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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니

by 책읽는아이린

주말에 동네 뒷산을 올랐다. 나뭇잎들이 오월의 옷을 입고 있었다. 초록이 내뿜는 산소를 마시며 한 발 한 발 올라갔다. 가파른 곳에는 등산객들이 편하게 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은 수없이 밟히며 아무 말 없이 그저 등을 내주고 있다. 그 등을 밟으며 지나간 등산객들을 생각한다.

숲길에 돌탑이 있다. 아래에는 큰 돌, 위로 갈수록 작은 돌들이 균형을 잡고 서 있다. 나도 맨 위에 돌 하나를 올렸다. 가족 건강과 내 바람을 빌었다. 사람들은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정상에 올라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전등을 따라 절에 갔다. 절로 가는 길바닥에 나무마루판을 대어 놓은 것이 눈길을 끌었다. 가로수처럼 나무들이 서 있는데, 그 나무들을 베어내지 않고 시공했다. 그 대신 나무판을 나무 둘레만큼 동그랗게 오려 잘라내고 깔았다.


공사를 한지 오랜 시간이 지난 것으로 보인다. 나무들이 자라서 그 원과 맞부딪치고 있었다. 어떤 나무는 원에 꽉 끼어 몸이 파이고 있었다. 말을 못 하는 식물이지만 얼마나 아플까.

마치 강아지가 어릴 때 찬 목줄이 작아져 목의 살이 파이는 모양새다. 그런 강아지를 구조해 목줄을 풀어주는 광경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나무들이 살려달라고 말하는 것 같다. 동그라미 너비를 나무의 성장에 맞게 넓혀 잘라줘야 한다. 사진을 찍었는데, 이곳을 관할하는 곳을 알아봐야겠다.


내려올 때 발걸음이 힘들어질 무렵,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서 이 산길을 내려가야 할 텐데.

나무와 풀, 꽃들이 잠시 자신들을 보며 쉬어가라고 한다. 운동기구가 있는 쉼터 벤치에 잠시 앉았다. 저 아래 한강이 보인다. 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간다. 그 속에 개미만 한 사람들이 타 있다.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저 보다 더 작을 것이다. 아니면 먼지보다 작아 보이지 않거나.


산에 올라 눈앞에 놓인 것들에 신경 쓰다 보니, 마음에 자리했던 그림자가 사라졌다.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 일을 마음에 담고 있던 나를 발견하게 된다. 산에 오르니 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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