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잘 버텨냈다고 생각했다.

직장인 괴롭힘은 어디에 신고해야 하나요.

by 북극곰

딱 1년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시간 말이다. 그래서 1년 반이 지난 지금은 그 일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오히려 정신적으로 힘든 만큼 지난 후에 내 멘탈이 강해졌다고 믿었다. 그러니 내가 겪은 고통은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위기로 버텨낸 내게 발령 기회가 왔고 그 힘듦을 털어놓을 브런치를 만나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에야 알게 된 게 그때 나는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괜찮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 주말이면 나는 늘 누워 지냈다. 그리고 그렇게 누워만 지내다가 밖에 나가면 홀로 술을 마시곤 했다. 평일 일하며 들은 폭언은 주말까지 내게 남아 ‘나는 부족한 인간이야’라는 자책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홀로 술을 마시며 우울에 젖어 살았다. 나의 주말은 잠과 술로 채워졌다.



나는 꼿꼿이 버텨낸 게 아니라 도망갈 곳도 의지할 곳도 없어 바듯이 서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때 나를 돌아보면 그 당시 나는 마음이 아팠고 우울증도 오지 않았나 싶다. 마음이라는 게 상처가 나도 얼마나 깊은 상처인지 보이지 않고 아픈 당사자도 아픈 줄도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 당시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단순히 상사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했다.



밝은 모습을 점점 잃었었고 악몽을 꾸며 밤을 설치기도 했고 내 시간이 생기면 잠을 자거나 술을 마시며 현실에서 도망가려고 했다. 고작 직장 상사인데 그 당시 내게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었다.


한 번은 유부남 선배와 대화를 하다가 주말에 와이프가 화가 나서 같이 밥 먹다가 체했다고 말하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유부남 선배에게 질문했다.


“와이프가 무서워요? 지점장이 무서워요?”

“당연히 와이프가 무섭지. 지점장은 퇴근하면 끝이잖아.”

“헉.. 어떻게 지점장보다 무서울 수 있죠..? 그럼 와이프가 무서워서 악몽을 꾸시기도 하나요?”

“아니 그 정도로 무서우면 같이 못살지”


그 당시 내게 무적의 공포 대상이던 지점장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내 업무시간 외에 퇴근 이후, 주말까지도 공포감을 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 선배들은 나보다 멘탈이 강했기에 그 폭언 속에서도 주말에는 스스로 삶을 지켜낼 여유가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회사보다 중요한 자기의 삶 속에서 가족에게 의지했기에 와이프가 가장 무섭다고 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가 그렇게 심하게 지점장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반면, 나는 그녀의 폭력을 받은 후에 내 시간을 살아낼 여유가 없어 주말이면 아픔에 빠져 지낸 것이다. 그리고 그 아픔 속에서도 여전히 내게 가장 크고 두려운 사람은 그녀였다. 내 삶 속에서 회사의 중요성은 컸고 나는 회사에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의지하는 게 컸기에 그녀의 존재가 그 누구보다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공포의 대상인 그녀가 내 삶을 쥐고 흔드는 것만 같았다.



홀로 그 괴롭힘을 맞고 서 있으면서도 나는 가족 중 아무에게도 말하지도 의지하지도 않았다. 가족에게 정서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의지하지 않아서 나 혼자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어쩌면 그 생각이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걸 자세히 말하지 않다가 어쩌다 엄마에게 회사에서 상사가 나를 못살게 군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엄마는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셨는지 가끔 내게 “너가 야무지게 일을 못해서 그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야?” 혹은 내가 맘에 안들 때면, “니가 그러니깐 회사에서도 이00 지점장이 뭐라 하는 거야.”라고 말하며 내게 원인을 찾으며 나를 괴롭히는 그녀를 두둔하기도 했다.



나 자신에 확신도 없고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못하는 약한 내게 그 말은 가시가 되었다. 엄마는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한다고 하고 입을 닫았지만 우울에 빠져있을 때면 그녀가 아닌 나를 자책하고 있었다.


‘내가 일을 못해서 그녀가 그런 거다.’

‘나는 도대체 뭘 하며 살아야 하나’

‘삶에 아무런 재미가 없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괴롭힘에서 해방되고 나서 나는 내가 잘 버텨냈다고 생각했다. 그 일을 통해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많이 아팠던 나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지난 일을 미화하고 있었을 뿐이다.



직장에서 괴롭힘을 겪고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나는 그 정도까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나도 치료를 할 만큼 아팠지만 스스로 아픈 줄도 모르고 살아내고 있었던 거 같다. 잘 버텨낸 게 아니라 병들고 있던 나를 이제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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