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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삶 Aug 03. 2024

영상 보지 않기

지금 여기에 존재하며 나의 일상 살아내기

내가 올해 이룬 큰 성과 중 하나는 바로 ‘영상을 보지 않는 습관’을 기른 것이다. 영상 보는 습관을 버린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드라마와 예능을 즐겨 보고 유튜브로 브이로그 영상 보는 것도 좋아했었다. 예쁘고 멋지게 보이는 연예인들의 활동을 영상으로 보며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 것이 재미있었고 나도 예쁘고 멋지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영상을 보면서 좋은 자극도 받고 새로운 삶의 방식들을 배우고 받아들일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영상을 보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 학습의 일환이며 나에게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에게 영상 보는 습관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찾아왔다. 정혜윤 작가님이 쓴 <사생활의 천재들>이라는 책 속에서 야생영장류학자인 김산하님의 말을 인용한 부분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것은 일종의 포르노를 보는 것과도 같습니다. 움직이는 게 있으면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거야말로 생물학적 인지 메커니즘의 오용입니다. 스마트폰의 동작은 서랍 열고 닫기 같은 겁니다. 방 안에 앉아 있다가 괜히 일어나서 한 번 옷장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도 반복적으로요. 이런 인조적인 인터페이스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 저는 제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부터는 MP3로 음악을 듣는 것도 그만뒀습니다. 음악에게 미안합니다. 음악을 평가 절하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인조적 인터페이스들만 보는 것은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것 혹은 자기 세계만 들여다보는 형국입니다. 다른 나라에 다녀오면 우리가 얼마나 자기 세계에 콱 박혀있는지 확연하게 느껴집니다.’


이 글을 읽는데 신선한 충격이 나의 뇌리를 스쳤다. 퍼뜩 정신이 차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소름이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나를 바보 멍청이로 만들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뭔가가 무척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강력한 느낌이 들었고 달라져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잘못된 습관은 단번에 버려야 한다는 신념으로 ‘영상 디톡스’에 도전을 했다. 바로 유튜브 앱을 지우고 핸드폰을 멀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이가 점점 커가고 있고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기가 싫기도 했다. 핸드폰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영상을 보는 일이 나의 일상에서 사라진다면 얼마나 많은 여유 시간이 나에게 주어질까 상상하는 일도 나에게 큰 설렘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결심도 잠시. 금단 증상이 나타났다. 육아를 하다가 시간이 생겼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지치기도 하고 어디론가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 영상을 찾기 시작했다. 유튜브 세계에서는 정말 지치지도 않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 천국에 사는 것만 같은 그런 사람들이 예쁘게 아름답게 자신만의 속도로 일상을 가꿔 나가는 모습들이 있었기에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힘을 얻기도 하고(순간적으로 힘을 얻는다고 느꼈었다) 마치 나도 그들처럼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얻기도 했다(아무것도 안 하고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살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과 육아하는 일상을 보여주는 영상을 보면서 친구라고 느끼면서 의지가 되기도 했다. 이런 게 정말 순간적으로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계속 영상에 빠져들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하루 이틀 참다가 앱을 다시 깔고, 이럴 거면 그냥 영상을 보자 라고 생각하며 한참을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어느 순간 또다시 회의감을 느끼며 앱을 지우고, 깔고 지우고를 그렇게 반복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나에게 있어서 영상을 보고 싶게 만드는 유혹은 다름 아닌 심심함과 허전함이라는 그 느낌들이었다. 그 실체 없는 감정들로 인해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여유 시간에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면서, 영상에 아름답게 비치는 그들의 기획된 일상을 막연하게 동경하면서, 그들의 일상에 비해 하찮고 별 것 없어 보이는 남루한 나의 일상에 기죽으면서, 서서히 자존감을 잃어갔던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또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제니 오델 작가님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었다.


