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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성호 Sep 20. 2017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

북리뷰 / 소설 , 아몬드

                                                                                                                                                                                                                                                     

“브룩 실즈는 젊었을 때 알고 있었을까? 늙을 거라고. 지금이랑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이 들어 있을 거라는 거. 늙는단 거, 변한다는 거, 알고는 있어도 잘 상상하진 못하잖아.” -책,《아몬드》본문 中
  


알렉시티미아,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 불리는 질병.
이 소설은 선천적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신체를 가진 아이, 선윤재의 성장기를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다. 그에게 있어 유일한 가족은 엄마와 할멈(*극 중 주인공이 할머니를 부르는 호칭) 뿐이었다. 엄마와 할멈은 주인공이 사람들과 자연스레 융화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했다. 감정 없는 아이에게, 감정을 나타내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말이다.
     
다소 무미건조한 어투로 말하는 주인공이었지만, 그는 헌 책방을 연 엄마, 할멈과 큰 굴곡 없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에 만족해했다. 그리고 그 사소한 행복감은 보는 이에게 분명 전해져왔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주인공은 어느덧 혼자가 된다. 처절하게. 그리고 비참하게. 불행 중 다행히도 주인공은 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가족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이지만 ‘슬프다‘라는 감정을 극 중에 드러내진 않았다.
  

  “사람들은 남 얘기를 할 때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자주 잊어버린다. 말하는 사람은 작게 말한다고 생각해도, 그 말들은 대부분 여과없이 다른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책,《아몬드》본문 中
     
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외톨이가 된 후 같은 학급 친구 ‘곤이’를 만나며 또다시 시작되는 데, 둘의 만남은 시작부터 깨진 유리창 그 자체였다. 나는 깨진 유리조각이 어떻게 자리 잡을지 궁금해하며 다음 장을 계속해서 쥐어갔다.
     
소설은 허구(fiction)의 얘기지만, 한편으론 수필(essay)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겪었을 법한, 혹은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때론 소설의 이야기가 내 얘기가 되기도 하니까. 그래서 소설을 읽는 건 내가 발 딛고 있는 인간사를 되돌아보게, 그리고 기대하게 만든다. 소설 속 주인공의 희극과 비극을 교묘하게 관찰해가면서 말이다.
     
작가는 이 책을 내기까지 3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주인공을 만들고, 그 주인공이 마음껏 무대를 뛰어놀 수 있도록 시간을 열어둔 셈이다. 그래서 이번 작품은 꽤 완성도가 높았다.
     
극 중 주인공은 책을 가까이했다. 책은 그에게 말을 거는 친구이자, 선생이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곁에 머무른 주변인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책엔 ‘책’에 관한 좋은 구절이 유독 많았다. 나는 책 속의 ‘책’문구를 몇 구절 적으며 이 소설의 서평을 마치려 한다. 선윤재가 읽은, 그리고 손원평이 적은 글은 다음과 같다.
    
 
“책은 달랐다. 책에는 빈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단어 사이도 비어 있고 줄과 줄 사이도 비어 있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 앉거나 내 생각을 적을 수도 있다. 의미를 몰라도 상관없다. 아무 페이지나 펼치면 일단 반쯤 성공이다.”
     
“할멈의 표현대로라면, 책방은 수천수만 명의 작가가 산 사람, 죽은 사람 구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구 밀도 높은 곳이다. 그러나 책들은 조용하다. 펼치기 전까진 죽어있다가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쏟아 낸다. 조곤조곤, 딱 내가 원하는 만큼만.” -책,《아몬드》본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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