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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Jul 23. 2021

상처가 글쓰기로 치유되는데 걸리는 시간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 건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겪은 고통은 내 잘못으로 비롯된 일이 아니라고. 나는 그저 운이 나쁜 피해자라고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



벌써 3년 전이다. 사회초년생이던 27살의 내가 직장에서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한 건 말이다.  이 회사 말고 다른 회사를 알기에는 경험도 적었고 너무 어렸기에 내가 있는 조직이 내게는 전부 같았다. 그렇게 내 세상이 작았기에 나를 괴롭히는 그녀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더 무서웠다. 탈출을 꿈꾸는 건 마치 이 세상 말고 다른 세상이 있을 거라 상상하는 거만큼이나 미지의 세계였다. 그래서 나는 다른 곳을 꿈꾸기보다 주어진 괴롭힘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예 탈출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른 곳으로 사내 이동을 신청하기도 했지만 내가 아닌 후배가 선택되는 걸 보고 나는 역시 부족한 사람인가라는 자괴감만 쌓였다. 그렇게 나는 작은 탈출시도에 실패하고 자력으로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에 무기력함을 느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롯이 버텨내는 것이었다. 그저 버티는 것은 어쩌면 나를 더 깊숙한 심해로 밀어 넣어 발버둥 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들었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그때 나는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회사를 다녔다. 그녀가 오늘은 또 내게 어떤 괴롭힘을 내릴지, 나는 오늘 또 어떤 형벌 속에서 고통받아야 할지 예측하며 말이다.


구원을 포기한 채 일 년을 당해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괴롭던 일 년 간 아무런 글도 쓰지 않았다. 내가 처음 브런치를 시작한 게 그녀로부터 받은 괴롭힘을 털어내고 나를 치유하고자 함이었음에도 나는 한창 괴롭힘을 당하던 순간에는 글을 쓰지 않았다. 어쩌면 끝없는 절망이 나를 옮아 매고 있어서 글조차 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괴로움에, 슬픔에, 서글픔에 쓰라린 마음을 적어 내려  수많은 글들은 가장 아픈 순간에  내려간 글은 아닐 것이다. 곪고 곪다가 터져서 이제는 딱지가 얹어 상처를 꾹꾹 눌러도 무감각해졌을 때쯤 써진  아닐까. 상처를 요리저리 러보고 문질러 봐도 아프지 않게  때쯤에야  상처를 마주 보며 글을   있다. 그리고 그런 무덤덤함이 어쩌면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눈물짓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의 상처 또한 괴롭힘에서 벗어나고도 1년이 또 지나서야 겨우 내 상처를 들여다보며 글로 위로할 수 있었다. 많이 아팠을 텐데 고생했다고 견뎌줘서 고맙다고..글로 쓴 것보다 그 당시 더 심한 말도 들었고 더 심한 고통도 있었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때의 감정과 상처가 시간이라는 맷집에 무뎌졌을 때쯤 비로소 나는 무뎌진 그때의 기억을 묵묵히 글로 써 내려갈 수 있었다.


그러니 치유의 글쓰기는.. 생생한 아픔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아픔의 잔재, 진물과 고름이 생기길 반복하다 이제는 딱딱해진 상처의 딱지에 연고를 바르는 정도의 치유일 거다. 고름이 피어나는 시뻘간 상처를 글로 치유하기에는 상처를 바라보는 것조차 따끔거리니깐.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내 안에 상처도 글로 치유될 수 있을까. 딱지가 앉을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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