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연초를 우리는 뉴질랜드에서 맞이했다.
당시 뉴스와 신문에는 중국에서 폐렴이 극성이고 점점 세계적으로 전염되고 있는 추세라 연일 보도되었다. 시아버지는 요즘 이런 게 있다더라라며 나에게 보여주셨지만
별거 아니겠죠 하고 말았다. 귀국할 때엔 중국인들로 보이는 이들이 마스크와 방독면을 쓰고 실제 입국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사스처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급격하게 퍼져나갔고 내가 근무하는 환경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사람들과 대면하고 해외출장의 중요도가 높은 업무이기 때문이었다. 작년 봄 코로나에 대한 경각심과 경계심이 높은 시기에 나는 한차례 아파트 안방에서 자가격리라는 것을 하게 되었고, 약간의 폐쇄공포증에 그 후도 시달려야 했다. 자가격리를 하고 코로나로 가족을 잃은 분과 이야기를 하다 눈물이 날 뻔했다. 자가격리라는 단어를 입밖에 내비치기도 너무나도 두려워서였다. 나는 답답했던 그 상황때문에 그리고 그분은 그와 더불어 가족을 상실했던 그 슬픔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걷잡을 수 없는 코로나 확진자 상황에 우리 가족은 무탈히 지나갈까 했지만 별 수 없었던 상황. 이상하게도 기운이 없는 것 같았던 아이는 열이 났다. 키트를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희미한 선이 하나 더 보였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이제는 그냥 내 차례인가 보다 하는 씁쓸한 상황
남편도 나도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선별 진료소에 갔고
아이의 확진에 이어 이틀 뒤 남편 그리고 나까지도 확진을 받았다.
우리 가족이 전원주택에 이사 온 것은 코로나의 영향도 컸다. 답답한 아파트에서 자가격리를 해보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의 이사가 이토록 쉽지는 않았으리라. 아이의 고열과 발진으로 이틀은 조용했던 우리 집. 아이가 점차 회복하고 잘 놀게 되자 주택의 장점을 며칠 누려보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우리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창문을 여는 것이다. 확진자끼리 거주하기는 하지만 답답한 공기의 순환과 더불어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우리의 마음 또한 여유롭게 해 준다.
엊그제는 창문 너머 딱따구리도 보았다. 저기 밖에 보이는 거 woodpecker 아니야?라고 묻자 아이와 나는 어디 어디? 하며 창문을 내다보았다. 도대체 딱따구리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아야지 단번에 찾을 텐데 난생처음 보는 딱따구리를 찾을 방도는 단 하나 남편의 손가락을 따라가는 수밖에. 자 우리 정원에 나무 두 그루 그 사이를 쭉 봐봐 저쪽 언덕에 나무 하나 있지 거기에 있잖아. 자세히 보니 자그마한 새가 있는데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고것이 나무에 부리로 망치질을 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옆에 덤으로 다람쥐까지도 본 우리 가족은 코로나 격리가 아니었다면 이런 장관을 어떻게 보있을까 싶었다. 비를 맞고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튤립도 언제 피었는지도 모를 여러 가지 꽃 이름을 찾아보기도 한다.
아직도 자가격리가 남았고
아직까지도 내 업무가 코로나로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며
언제쯤 남편의 고국인 뉴질랜드에 자유롭게 갈 수 있을지
언제쯤이면 아이 생일에 친구 여럿을 초대해 생일파티를 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아파트보다 주택에서 격리할 수 있음을
봄을 이렇게나마 느껴볼 수 있음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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