러나 때로는 바람이 왜 부는지, 돌이 왜 거기에 놓여 있는지조차 굳이 묻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가득 차서 넘치거나 자극적인 삶보다 조금 모자라는 성근 삶,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이 사실 본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영화의 말미에서 주인공 팀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나는 시간 여행의 능력을 사용해서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대신 오늘 하루가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살아간다.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아가며 그것이 진짜 삶의 행복이라는 걸 이제야 배웠다 “고.


〈Spiegel im Spiegel〉이 들려주는 반복은 어쩌면 이 고백과 닮아 있다. 나는 이것을 니체의 ‘영원회귀’를 빌려 말하고 싶은데, 일상의 반복은 니힐리즘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 반복 속에서 사소한 차이와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고 거기에 각자의 의미를 덧입힐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살아갈 이유가 되지 않을까. 거울 속에 비친 또 하나의 거울처럼 삶은 그렇게 되풀이되지만 조금씩 다른 얼굴로 우리 앞에 선다.


여하튼, 이제 나이가 하나 더 포개졌고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https://youtu.be/FZe3mXlnfNc?si=a4tCLbUINuTnwVwA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오바니 미라바시: 서정미의 새로운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