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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성호 Sep 07. 2017

“왜 가을이 되면 책이 읽고픈 걸까?”

책바람이 부는 독서의 계절.

우리나라에는 사계절이 있는데, 왜 하필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 불리는 걸까요? 과거 사람들은 가을을 수확의 계절이라 불렀습니다. 추운 겨울철을 무사히 보낼 열매와 식량을 비축하는 계절이었지요. 그래서 옛 시대의 사람들에게 가을은 여유와 풍족의 계절이었습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푹푹 삶는 듯한 무더위를 식혀주는 초가을의 바람은 쌀쌀하기보다는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보다,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겨울보다, 이제 막 보드라운 새싹이 피어나는 봄보다, 마음이 한결 평온해지는 가을은 독서하기에도 참 좋은 계절입니다. 환경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평온함과 여유가 느껴지는 시기니까요.

그런데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독서를 시작하기에는 새로움을 알리는 봄이 더 좋지 않나요?”라고 말이지요. 그래서 나는 독서하기 좋은 순서대로 사계절의 순위를 매겨보았습니다. 물론 이 순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에 따른 것입니다.

‥Spring of Beginning‥


나에게도 1위는 단연 가을입니다. 이어서 2위는 봄, 3위는 겨울, 4위는 여름인데요. 그중에서도 봄이 두 번째인 이유를 먼저 말해볼까 합니다. 시작을 알리는 봄은 가을만큼이나 독서하기 좋은 때입니다. 학생들은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고, 졸업생은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고, 풀들도 겨울에 감춰놓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계절이지요.


그런 계절에는 나에게 설렘을 안겨줄 무언가를 찾게 되는데요. 그중 하나가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연홍빛 벚꽃과 푸른빛의 하늘이 어우러지는 봄. 그래서인지 봄에는 밝은 파스텔 톤의 표지를 입은 가볍고 희망적인 내용을 다룬 책들이 많이 등장하고 판매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봄은 항상 바쁜 계절이기도 합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만남도 시작되고, 회사 일도 본격적으로 탄력받는 시기이니까요. 이렇듯 상대적으로 해야 할 과제가 많은 봄은, 독서의 계절이라 하기엔 살짝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Winter of Resolution‥


봄의 뒤를 이어 3위를 기록한 겨울. 우리는 한창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1월에 새해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서 이맘때는 다이어리 판매량이 늘어나기도 하는데요. 해마다 새롭게 쏟아지는 다이어리에는 수많은 다짐과 계획들이 쓰이고 버려지기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적히는 수많은 ‘To Do List’ 중에는 독서라는 항목이 매년 빠지지 않고 포함됩니다. 물론 나 또한 이 시기에 본격적인 독서를 다짐하곤 했고, 그 서막의 첫 장을 입김을 불어가며 넘기곤 했습니다. 그래서 열정만 놓고 본다면, 겨울이 봄보다 한 수 위일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봄이 겨울보다 독서에 가까운 이유에는 내적인 요인과 외적인 요인이 있는데요. 우선 내적인 요인은 겨울에는 너무 많은 계획들이 한꺼번에 세워진다는 점입니다. 이것저것 실천하고 싶은 게 많다 보니, 독서 하나에만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물론 봄도 할 일이 많은 바쁜 계절이기에 어떤 면에선 비슷할 수 있으나, 여기에는 외적인 영향, 즉 날씨가 한몫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지나치게 춥거나 더우면 나태해지게 마련입니다. 축축 늘어지거나 잔뜩 웅크리게 되지요. 마음은 몸의 영향을 많이 받기에, 상대적으로 몸이 가벼워지는 봄과 가을에 비해 겨울은 몸이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전기장판의 달콤한 유혹은 내 몸을 무겁게 만드는 주범이지요.

‥Summer of Survival‥


그리고 마지막으로 4위의 불명예를 안은 여름. 여름에는 우선 살고 볼 일입니다. 점점 더워지는 여름에는 뜨거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것조차 힘이 듭니다. 시원한 카페를 찾아 책을 읽기도 하지만, 하나라도 덜 입고 싶은 여름이기에 책을 들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습니다. 더욱이 여름은 바캉스의 계절이기에 모두들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는 의무감 아닌 의무감을 은연중에 갖게 됩니다.

물론 휴가지에서 책을 읽는 이들도 많지만,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 수에 비하면 여전히 적은 비율입니다. 이젠 바나나를 키워도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그저 농담처럼 들리지만은 않을 정도로 점점 더 무더워지는 여름은, 앞으로도 독서와 가장 먼 계절이라는 오명을 벗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Autumn of Reading‥


그럼 다시 가을로 돌아와서, 이 계절에 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가을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독서의 계절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바 있거니와, 모든 의욕을 앗아가 버리는 무더위와의 싸움이 끝난 뒤에 찾아오는 평온함, 바쁜 한해의 절반 이상을 보내고 난 후의 여유, 수험생들이 '수능'이라는 고난의 레이스를 끝마친 뒤에 맛보는 해방감 같은 것들이 버무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여유로움을 되찾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독서에 있어서만큼은 1위 자리를 쉽게 내어놓질 않습니다. 그리고 가을은 남자의 계절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가을이 되면 맥코트를 입은 중후한 남성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곤 합니다.

이렇게 가을 하면 ‘코트’, 혹은 ‘독서’가 자동으로 연상되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주입된 마케팅의 효과일지도 모릅니다. 가을이 오면 왠지 코트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이맘때가 되면 책 한 권은 읽어야 할 듯한 생각이 드는 거지요. 꼭 책 한 권 정도는 허전한 옆구리에 끼고 다녀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나쁘지 않은 의무감 말이지요.  


                

<지금은 책과 연애중/저자낭독> “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된걸까?” Audio ver.

                                                                                                                                                                                                                                                                                                                                                                                                             


                                                               


쓸쓸한 가을이다.
내 옆구리는 여전히 시리다.
애석하게도 끼어줄 팔짱이 없다.

하…… 그래, 뭔 놈의 팔짱이냐.
그냥, 책이나 끼고 다니자.

그래, 너희는 카페가라.
나는 서점 가련다.

..지금은 책과 연애중
http://www.yes24.com/24/Goods/42708004?Acode=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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