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성호 May 23. 2019

첫사랑은 사람이 아니라 시절이다

사랑은 그저 사랑이라서 연재, 두 번째

                                                                                                                                                               

"우리가 첫사랑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 그 시절의 추억을 지키고 싶은 마음 때문은 아닐까. 첫사랑이 안겨주는 아련함은 어쩌면 사람이 아니라 시절인지도 모르겠다."                                                                                         




첫사랑은 사람이 아니라 시절이다

_사랑은 그저 사랑이라서, 연재 part 2.



“나 좋아해줘서 고마워.”

“나도 널 좋아했던 그 시절의 내가 좋아.”

_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건축학 개론>, <김종욱 찾기>, <너의 결혼식>, <플립>, <노트북>, <클래식>, <베스트 오브 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등…. 첫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하나같이 아련하고 소중했던 지난날을 회상하게 만드는데, 엉뚱하고 숫기 없는 주인공의 모습이 지난 내 모습 같기도 하고, 영화의 조연 캐릭터들은 마치 그 시절을 함께한 친구 모습 같기도 해서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든다. 



주변 사람의 첫사랑 얘기를 듣는 기회가 생길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의 연애사에 큰 관심이 없는지라 ‘누가 이랬고 누가 저랬네’ 하는 얘기에 흥미가 없는 편이지만, 이상스레 첫사랑 얘기만큼은 귀가 쫑긋 세워지곤 했다. 신파가 난무하는 막장 드라마나 불안 요소가 가득한 사건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럴까. 첫사랑을 말하는 사람의 눈에는 항상 우수가 차고, 듣는 사람의 눈에는 호기심이 어린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를 유랑하듯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 시절 그 때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첫사랑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 그 시절의 추억을 지키고 싶은 마음 때문은 아닐까. 첫사랑이 안겨주는 아련함은 어쩌면 사람이 아니라 시절인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사랑이나 사람보다 그때의 교실이, 그때의 담벼락이, 그때의 해변이, 그때의 가로수길이, 그리고 그때의 내가 그립고 아련할 때가 더 많으니까.



영화 <김종욱 찾기>에서 주인공 서지우(임수정 분)는 자신의 첫사랑을 여전히 잊지 못하지만, 막상 그 대상을 찾는 것은 꺼려하는 눈치였다. 그때의 소중한 시절을 얼룩지게 하기가 싫어서였다. 열렬히 좋아했던 사람이 과거의 모습과 다를 때, 그리고 상대의 추억 속에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지금의 나와 다를 때, 한 사람의 향긋한 추억은 그 순간 향기를 잃게 될 테니까. 그런 면에서 볼 때 극 중 한기준(공유 분)이 진행한 ‘첫사랑 찾기’ 사업은, 사람은 찾아주되 추억은 잃게 만드는 위험천만한 사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누군가의 말처럼, 첫사랑은 추억으로 남을 때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법이니…



‘그 사람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낼까?’ 

옛 편지, 오래전 싸이월드 흔적을 뒤적거리다 SNS에 괜히 지난 연인의 이름을 검색해본 적이 있다. 흔한 성이었던 연인의 이름 탓에 행적을 찾지 못했고, 결국은 수확 없이 같은 이름을 가진 낯선 이의 근황들만 잔뜩 구경하고는 했다. 나와는 관련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애잔한 첫사랑이었을지도 모를 사람들의 계정에서 말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영화 <건축학 개론>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대사. 절친한 친구 녀석의 말처럼 <건축학 개론>은 우리에게 큰 감명을 안겨주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두 가지, 수지와 저 대사만큼은 마음 깊숙한 곳 어딘가를 두드렸다. <건축학 개론>을 보면서 문득 ‘나도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곤 했는데, 이어서 몇 편의 첫사랑 영화를 추가적으로 감상한 후로는 이와 같은 바람이 마음에 자리했다.




만약 내가 누군가의 첫사랑이라면, 나를 좋아해주었던 그 고마운 사람이 앞으로 평생 나를 찾지 못하면 좋겠다. 그럼 적어도 그 사람은 오랫동안 나를 추억하고, 그때 그 시절을 그리며, 한 평생 설렘으로 살아갈 수 있을 테니.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은 감성이 시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