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를 잇는 밧줄이다.

by 리디언스

종로의 낡은 뒷골목을 서성이다가 니체를 발견한 어느 저녁, 나는 이 문장을 떠올렸다.


’사람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를 잇는 밧줄, 심연 위에 걸쳐 있는 하나의 밧줄이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밧줄은, 인간이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언제든 흔들리고 미끄러질 수 있는 존재라는 은유일 것이다.


그래서 이 문장에는 ‘몰락’이 전제된다. 다만 그것은 실패나 추락이 아니라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온 가치와 태도를 기꺼이 내려놓는 일에 가깝다. 짐을 짊어진 채 견디기만 하던 낙타의 정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 번쯤 중심을 잃고 흔들릴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니체가 말하는 몰락은 파괴가 아니라 다시 사는 조건이다.


이 문장을 대할 때마다 나는 ‘영원회귀’의 사유를 함께 떠올린다. 동일한 것이 끝없이 반복된다면, 거꾸로 이 평범한 저녁 또한 내 생에서 가장 충실하게 긍정되어야 할 시간 아닐까. 그래야 그 긍정이 반복될 테니까. 반복되기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삶, 회피보다는 직면해야 할 순간으로서의 지금이니까.


그날 독서 모임은 추위를 핑계로 책을 덮고 막걸리로 기울었다. 우리는 가벼운 주머니, 허술한 대화, 느슨한 시간 속에서 각자의 밧줄 위를 건너고 있었는지 모른다. 말하자면 그날 종로 뒷골목은 우리에게 허락된 가장 현실적인 긍정의 장소였던 셈이다.



종로. Ricoh GR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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