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으로 대표되는 고전역학은 우리에 눈에 보이는 거시적 세계의 역학이다. 이에 대비되는 양자역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적 세계의 역학을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세계이기 때문에 실측을 할 수 없다. 실측을 하는 그 행위 만으로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완벽한 실측이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아직까지 고전역학에 비해 그 세계가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다. 상대적으로 많이 인정받는 가설이 있을 뿐이다. 양자 역학을 설명하던 김상욱 교수는 한 토론에서 양자역학이 이해할 수 없는 학문이라고 했다. 본디 이해란 새로운 지식이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식에 결합될 수 있어야 하는데 , 미시적 세계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우리가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덧 붙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영상을 보는데 반발심인지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거시적 세계고, 우리 각자의 마음이 미시적 세계가 아닐까라는 생각. 그리고 이어서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란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가정을 긍정적으로 본다면 서로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으니 이해하는 마음도 커지고, 삶이 더 유연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남자들에겐 절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중 하나인 "오빠가 뭘 잘 못했는지는 알아?" 상황과 "오빠 나 오늘 좀 달라 보이지 않아?" 상황에서 여자 친구가 원하는 대답을 속시원히 해줄 수도 있다. "라면 먹고 갈래?"라는 중의적 질문에 이 사람이 원하는 게 정말 라면인지 나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도 있다. 또 "어떻게 넌 친구라는 게 내 마음 하나 모르냐?"같은 어색한 상황에 직면하지 않도록 미리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근데 과연 이렇게 좋은 일만 있을까?
신은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만을 가질 수 있게 하셨다.
출근길 아침 어느 집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괄호 안은 말이 아닌 생각이다)
여보 늦었어 얼른 일어나!(참 자기가 먼저 일어나서 밥 한번 차리는 역사가 없구만!!)
뭐야! 내가 지난번에도 밥 차리고, 설거지도 하고 그랬잖아! (쥐꼬리만큼 돈 벌어오면서 유세는...)
그래! 나 쥐꼬리 벌어오는 남자다! 넌 그런 남자 뭐가 좋아서 같이 사냐? (어차피 너 갈 때도 없는 거 아냐?)
참내.. 내가 갈 때 없어서 당신이랑 살고 있는지 알아? 진짜 이럴 거야!! .... 엉엉엉!! (울면 쪼금 미안해하겠지?)
우는 척하지 마! 다 티 나니까! 나 오늘 일 많아서 야근이니까 그리 알어!(간만에 포커한 판 때리고 와야지!)
어떤가? 이런 일들은 시작일 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가면을 쓰고 산다.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살면 본인이야 편하겠지만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인내의 쓴 열매를 삼키며 애써 사람들을 대한다. 그걸로 관계는 동작한다. 서로에게 진실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자신의 마음 내키는 대로 대하는 것은 미묘하지만 다른 일이다. 뭐든지 나 편하자고 하면, 누군가는 불편해지기 마련인 게 인생이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인생이 쓰다. 과연 우리에게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다행인 것은 양자역학과는 다르게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김상욱 교수님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경험과 지식에 새로운 지식이 결합되어야 이해가 된 다고 했다. 양자역학의 세계는 우리가 경험할 방도가 없지만, 사람의 마음은 매일매일 경험하면서 산다. 굳이 읽어보려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해해 보려 노력하면 할수록 마음은 (기존의 지식과 경험에 결합하여)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완벽하게 이해하는 건 영원히 불가능하다.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추측해 볼 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선물일지 모른다. 앞서 예를 든 것처럼 서로의 마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면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없지 않을까?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다. 양자역학도 모르는 게 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