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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준한거북 Jul 10. 2022

들여다보는 화초는 자라지 않는다

아이는 틱을 하지만 잘 자라고 있다

오후 4시 이후 하원을 한 큰아이가 얕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워낙 알레르기 비염이 있는 데다가 며칠 전에도 후비루 증상을 앓았던지라, 아직도 연장 선상에 있는 것인가 싶었다. 그런데 기침을 단 1초도 쉬지 않고 하는 것이 문제였다.

말을 하면서도 물을 마시면서도 놀면서도 기침을 하는데 아이의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상황인 건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아이와 집을 나섰다. 소아병원과는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우리 집은 산골 오지인지라, 아이들이 아플 적마다 곤욕이다. 그날따라 장마 주간이라 비가 쉬지 않고 내리고 있었고 아이는 마치 숨을 쉬듯 멈추지 않고 기침을 해대니 나는 운전하면서도 온몸이 쭈뼛쭈뼛 어깨부터 발가락 끝까지 경직된 상태였다. 마른기침을 하는 것 같아 물을 마셔보라며 텀블러 한 병 가득 물을 담아 건넸고 아이는 병원을 가는 내내 물만 마셔대서 방광이 가득 차, 도중에 빈 병에 소변까지 보고 가는 길.


나름 침착하게 운전대를 잡은 채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장대비를 헤쳐나가며 아이의 기침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만 5세 이전에 기관지염을 자주 앓았던지라 가슴을 들썩거리며 힘겨운 호흡으로 깊은 기침을 하거나 콧물이 뒤로 넘어가면서 나오는 가래기침 소리, 혹은 인후통으로 인한 기침소리 중 그 무엇과도 관련이 없는 듯 들렸다. 아이의 기침소리는 꽤 얕았고 입에서만 나오는 소리쯤으로 들렸다.

그 큰 빗소리조차 무음 처리될 만큼 나의 귀는 온통 아이의 기침소리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는데 그저 병원에 빨리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서두르지 않고 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 아이의 증상을 엄마의 관점으로 조금은 빨리 '진단'해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당연히 의사의 진단이 정확하지만 아이를 제일 잘 알고 있는 엄마의 감은 틀리지 않았다. 소아응급실에 도착해서 아이에게 전혀 필요도 없는 코로나 검사를 병원 방침 상 어쩔 수 없이하고는 엑스레이까지 찍어보았는데 이상 無. 코가 아주 조금 뒤로 넘어가는 건 있지만 이 정도로 기침하진 않을 것이고... 하면서 내 의견에 의사 선생님도 힘을 보태셨다.


엄마의 진단명: 기침 틱

눈 깜빡 거림과 코찡긋거림, 음음소리내기. 이 증상들이 아이가 작년 즈음부터 보였던 틱 증상들이다.

사실 눈 깜빡 거림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알레르기 증상으로 인한 결막염으로 판단 내리고 싶어 안과를 들락거리거나 전반적으로 알레르기에서 기인했다고 판단하고 '싶었다'

그러다 음음 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부터 틱임을 인정했다. 서천석 교수님의 오디오 클립을 듣고 보니 심각한 문제로 여길 '병'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사실 아이의 틱에 가장 문제가 되는 요인은 '부모의 불안'이었고, 그냥 시간이 지나면 만 15세를 기점으로 10명에 9명은 다 좋아진다는 의견이었다. (물론 아이가 불편을 크게 느끼거나 스스로 병원에 가보고 싶어 한다면 치료를 받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 하셨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이 말을 들은 부모가 예후가 좋지 않을 1명에 집중한다면? 그때부터 아이의 상태와 부모의 마음은 지옥 밭을 거니는 것이다. 내 남편이 그랬다. 뚜렛까지 가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에서부터 자기가 군 시절 때 틱을 심하게 했던 동기가 있었는데 정말 힘들어 보였다고, 우리 아이도 심리센터나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렇다고 내가 처음부터 아주 긍정적으로 9명에 집중한 건 아니었다. 그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다소 부정적인 사건을 미리 끌어당겨 염려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했던 것뿐이다. 예전의 나라면 충분히 부정적이었을 테지만, 남편이 그러는데 나까지 부정 에너지를 보태서 내뿜고 싶지 않았고 지속적인 독서의 영향인 건지 나의 뇌가 긍정적 에너지를 내뿜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아이가 성장하면서 마주할 일들은 틱 외에도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시간을 들여야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더욱 더 '문제'로 여기고 싶지 않다. 틱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면 정작 박수쳐주며 기뻐할 일에서부터 멀어질지도 모를 일이고.


정말 이상하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창 성장하는 아이가 틱쯤은 겪어줘야 건강한거 아니겠어?' (그렇다고 틱을 하는 게 정상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냥 아이의 엄마로서, 한 개인으로서 그렇게 생각을 하고 마음을 먹어야만 아이의 증상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시간에 맡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성장하는 아이의 뇌에서 여러 가지 물질이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하는 과정 중에 근육의 불수의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나오는 찡긋거림이나 기침소리가 감사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네가 크고 있구나'...


무탈한 일상을 엄마는 바라겠지만 일이 일어남으로 인해 더욱 단단해진다. 아이의 틱은 더 심해질 수도, 아니면 아무 증상 없었다는 듯 금세 사라질 수도 있다. 아이는 괜찮다. 부모가 괜찮지 않은 시간을 되풀이할지라도 기다림으로, 그것도 아주 느린 기다림으로 처방해 준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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