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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딩누크 Jun 27. 2020

장마철의 야외 결혼식

결혼기념일 즈음에

많은 사람들의 로망인 야외 결혼식

나는 내 로망을 실현시켰다.

당시는 스몰웨딩, 야외 결혼식이 흔하진 않았고, 어디서 본건 많아서 눈이 머리 꼭대기에 달린 내 기대치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웨딩업체를 고르는 것도 꽤나 어려웠다.

하지만 결과는 성공이오, 만족도는 매우 높음이나

야외 결혼식의 최대 골칫거리인 날씨.


아 그렇다 나의 결혼식은 비가 온 야외 결혼식이 되겠다.



수년 전, 나는 많은 이들의 로망이라 할 수 있는 야외 결혼식을 준비했다.

푸르른 정원이 있고, 앞에는 호수가 있으며, 비가 올 경우 어느 정도 비를 피할 수 있을 만큼의 실내공간

내가 꿈꾸던 곳에서 결혼식을 할 수 있었다.


난 야외 결혼식에 자신 있었다.

나의 직업이자 자신 있는 분야가 행사 기획, 외국인사 초청이었다.

스케줄에, 이동 동선, 웰컴 카드, 플라워, 만찬, 시나리오... 모든 것을 망라하는 자칭 타칭 행사의 여왕 아니던가!


허나 중은 제 머리를 못 깎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도 그 중들 중 하나였다.


처음은 순조로워 보였으나...



나는 점점 브.라.이.드.질.라 (Bride+Gozilla_외국에서 흔히 결혼을 앞둔 스트레스 많은 신부를 가리킨다) 가 되어갔다


나를 브라이드질라로 만든 것은

내 직업병

나의 스케줄

날씨로 압축된다.


첫째, 웨딩플래너 없이 한 결혼식 준비라, 일부터 백까지 손수 생각하고 준비해야 했고, 내가 원하는 그림을 위한 연구조사로 스트레스 지수가 점점 높아져왔다. 의자 커버, 음식, 와인, 1부 드레스, 2부 드레스, 재즈와 국악을 접목한 BGM 전부 다 따로 내가 준비... 직업병이었다. 게다가 드레스는 또 수십 번을 입어보고, 2부 드레스는 외국에서 구매까지 하며 나중에는 스트레스로 점점 살찌는 예비신부가 되어 주변에서 그만 먹자라는 소리를 듣기까지...


둘째, 나는 바쁜 직장인이었다. 주말에는 결혼 준비, 평일은 야근, 그리고 결혼식 후에 있을 외국 출장까지...... 당시 남자 친구이었던 신랑은 남들은 결혼할 때 스트레스 많다던데, 넌 괜찮네?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던 차였는데 그렇다 결국 브라이드질라를 보여주게 되었다.


셋째, 날씨. 당시는 최악의 가뭄이었다. 2주 전까지만 해도 분명 해,해,해,해, 맑음, 맑음, 맑음 이었는데,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불안해졌다.


장마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결혼식 전날 아, 내일은 비가 확실하겠다는 생각으로 마인드 컨트롤에 들어갔지만, 당일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를 맞고 드레스샵에 도착한 나는

얼굴을 펼 수가 없었다.

괜한 신랑에게 짜증만 내다가 결국

친구가 우리 사이에 메신저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됐다.

(그때 욕봤다 친구야 욕봤어.)



한명은 우산들고 두명은 드레스 트레인들고 또 한명은 문열어 주고 비를 겨우 피해 차에 내려 예식장에 도착해 보니

캔들과 생화를 사용해 만들어진 실내도 꽤나 멋졌고

비에 잘 어울리는 국악이 만난 라이브 재즈는 최고였다.

결혼식장에선 구겨졌던 내 얼굴도 다시금 환해지고

어찌나 웃었던지 신부가 너무 웃는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비가 왔어도 아름다웠던 나의 결혼식

야외에서 제대로 된 한컷을 못건진 실내결혼식이 되었지만

천편일률적인 결혼식에 비하면 비가 와서 아쉬웠지만 색달랐고, 결혼식장에서 찍어내듯 하는 결혼식에선 할 수 없는 가족, 친구들과 밤새도록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2부 피로연에서 덕담 듣는 중


무엇보다 감사했던 것은 브라이드 질라를 끝까지 포용해준 남편

웃자고 사족을 붙이자면 남편의 인내심까지 사전 테스트한 결혼식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남편과 나는 올해는 비가 올까 안 올까를 내기하고 있다.

음, 올 6월 말일에는 과연 비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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