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 대신 감사를 선택하는 사소한 습관의 힘.
요즘 '감사 일기'가 좋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참 많이 들려오지요. 꾸준히 쓰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긍정적인 생각도 더 많이 하게 된다고요. 왠지 감사 일기만 꾸준히 쓰면 내 삶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드라마틱하게 변할 것 같은, 그런 부푼 기대감마저 들게 합니다. 저 역시 그런 이야기에 솔깃해서 '그래, 나도 이제부터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보는 거야!' 하는 다짐과 함께 예쁜 노트를 펼쳤던 기억이 납니다. 새 노트의 빳빳한 질감이 제 삶도 곧 그렇게 변화시켜줄 것만 같았죠.
그런데 막상 하얀 노트를 마주하고 앉으면 '오늘은 대체 뭘 감사해야 하지?' 하고 머릿속이 하얘질 때가 많았어요. 뭔가 특별하고 근사한 일, 예를 들면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거나, 누군가에게 아주 큰 선물을 받았다거나, 혹은 오랫동안 바라던 목표를 달성했다거나 하는, 남들에게 '나 오늘 이런 감사한 일이 있었어!' 라고 자랑할 만한 이벤트가 있어야만 쓸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 일들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매일같이 칸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빈 노트를 보며 '나는 왜 이렇게 내세울 만한 감사할 일이 없을까?' 하는 엉뚱한 자책감에 빠지기도 했어요.
심지어 다른 사람들의 감사 일기를 상상하면서 제 것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더 초라하게 느끼기도 했고요. 감사가 꼭 풀어야 할 숙제처럼, 혹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품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마치 감사에도 어떤 '기준'이 있어서, 그 기준을 넘는 멋지고 화려한 일들만 감사 목록에 이름을 올릴 자격이 있는 것처럼요.
이런 경험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문득 깨달았습니다. 제가 '감사'라는 것을 너무 거창하고 어렵게만, 어쩌면 너무 결과 중심적으로만 생각했다는 것을요. 오히려 '반드시 특별한 것을 찾아 감사해야 한다'는 그 부담감이, 일상 속에서 제가 이미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자연스러운 고마움의 순간들을 무심코 지나치게 만들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건 이벤트의 크기나 특별함이 아니라, 내 주변과 내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좋은 것들을 '알아차리는 눈', 그것을 기꺼이 발견하려는 '마음의 태도'라는 것을요. 행복을 좇기보다 불행을 덜어내기로 마음먹었던 것처럼, 감사 역시 거창한 성취 목록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긍정들을 발견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을 조금, 아니 꽤 많이 바꿨어요. 거창한 '감사 일기'를 써야 한다는 부담 대신, 하루 동안 제 곁을 스쳐 지나가는 아주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아, 이거 참 다행이다', '이거 참 괜찮네', '그래, 이 순간 고맙다' 하고 느껴지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잠시 마음속으로 그 느낌을 붙잡아보기로요. 꼭 멋진 문장으로 기록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저 그 순간의 좋은 느낌에 잠시 머물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었죠. 일종의 '마음속 감사 메모' 같은 연습이었어요.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이었냐고요? 정말 별것 아닌 것들이 대부분이에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몸이 아프지 않고 개운했던 느낌, 막 내린 커피의 향긋함이 코끝을 스칠 때, 창문으로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 아래 잠시 멈춰 섰을 때, 출근길 버스 창밖으로 계절의 변화가 느껴질 때, 우연히 라디오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올 때.
혹은 점심시간 동료와 별것 아닌 농담을 주고받으며 함께 웃었던 순간, 누군가 나를 위해 엘리베이터 문을 잠시 잡아주었던 작은 친절, 퇴근 후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었을 때 온몸으로 퍼지는 해방감,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며 잠시 현실을 잊고 깔깔거렸던 시간, 잠자리에 들기 전 읽는 책의 몇 구절이 마음에 와닿을 때, 그리고 하루를 마치고 폭신한 이불 속에 들어가 누웠을 때의 안온함 같은 것들이죠. 숨 쉬는 공기처럼 너무 당연해서 평소에는 의식조차 못 했던 것들 속에 고마움이 숨어있더라고요.
