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연애 과학'의 시대
이 책은 연애 지침서가 아니다. 만약 ‘연애를 잘하는 9가지 방법’ 같은 내용을 기대한다면 다른 책을 찾아 읽어보는 게 더 유용할 것이다. 그렇다고 ‘사랑할 때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 같은 과학 서적은 더더욱 아니다. 굳이 이 책에 대해 정의하자면 ‘보편적인 사랑에 대한 에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사랑’ 그 자체가 아니라 ‘보편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까닭에 대해서는 조금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사랑의 속성은 본디 애매하다. 누군가는 상대방에게 쓴소리하는 게 사랑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상대방을 무조건 품어주는 게 사랑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똑같은 낱말에 이처럼 다양한 의견이 공존할 수 있을까. 저마다 경험한 사랑의 추억과 방법이 모두 다르기 때문일 터, 누가 옳고 그르다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편적인 사랑’은 어느 정도 정립된 바가 있다. 이 시대의 보편적인 사랑은 단언컨대 ‘연애’이다. 연애에 대한 지침서는 매해 수백 권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 내용은 대부분 비슷하다. 상대방이 불안하게 만든다면 헤어져라, 상대방에게 계속해서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라, 연락은 꾸준히 해라 등. 아무래도 연애의 지침이란 현실적일 수밖에 없으니, 필연적으로 그 내용은 유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슷비슷한 연애 지침들은 결국 보편적인 사랑 곧 연애의 획일화를 낳는다. 어떤 사람이, 어떤 연애가, 어떤 사랑의 형태가 아름다운지가 정해지는 것이다. 이를 연애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지금 시대는 그야말로 ‘연애 과학’이 정립되고 있는 시대이다.
바야흐로 연애 과학의 시대, 보편적인 사랑에서는 더 이상 특수성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쉽게 말해, 다른 연애들과 구별되는 특징이 없다고나 할까. 사랑하니까 사귀는 시대가 아니라 사귀니까 사랑하는 시대에서는 모든 조건이 투명하게 공개된다. ‘보편적인 사랑의 보편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데이팅 앱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여기서는 외모, 경제력, 자산, 학력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결혼정보회사만큼이나 투명하게 공개되는 데이팅 앱에서, 사람들은 연인으로 삼을 만한 사람을 찾는다. ‘사랑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은 배제한 채,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놓고 남자친구 또는 여자친구로 삼기에 괜찮은 사람인지에 대해서만 고민한다. 발달한 인공지능은 두 사람의 연락 스타일을 비교하여 잘될 확률이 얼마인지 알려 주고, 누가 누구와 어울릴지, 심지어 얼마나 오래 사귈지까지 예측한다. 그런 까닭에 연애의 보편 법칙을 충실하게 잘 따르는 사람은 얼마든지 연애를 잘할 수 있다. 자신을 잘 꾸미고, 괜찮은 직장을 얻은 뒤, 내가 생각하는 조건에 적당히 맞는 사람이라면 적극적으로 대쉬하거나 혹은 유혹하라. 그리고 연락은 꾸준히 하라, 연애 지침서에 나온 것처럼.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분명히 그 또한 사랑의 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 보편성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니까. 그러나 ‘보편적인 사랑의 보편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 그것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문제가 된다. “사랑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남자와 여자가 만나 서로 괜찮다고 생각되면 함께 데이트하다가, 결국엔 키스하는 거요.”라는 답변에 만족할 수 없는 이들은? 그들은 사랑의 정의가 궁금한 게 아니다. 매순간 변화하는 사랑에 대한, 매 순간 다른 답변을 듣고 싶은 것이다. 보편적인 사랑, 곧 연애의 ‘재발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르튀보 랭보가 “사랑은 재발명되어야 한다”고 썼듯이.
여기에 실린 서른 편의 글은 그러한 ‘보편적인 사랑의 재발명’을 고민한 결과물이다. 각각의 주제는 모두 다르지만, 모든 글을 관통하는 특징이 하나 있다. 연애의 보편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보편적인 사랑을 재발명하기 위해 고민했다는 점이다. 사랑의 혼란스럽고도 변화무쌍한 모습에 공포와 더불어 매혹을 느끼거나, 사랑을 규정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거나, 평범한 사랑에 어떤 위화감을 느낀다면 아마 이 책이 소소한 위로가 되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 자신부터 바로 그러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규정하는 시대에, 사랑이 결코 쉽게 규정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고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보편적인 사랑의 과정을 시간순으로 구성했다. 1부에서는 누군가를 만나기 이전에 사랑에 대해 고민한 내용을 다뤘다. 연애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모두 나름의 사랑을 하며, 그러기에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말할 자격이 있다. 지난 연애의 아픔 때문이든, 좋아하는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든, 어쨌든 혼자 있는 시간은 사랑을 재발명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2부는 누군가를 사랑하며 느낀 행복이나 깨달음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지금 내 곁에 사랑하는 대상이 없어도 사랑에 대해 말하고 쓸 수 있지만, 누군가를 만나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누군가와 ‘보편적인 사랑’을 시작할 때야 비로소 알 수 있는 내용들이 2부에 등장한다. 3부는 2부의 연장선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때 필연적으로 맛볼 수밖에 없는 고통이나 떠오르는 고민에 대해 다뤘다. 따라서 2부와 3부는 사실상 사랑이라는 동전의 양면으로 볼 수 있다. 연애의 달콤함과 더불어 씁쓸함을 느끼는 것은 보편적인 사랑을 재발명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과정이다.
4부는 이별 후에 느낀 감정과 생각이 주된 내용이다. 이별은 분명 슬프고 괴로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사랑을 재발명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그러므로 4부는 1부와 맞닿아 있다 ― 연애를 마치고, 자신의 사랑을 재발명하기. 재발명한 사랑을 바탕으로, 다시 연애를 시작하기. 보편적인, 너무나 보편적인 사랑의 시대에,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사랑을 시작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방법이다.
비록 산문집이긴 하나, 시집처럼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내용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독자가 읽는 상황이 어떠하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읽힐 것이기 때문이다. 책이 출판되기까지는 약 1년이 걸렸지만, 첫 글이 쓰인 것은 10년 전이다. 즉,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당연히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 독립출판으로서도 그렇고, 저자로서도 그렇고, 처음으로 내는 책인 만큼 최대한 시간의 무게가 느껴지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독자들이 그러한 무게를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그리하여 ‘연애’라는 (비교적) 가벼운 주제를 다룬 이 책을 덮었을 때 마음속에 느껴지는 아주 약간의 무게감이 있다면, 저자로서는 더없는 보람을 느낄 것 같다.
이 책은 현재 독립출판을 위해 작업 중에 있다. 브런치에는 총 서른 편의 글이 올라갈 예정이고, 실제 출간될 책에는 마흔네 편의 글이 실릴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책이 가진 물성(物性)을 좋아하고, 독자들도 나의 글을 그러한 물성과 함께 느끼길 바라고 있다. 적당한 책의 두께감과 내용에 알맞은 디자인, 새 책에서 나는 향은 디지털 환경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감각이다. 만약 브런치북에 게재될 이 책이 마음에 드신다면, 독립출판에도 참여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