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현재 우리 사회는 소통과 공감을 무척이나 강조하고 있는 중이다. 어디를 가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소통이 중요하다’고 외치면서 인위적인 만남과 단톡방 개설이 첫 수순으로 이루어진다.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도 이러는데, 서로 친하다고 자부하는 친구나 연인 관계에서는 어떨까. 매일 몇 시간씩 통화를 하고 하루 종일 카톡을 주고받으며 무엇을 하는지 상태가 어떤지 시시콜콜하게 모든 것을 공유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연락으로 애정의 깊이를 가늠하고, 연락을 유지하는 일을 우정과 사랑을 지속하는 일과 완전히 동일한 것으로 해석하기에 이르렀다. 계속 누군가와 연락을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나는 혼자가 아니고 친구와 연인과 항상 함께 있으며 우리는 언제나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 이 기분을 사랑 혹은 우정으로 착각하고 이 기분에 중독되어 연락이 오지 않을 때에는 반대로 견딜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감을 느끼는 것이다. 잦은 연락과 일상 공유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 이러한 소통의 모습이 과연 우리 모두를 위하는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또한 ‘공감’을 외치는 문화 속에서 혹시나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타인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며 피곤하게 살아가고 있다. ‘타인을 위한 세심한 배려’를 강요받고 있다고나 할까. 타인보다 자신을 먼저 챙기는 사람들은 ‘이기적’이라고 낙인찍히기 십상이고,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눈치가 없다’고 대놓고 핀잔을 받는 일이 다반사다. 친구나 연인은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기꺼이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을 자처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다. 감정을 나누는 일이 곧 사랑이자 우정이라고 주장하면서, 행여 자신의 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 이를 함께 나누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면 상대에게 친구나 연인으로서의 자격을 물으며 ‘자신의 감정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공감해 주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관계의 단절이라는 사형을 일방적으로 선고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이 알아주고 들어주고 똑같이 느끼고 나눠주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과연 정당하게 우리로 하여금 ‘공감’을 당연시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먼저 자기 자신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감정적 자존 능력’을 키우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 우리가 타인과의 연결과 접촉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나와 평생 관계를 맺고 소통을 해나가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으며, 나는 언제나 나의 대화 상대이다. 나는 타인이 아닌 나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일상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나의 마음과 몸 건강 상태는 어떤지, 오늘 나의 기분은 어떤지, 타인에게 묻는 이러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매일 매순간 던지고 나 자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나 자신과의 소통이 부족할 때 우리는 결핍감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절실한 마음으로 찾게 되고 여기서부터 필연적으로 의존적이고 중독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이런 식으로 시작된 관계는 서로가 각자 건강하게 존재하기 위해서 늘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질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의존성을 기반으로 하는 관계는 언제나 비극적 결말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공감받기를 기대하기 전에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처리할 수 있는 ‘감정 소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자신의 감정은 기본적으로 자신으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자신이 소유한 것이며 고로 자신의 책임하에 있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처리하고 소화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자기에게 속하는 일이므로 타인에게 떠넘겨져서는 안 된다. ‘공감’이 마치 사회적 의무인 듯 당연시 강요되는 이 시대에 나타나는 문제점 중 하나는 ‘자신의 감정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타인으로부터 공감을 요구하는 뻔뻔한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타인의 공감 능력을 시험해 본다는 미명 아래에 은근하게 자신의 감정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지우는 것이다. 타인이 자신의 감정을 다뤄주고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의존적인 마음이 그 바탕에 존재하고 있다. 타인의 공감을 바라고 기대하고 그것에 의존하게 될수록 우리는 서서히 감정적 자존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만다. 공감을 강조하는 사회는 이렇게 의존적인 관계를 부른다. 그리고 의존은 결코 우리의 사랑과 우정을 아름답게 지속시켜줄 수 없다.
진정한 소통과 공감을 위해서 우리에게는 ‘독립과 홀로서기의 정신’이 필요하다. 소통과 공감을 통한 유대감 형성을 강조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서로 다르며 분리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온전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느낄 줄 알며, 감정적으로 독립을 이루어 내고자 하는 의지를 품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생산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스스로 살피고 혼자서 처리하고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사고와 감정에 있어서 홀로서기를 이루어 내야만 한다. 독립적인 마음과 홀로서기 정신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진정한 의미의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소통과 공감의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없다. 자립을 이루어 낸 개인들이 모여 특별한 감정적 격앙 없이 덤덤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을 때, 감정 자체가 아니라 경험으로부터 얻은 삶의 지혜와 교훈을 주제로 보다 더 깊고 풍부한 철학적 대화를 나누면서 건강한 소통과 공감의 문화를 형성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타인과의 소통과 공감을 강조하는 이 사회에서는 도통 ‘나 자신을 알아갈 시간’을 우리에게 내어 주지 않는다. 평생 나를 알고 이해하고 존중하며 사는 일만으로도 벅찬데... 자꾸만 나보다 타인을 먼저 이해하고 공감하고 배려하라고 한다. 우리 모두에게 부여된 의무이자 필수 과제는 바로 ‘자기탐색’인데 말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타인에 대해 알아가려는 노력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타인과의 소통과 공감에 신경을 쓰는 만큼 자신과의 소통과 공감에도 의식적으로 신경을 쓰고 있는가? 우리가 스스로 바로 설 수 없다면, 자기중심이 확고하게 잡혀있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없고 타인과 제대로 된 소통과 공감을 나눌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는 타인과의 소통과 공감을 강요하기 이전에, 각 개인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길고 긴 자기탐색의 시간을 거쳐 건강한 ‘자존’과 ‘독립’을 이뤄낼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는 데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