정말 소소하고 평범한 순간들이죠? 누군가에게 "나 오늘 이런 감사한 일이 있었어!" 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쑥스러울 수도 있는 그런 것들요. 하지만 이런 작고 일상적인 순간들에 '고맙다'는 이름을 붙여주고 잠시 그 느낌을 음미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제 마음의 결이 아주 조금씩, 하지만 분명히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치 마음의 초점이 달라지는 기분이랄까요?
우리 마음에는 원래 좀 안 좋은 일이나 부정적인 것에 더 쉽게 눈길이 가고, 오랫동안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요. 아마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위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심리학에서는 이걸 '부정성 편향'이라고도 하던데, 그래서 우리가 특별히 노력하지 않으면 걱정거리나 불만스러운 점들이 먼저 떠오르고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기 쉬운 거죠. '오늘 왜 이렇게 피곤하지?', '그 사람은 왜 나한테 그렇게 쌀쌀맞게 굴었을까?', '이 일은 언제쯤 끝나려나' 하는 부정적인 생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쉬워요.
그런데 의식적으로 '작은 고마움'을 찾으려는 노력은, 마치 이런 부정적인 생각의 흐름에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르고 작은 쉼표를 찍는 것과 같아요. 이건 세상의 힘든 일이나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억지로 외면하거나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해!' 라고 강요하는 것과는 달라요.
그건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보다는 우리 삶에는 분명히 어렵고 힘든 순간도 있지만, 바로 그 속에서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좋은 점들, 괜찮은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발견하도록 '생각의 방향'을 살짝 바꿔보는 연습에 가깝습니다. '비록 오늘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퇴근하고 집에 오니 나를 반겨주는 가족(혹은 반려동물)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라고 생각의 균형을 잡는 것처럼요.
더 좋은 건 이런 연습이 꼭 노트를 펴고 정해진 시간에 각 잡고 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에요. 길을 걷다가 문득 예쁜 꽃을 발견했을 때, 혹은 차를 마시다가 따뜻한 온기가 느껴질 때, 잠자리에 들기 전에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잠깐씩이라도 '아, 지금 이 순간 참 좋다', '이런 게 내 곁에 있어서 참 고맙다' 하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중요한 건 거창한 형식이나 완벽한 기록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감사함을 발견하려는 '마음의 습관'을 꾸준히 만들어나가는 것이죠. 하루에 단 한 번이라도 괜찮아요. 그 꾸준함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작고 소박한 감사들을 꾸준히 발견하는 연습은 과연 어떤 힘을 줄까요? 제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바로는, 우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남들이 가진 것'에 대한 부러움보다는,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더 자주, 그리고 더 깊이 느끼게 해준다는 거예요. 내 삶을 바라보는 기준이 '결핍'에서 '충만' 쪽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거죠.
그러면 신기하게도,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완전히 무너지거나 좌절하기보다는, '그래도 이만한 게 어디야', '이 와중에도 이런 좋은 점은 있네' 하고 생각하며 상황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마음의 힘, 그런 맷집 같은 걸 길러주는 것 같아요. 세상을 좀 더 균형 잡힌 시선으로, 그리고 조금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고 할까요?
그러니 혹시 예전의 저처럼 '감사 일기'라는 말이 왠지 모르게 부담스럽고 숙제처럼 느껴졌다면, 이제 그 부담감은 잠시 옆으로 내려놓으셔도 좋습니다. 대단한 감사 목록을 빼곡히 채우려 애쓰기보다, 오늘 당신의 하루 속에 숨어있던 아주 작은 '다행스러움'이나 '고마움', 혹은 '괜찮음'을 딱 하나만이라도 한번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이면,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괜찮은 순간들이 매일 우리 곁을 조용히 스쳐 지나가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걸 발견하는 따뜻한 시선을 갖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하루는 분명 어제보다 조금 더 괜찮아질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진심으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