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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준한거북 Jul 11. 2022

틀밖에서 놀기? 어미부터!

날계란 파티

"그만~~~~~~~ 계란은 제발 좀 그만!"

요즘 들어 틈만 나면 냉장고를 열어 날계란을 꺼내 놀고 싶어 하는 네 살배기 둘째 아들.

컨디션이 좋으면 계란 꺼내 놀다가 깨 먹어도 치우는 노동을 한 번쯤은 수긍하는데 그것이 반복이 되면 어김없이 부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래도 아이에게 안된다는 말을 자주 내뱉지 않으려 애쓰는 편이라 그릇에 놓고 가지고 놀게도 해보았는데 내 바람대로 한 자리에 앉아 얌전히 관찰하면 얼마나 좋냐만은, '그건 날계란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싶게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가지고 다닌다. 저도 처음엔 조심스레 가지고 놀다가 엄마의 신경이 다른 곳을 향해가면 계란은 여지없이 깨지는 건지 깨뜨리는 건지.. 어찌 되었건 와자작 깨지고 만다.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아이가 계란을 깨 먹어서 엄마 기분도 상하고 아이에게 화를 낼 바에야 계란을 아이 손 닿지 않는 위쪽 수납칸에 올려놓으면 되지 않았나 싶다. 결국, 내 화는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이란 말인가.

하...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위쪽으로 이사를 보냈어도 우리 둘째는 용케도 그걸 꺼냈을 거야'라고 단정 짓는 나.


게으르긴 해도 나름의 묘책을 떠올려 삶은 계란을 쥐어주기도 했다. 그걸 깨서 가지고 놀다가 단백질도 먹고 얼마나 좋아? 일석이조지! 하며 계란을 삶아주면 그건 또 그거대로 잘 먹고 만족해한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 둘째 녀석은 날계란이 더 좋은가보다....... 깨질 때 소리가 쾌감이 있나?


그렇게 계란을 꺼내는 아이를  불러 세워놓고는 뜬금없이 물었다.

"할머니 댁 갈래?"

"응!"

"가면 며칠 동안은 엄마랑 떨어져 지내고 잠도 할머니 할아버지 하고만 자야 하는데 괜찮아?"

"응! 갈래!"

계속 계란 깨기 하고 어미랑 실랑이할 바에야 오랜만에 너도 조부모님의 안정적인 사랑받으며 지내는 게 어떨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이가 싫다 하면 보내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아이도 흔쾌히 수긍했고 들떠있었다.

그런데 하필 나는 왜 계란 만지는 타이밍에 그  제안을 했을까?'내가 말썽을 부리니까 엄마가 할머니 집에 보내는 건가? 엄마를 힘들게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아이가 수긍을 한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가긴 했다.

그래도 아이가 가겠다고 했으니 너무 많은 생각은 제쳐두기로 하고 아이를 시댁에 보냈다.


아이와 떨어져 있는 지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마음의 여유도 채워지는 중에 생각해보았다. '둘째가 오면 놀다가 또다시 날계란을 만지는 순간이 오겠지. 그럼 나는 계란 한 판은 버린다는 생각으로 아이 옆에 자리 잡고 앉아, 함께 계란을 깨볼테야. 삶은 계란도 아니고 오직 날계란으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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