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저 사랑이라서 연재, 세 번째
"첫 만남에선 서로가 그저 나무 한 조각일 뿐이지만, 나무가 붙고 난 후로는, 헤어지는 순간이 올 때에는, 나무 조각뿐 아니라 나무 조각 사이사이에 붙어 있는 수많은 못 또한 함께 떼버려야 비로소 둘을 갈라놓을 수 있다"
_사랑은 그저 사랑이라서, 연재 part 3.
“형, 그 정도라면 형이 먼저 말을 꺼내야 하지 않겠어?”
오랜 시간 친한 형의 고민을 들어주다 답답한 숨을 길게 늘어뜨렸다.
“그게 맞는 거겠지…” 형은 씁쓸하게 웃더니 빈 맥주잔을 들어보였다. 점원은 우리에게 다가와 맥주를 더 하겠냐고 물었고, 나 또한 남은 맥주를 비우고서는 잔 두 개를 점원에게 내밀었다.
갓 뽑아 나온 새 맥주는 뽀얀 거품을 머리에 인 채 모습을 드러냈고, 우리는 침묵의 입자를 비집고 억지로 ‘짠’ 소리를 내며 잔을 부딪쳤다.
오랜 연애를 해온 형은 이젠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며, 관계가 계속 곪아가고 있다며 토로했다. 누가 먼저 헤어짐을 통보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걸 서로가 분명히 알고 있지만, 관계를 잘라낼 칼자루를 서로에게 미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뱉어야 하지만 뱉지 못하는 그 말, 그래서 삼키고 또 삼킬 수밖에 없는 말. ‘이별’이라는 무거운 추였다.
자정을 앞둘 무렵 장소를 옮겨, 소주까지 거하게 마신 형은 자신도 모르게 내뱉는 추임새처럼 대화 도중 그녀와의 추억을 반복적으로 회자했다.
“처음 만난 곳이 여기 그 근처야. 그땐 진짜 예뻤거든, 얼굴에 잡티 하나 없었다니까. 아, 진짜로!”
어련할까. 이럴 땐 나도 확 같이 취해버리면 좋으련만, 사정상 과음할 수가 없었던 내 상황이 괜히 원망스러웠다. 아무튼, 그 날 형은 끝내 미끄러지듯 택시 뒤 칸에 올라탔고, 오늘 즐거웠다는 말을 창밖으로 던진 채 시야에서 멀어졌다.
형은 자신의 관계가 조각난 나무처럼 딱딱하다고 말했다. 형의 말을 들으며 문득 든 생각은, 만약 사람과 사람이 조각조각 나있는 나무와 같다면 그 나무를 붙이고 이어놓는 것은 추억이라는 ‘피스못’이라는 거였다. 첫 만남에선 서로가 그저 나무 한 조각일 뿐이지만, 나무가 붙고 난 후로는, 헤어지는 순간이 올 때에는, 나무 조각뿐 아니라 나무 조각 사이사이에 붙어 있는 수많은 못 또한 함께 떼버려야 비로소 둘을 갈라놓을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쉽게 떼어낼 수 없다는 것….
어쩌면 형은 그러한 이유에서 이별을 망설이고 있는 게 아닐까. 오랜 관계를 끝내기 위해선 반드시 먼저, 상처투성이가 될 준비를 해야만 하니까.
*본 연재는 신간도서 '사랑은 그저 사랑이라서'의 선공개 챕터이며, 도서는 5월 마지막주에 출간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