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은 고스란히
엽흔(葉痕)은 잎이 떨어진 뒤에 줄기에 남아 있는, 잎이 붙어 있던 흔적입니다. 가을 낙엽 이후 겨울 나무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잎에 붙었던 자국을 말하지요. 겨울이 되면 꽃도 단풍도 다 떨어져 '저 나무가 벗꽃나무였는지, 은행나무였는지 심지어 플라타너스였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곤 합니다. 하지만 다 똑같은 나무가 아니지요. 그림책 <다 똑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를 보면서 "맞아, 나도 같은 생각이었는데~" '저 나무가 뭐였지?' 하며 한해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엽흔
낱말을 듣는 순간 주워 담았습니다. 엽흔은 다름 아닌 잎과 가지가 이어져 있던 곳이니 그 나무의 어제와 내일을 의미하고 있지요. 연이어 나의, 우리들의 흔적을 떠올려 보게 됩니다.
찬란했던 어제와 다시 일어설 내일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오늘의 흔적, 내가 가진 흔적을 되돌아 봅니다. '어제까지의 내 모습은 어땠을까?' '지금 까지 이 흔적은 다가 올 미래에 어떤 모습이 되어 나타날까?' 흔적의 모양을 보려면 내면을 들여다 봐야 하는데, 지금 나의 내면이 너무 복잡합니다. 복닥거리고 있는 오늘 마음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요?
그래서 잠시 멈춤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바빠 나를 돌보지 못할 때 명상이나 운동, 산책을 추천하기도 하고, 독서나 글쓰기를 권하기도 합니다. 경험에서 우러나 하는 말일 겁니다. 이 모두는 자신을 돌보고, 또 되돌아 볼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쉴수없는 인생
임신을 하고도 일을 놓은 적은 없고, 아이를 낳은 날에도 일을 하다가 병원에 갔습니다. 고위험 산모라 갑자기 수술로 아이를 낳고 채 두달도 안되어 출근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달렸습니다. 보통 결혼과 출산의 경험을 가진 워킹맘들이 일만하고 살았다!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을 좀 쉬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좀 즐겁게 살아보자, 못해봤거나 미뤄 두었던 일도 해보자. 사람들과 어울리고 함께 즐거운 일이거나 또는 이로운 일을 찾아보자~' 이제 해볼까 하고 있었는데 일이 터졌습니다. 평생 일만 하다 죽을 팔자인가 봅니다. 힘들어도 일하고, 병들어도 움직여야 하는 인생을 살아야 하나 봅니다.
엽흔없는 인생이 어디있겠습니까? 갈 때 남길 나의 엽흔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요? 잠시 눈을 감고 어제와 오늘에 따라 달라질 엽흔의 모양을 그려봅니다. 이왕이면 하트를 닮은 엽흔으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