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이 애매하게 안 좋았던 나는 취준생이 돼서야 렌즈를 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번 렌즈를 끼기 시작하니 취준생을 지나 직장인이 돼서도 렌즈를 끼는 게 익숙해졌다. 그렇다고 사실 안경보다 렌즈가 편했던 건 아니었다. 신입 시절, 오전 9시 출근해서 밤 11시까지 렌즈를 낀 채 회사에 있다 보면 눈앞이 뿌애지고 뻑뻑해지곤 했다. 그래서 나는 저녁을 먹고 나면 늘 렌즈를 벗고 안경을 쓰고 일하곤 했다.
그러다가 회사에서 다른 지점 사람들과 함께 모일 일이 있었는데 이전에 우리 지점에 놀러 와서 안경 쓴 나를 봤던 여자 선배는 안경 벗고 렌즈 낀 내 모습을 반가워했다.
"어머 예쁘다. 그래 비즈니스 할 때는 좀 가꿀 필요가 있어."
그때 나는 화장기 날아가고 안경 쓴 내 모습이 비즈니스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나는 4년간 회사에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안경을 쓰지 않았다. 안경을 쓰는 것과 일하는 것이 연관 있다는 피드백을 들었기에 직장에서 안경을 쓰는 일을 줄어갔다.
그렇게 4년이 지나서 매번 일회용 렌즈를 사는 것도 오랜 시간 렌즈를 끼는 것도 버겁게 느껴지자 라식수술을 고민했다. 라식 수술을 안과에 문의하니 라식이 가능한지 라섹이 가능한지 검사를 해야 하는데 그 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일주일간은 렌즈를 착용한 적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때 샀던 그동안 묵혀둔 안경을 꺼내 쓰고 다니기 시작했다.
안경을 쓰고 다니자 안경 낀 내 모습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이렇게 내게 안경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안경 쓴 남자였다. 아이러니하게 안경을 쓴 남자가 안경 쓴 여자를 지적하는 것이다.
"안경 왜 썼어?"
"안경 쓰니깐 조교 같아."
"나이 들어 보여."
"안경 벗어."
그렇지만 오랜 시간 렌즈만 끼다가 안경을 끼니 눈이 편했기에 나는 그 말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눈 검사를 핑계로 계속 안경을 쓰고 다녔다. 결국 라식 수술을 할 타이밍을 놓치고 발령이 나자 나는 라식 수술 대신 좀 더 잘 어울리는 안경을 샀다. 그동안 들은 안경에 대한 말들은 안경이 이상해서 받은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안경을 구매하고 본격적으로 회사에서는 안경을 끼고 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안경을 바꾸고 더 자주 안경을 끼고 다니자 나는 이전보다 더 많은 말을 들어야 했다.
"왜 갑자기 안경 썼어?"
"너 안경 왜 써?"
"안경 뭐야?"
"안경쓰니깐 전문직 여성같아."
똑같은 말을 매일같이 들어야 했고 나는 눈이 나빠서 쓰는 안경을 왜 써야 하는지 늘 해명해야 했다.
"눈이 나빠서요."
사실 예전에는 내가 안경을 쓸 때마다 어울리지 않는다, 나이 들어 보인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내가 진짜 안경이 안 어울려서 혹은 내 안경이 진짜 이상해서 그런 말을 듣는 줄 알았다. 혹은 갑자기 안경을 쓴 내 모습이 어색하고 낯설어서 그러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안경도 나도 잘못이 없다. 일하러 가서 눈이 나쁘면 안경 쓰고 일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안경 쓴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보는 사람들의 눈과 생각이 이상했던 거다. 여자는 안경이 아닌 렌즈를 껴야 한다, 여자는 예뻐 보여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나는 일을 하러 간다. 거래처와 소통하고 컴퓨터를 끊임없이 봐야 하는 보통의 회사원들의 일 말이다. 그런데 나는 예쁘지 않을 때 이상하고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직장인이 된다.
새로운 직장에 갈 때는 면접 때부터 계속 안경을 끼고 갔다. 그러다가 한번 렌즈를 끼고 가자 사람들은 내게 안경을 벗고 다니라고 했다. 안경을 벗은 게 훨씬 예쁘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예뻐 보이고 싶어서 출근하는 게 아닌데 말이다.
2년 전에, 한 여자 아나운서가 뉴스에서 처음으로 안경을 쓰고 나와서 받았던 수많은 관심들을 2020년 나도 내 작은 일터에서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