‘나는 내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이것은 어쩌면 감각 박탈의 공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환하게 빛나는 자그마한 성과 지표의 세계는 산들바람, 빛과 그림자, 통제할 수 없고 형언할 수도 없는 구체적 현실로 내게 말을 거는 내 눈앞의 세계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 책의 작가는 지금 사람들이 얼마나 가벼운 자극에 중독되어 있는지, 핸드폰이 주는 순간적인 쾌락으로 불안을 잊는 행위에 길들여졌는지 지적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삶에 집중하지 못하고, 심심함과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찾아 현재가 아닌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도망가는, 그런 불안함을 가속화시키는 굴레에 갇혀 있는 우리의 모습을, 나의 모습을 날카롭게 포착해내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결심은 더욱 단단해졌다. 핸드폰을 손에서 내려놓자고. 영상을 보지 말자고. 물론 나에게 정말 유익한 영상도 있을 테지만, 유튜브의 순기능을 잘 활용하면 나의 삶을 더욱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 가능성도 있을 테지만, 나는 그 모든 긍정적인 생각들을 잠시 접어두고 나의 시간과 에너지와 궁극적으로 나의 삶 자체를 앗아가는 나의 심리적인 습관과 패턴을 송두리째 던져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일단 내가 재미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맞다. 인정해야 했다. 나는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무언가를 계속해야 했고, 그 무언가는 나에게 재미를 주는 것이어야 했다. 재미라는 것이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었고, 재미라는 것이 나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해보기로 했다. 재미란 무엇일까. 재미가 꼭 좋은 것일까. 재미라는 것이 반드시 필수적으로 내 삶에 필요한 것인가. 재미라는 것이 사라지면 나는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일까. 언제나 재미라는 것이 내 곁에서 항상 머물러줄 수 있는 요소인가. 이대로 끊임없이 재미를 추구하며 살아도 되는 것일까. 재미를 중심으로 나의 시간과 에너지와 삶을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재미는 MSG가 많이 첨가된 맛있는 음식과 같은 거라고. 계속해서 그런 맛있고 자극적인 음식만 먹다 보면 나의 건강은 어떻게 될까. 계속 그런 음식만 먹고 살 수 있을까. 순간적인 쾌감이 영원히 이어질까. 나는 건강과 점점 멀어질 테고 궁극적으로 나의 삶과 점점 더 멀어질 테지. 이건 본질적으로 나의 생명에 반하는 나의 고질병이라고. 이렇게 재미라는 것을 추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거리를 두어야 할 대상으로 바꿔서 받아들이자 연쇄적으로 새로운 생각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심심함은 좋지 않은 것일까? 심심하면 안 되는 것일까? 지루함은 재미가 결핍된 상태이므로 빨리 달아나버려야 할 상태인 것인가? 심심함은 빨리 재미있는 것으로 대체해야 할 상태인 것인가? 일단 심심함이 찾아올 때 도망가지 않고 심심함이라는 것에 대해 탐구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심심하다고 무료하다고 해서 얼른 핸드폰을 찾고 유튜브 영상을 트는 대신에 심심한 그 순간에 적극적으로 머물러보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온갖 잡생각이 다 들었다. 고민도 많이 했다. 이럴 바에는 영상을 트는 게 낫지 않을까. 영상을 통해 배우는 것도 많은데. 쾌락도 가끔 필요한 것 아닌가. 등등. 생각들이 모두 한 편이 되어 그만 고집부리고 영상을 틀자는 쪽으로 강력하게 움직였다. 그래도 뜻하는 바가 분명히 있었고 이전보다 단호해진 결심 덕분에 영상을 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내가 재미를 찾으려고 할 때 재미라는 허상과 환상에 대해 생각했고, 내가 심심함이라는 상태에서 빠르게 벗어나려고 할 때마다 천천히 순간에 존재하며 내가 원하는 궁극적인 나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핸드폰 중독자가 되고 싶지 않다. 핸드폰에 코를 파묻혀 영상을 보며 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핸드폰을 손에 꼭 쥔 채로 육아를 하고 싶지 않다. 핸드폰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지도 않다. 심심하다고 어쩔 줄 모르며 재미를 찾아 나서고 싶지 않다. 영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진다. 몰입이 아니라 중독에 가까운 그런 모습. 타인의 모습을 보느라 내 삶의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타인의 삶을 동경하느라 내 일상 속 소중한 기회와 가능성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영상을 보는 행위는 취미라고 할 수 없으며, 나의 삶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삶의 시간을 앗아간다. 나는 영상으로 내 삶을 채울 것인가. 타인의 삶으로 내 머릿속을 채울 것인가. 타인이 기획해 놓은 콘텐츠로 나의 마음속을 채울 것인가. 나는 무엇으로 나의 삶을 채울 것인가? 심심하다고 타인들이 만들어가는 삶에 수동적으로 눈을 좇을 것인가? 나의 심심함을 다른 것들로 채울 수는 없을까? 가령 호기심 상상력 사랑 행복 이런 내적 가치들 말이다. 영상을 보는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내 손이 클릭을 누르고 있다면 그때가 바로 멈춰야 할 때이다. 영상보다 내 삶으로 시선을 돌릴 때인 것이다. 그때가 바로 타인의 생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나의 생각을 능동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기회이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일상에 나와 함께 오롯이 존재하며 나를 들여다보고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앞으로도 핸드폰과 멀어지겠다는, 영상을 보지 않겠다는 이 결심을 굳게 지켜나가고 싶다. 부디 내 아이들은 핸드폰 중독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나부터 핸드폰과 작별하기로 한다. 핸드폰을 하는 대신 내 삶에 성실하게 임하는 모습으로 아이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 타인의 삶을 보고 영감을 받는 대신 내 삶을 통해 스스로 영감을 만들어내는 사람이고 싶다. 


끊임없이 재미와 자극을 찾아다니며 불안과 외로움을 달래려 했던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생각한다. 참, 고생 많았다고. 그때는 알지 못했다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그 굴레에서 헤어 나오는 방법을 몰랐다고. 그 멀고 먼 시행착오의 여정을 거쳐 온 지금의 나는 또 생각한다. 다시는 그 굴레에 빠지지 않을 거라고. 나에게는 타인의 삶을 바라볼 의무가 아니라 나의 삶을 살아갈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핸드폰과 영상에 쏟을 시간에 나의 삶을, 나를, 내 주변에 아름다운 모든 것들을 다시 한번 더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자고. 삶을 선물 받은 자로서 주인의식을 갖자고. 내 삶과 생명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말고 허상과 환상을 좇지 말자고. 지금 여기에 존재하자고. 핸드폰과 영상 속 움직임들은 모두 저 멀리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일 뿐 나의 삶이 아니라고. 부디 후회 없이 나의 삶을 사랑하며 감사하며 살아가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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