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내가 숨 쉬는 것조차 싫어했지.”
남편이 나와 결혼 10주년 외식 중에 웃으며 꺼낸 말이다.
“그거 기억나? 네가 비가 오면 장화를 신고 식장에 들어가자고 했잖아. 근데 네가 주문한 게 내 발에 작아서 또 그렇게 화를 냈던 거.”
생각해보니 10년이 아니라 남편과 10분도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결혼식 당일 예민하던 나였다.
10년 전 오늘 우리는 결혼했다.
정확히 하자면 결혼식을 했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특별한 결혼식을 준비했다.
이름하야 야외 결혼식
결혼식장이 아닌 외곽의 갤러리 카페에서 결혼식을 한 것이다. 덜컥 예약을 해 놓고 엄마한테는 식장이 좁아서 내가 사는 곳과 멀어서 주차할 곳이 없어서 등등의 이유로
“넌 정말 엄마 말을 안 들어.”를 수 없이 들었다.
내가 결혼한 2012년은 최악의 가뭄이라 연일 방송에서 보도가 되던 때였다. 그리고 슬픈 예감은 언제나 적중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전날까지 논바닥이 갈라지고 아스팔트 아지랑이를 보고 제발 제발 내일은 비가 안 오기를 목놓아 울었지만 결혼식 당일 폭우가 쏟아졌다.
정말 단비라며 이런 날 결혼하면 정말 축복이라며 모두들 나를 그렇게 위로했지만 그 누구도 나의 기분을 풀 수 없었다. 다행히 초와 꽃장식으로 실내를 꾸며준 대행사 덕분에 안심하고 식장에선 웃을 수 있었다.
당시엔 파격적으로 늦은 오후 예식을 하고 저녁을 먹고 늦은 밤까지 파티를 한 우리는 원래 갤러리 2층의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 묵기로 했으나 정비가 되지 않아 2차를 하고 호텔에 가기로 했고 그마저도 친구들이 다 술에 취해 내가 드레스를 입고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당일 나는 남편이 꼬깃꼬깃 나를 위해 써준 시를 읽으며 감동했는데 그 쪽지를 잃어버리고 말아 아쉬웠다.
오늘 결혼기념일
우리 남편은 언제나의 기념일(생일 크리스마스 등)처럼 똑같은 곳에 가서 똑같은 아이템을 사서 나에게 건넸고 결혼 후 습득한 ‘내 이럴 줄 알았다. 또 여기서 또 이걸 샀냐.라는 말을 목구멍 저 너머로 삼키고 어머!!!! 너는 어쩜 이렇게 스윗한지. 널 남편으로 가진 난 럭키걸!’ 이라는 반응’을 건넸다. 그리고 남편은 카드를 찾지 못했다며 노트에 쓴 편지룰 건넸다.
바빠서 10주년 기념사진 찍기로 한 날짜를 아직도 정하지 못했고 누구들처럼 명품 선물이 오가는 부부도 아니지만 매년 오늘은 우리 결혼기념일에 비가 올까 안 올까 내기하며 소박하게 살고 싶다.
근데 남편! 진짜 첫 만남에서 나랑 결혼할 줄 알았다고?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