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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유 Oct 04. 2023

모든 순간의 기억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원래 성격이 어떠하건 꽤나 섬세해진다. 기질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좋아하는 사람의 모든 순간을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된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영화, 평소 습관, 웃음 포인트, 가족관계, 친구 관계. 좋아한다는 것은 그래서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모든 신경이 그 사람에게 쏠리고, 웃음 짓는 타이밍 하나하나까지도 관찰한다. 누구와 친한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걸음걸이로 걷는지까지. 평소 다른 사람에게 무심한 사람일지라도, 좋아하는 사람이 평소에 입지 않던 옷을 입고 오면 묘하게 신경 쓰인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관찰력과 기억력이 자연스레 풍부해진다.


 그 사람에 대한 온갖 정보는 나에게 소중한 것이 되기도 한다. 그가 좋아하던 햄버거 가게, 그녀와 함께 식사한 작고 허름한 식당, 그 사람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눈 프렌차이즈 카페. 매일 밥을 먹고, 매일 카페에 가는데도 이상하게 그 사람이 있었던 공간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작든 크든, 조용하든 시끄럽든, 그때의 호불호와는 별도로 모든 순간이 기억난다. 그 사람의 습관도 마찬가지. 궁금한 게 있을 때 짓던 호기심 어린 표정,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만사를 제쳐두고 뛰어드는 모습. 그리고 그 사람의 상처까지도. 그 사람에게 상처였다고 하는 기억들이, 어느샌가 상처로 보이지 않는 순간이 온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상처를 상처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누군가한테 사랑받는다는 건, 내 상처를 상처로 여기지 않는 사람을 만난다는 뜻이다. 나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나쁘게 여기지 않는 사람. 나의 모든 순간을 용납해 주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우리는 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라면, 그래, 나의 존재를 맡겨도 괜찮겠지. 그러니까 ‘연인’이라는 낱말은, 그 자체로 마음에 위로를 준다.


@AskUp #모든순간의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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