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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용기

심호흡 한 번으로 날려보내요.

by 읽어봐요

"짜증나네."


혹시 아무리 애써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 현실 앞에서 깊은 무력감이나 답답함을 느껴본 적 없으신가요? 마치 단단한 벽에 계속 머리를 부딪치는 것처럼, 온 힘을 다해 노를 젓지만 배는 제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느껴질 때 말이에요. 분명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마음은 점점 지쳐만 갈 때, 우리는 속으로 '대체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길까?', '언제까지 이렇게 힘을 빼야 할까?' 하는 원망 섞인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힘겨워하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삶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어쩔 수 없음'의 영역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싸우려 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어쩔 수 없음'이란, 말 그대로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바꿀 수 없는 현실의 한계 같은 것들이죠.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일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나의 기질이나 환경, 타인의 자유로운 선택, 피할 수 없는 질병이나 사고, 심지어는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인 노화와 죽음까지.

이 모든 것들은 때때로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세상을 더 좋게 만들려는 노력이나 부당함에 맞서는 용기,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는 정말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인류는 발전해왔고, 우리 삶도 더 나아질 수 있었죠. 하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것을 내 뜻대로 바꿀 수는 없다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까지 내 의지를 관철시키려고 애쓰다 보면, 우리는 끊임없이 좌절하고, 분노하고, 에너지를 소진하며 결국에는 깊은 무력감에 빠지게 됩니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헛된 싸움에 힘을 쏟으며 정작 내가 돌봐야 할 내 마음과 현재의 삶을 놓치게 되는 것이죠.


'어쩔 수 없는 일'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은 다양합니다. 슬픔, 분노, 억울함, 실망감, 불안함… 이런 감정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에요. 중요한 것은 이런 감정을 억누르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아, 내가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는구나' 하고 알아차려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정의 뿌리에 혹시 '이건 절대 이래서는 안 돼!', '반드시 내가 원하는 대로 바뀌어야 해!' 하는, 현실을 부정하고 통제하려는 마음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 '어쩔 수 없음'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요?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하라는 뜻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현실을 더 명확하게 직시하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 나서는 '적극적인 용기'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마치 항해사가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는 없지만, 돛의 방향을 조절하여 원하는 곳으로 나아가는 지혜와 같습니다.

이 용기를 키우기 위해 우리가 연습해볼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연습입니다. 어떤 문제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거예요. '이 상황에서 내가 실제로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내가 아무리 애써도 바꿀 수 없는 부분은 무엇인가?' 하고 말이죠.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내가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사람에게 내 생각이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저지른 실수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어 오늘 어떻게 행동할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통제 가능한 영역과 불가능한 영역을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헛된 싸움에 쏟는 에너지를 줄이고 정말 중요한 곳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둘째는,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연습입니다. 이것은 그 현실이 마음에 든다거나 옳다고 동의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단지 '아, 지금 상황이 이렇구나', '이것이 지금 내가 마주한 현실이구나' 하고 사실 자체를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비가 오는 것을 멈추게 할 수는 없지만, 비가 온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처럼요.

이 '받아들임'은 우리를 괴롭히는 감정들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라며 분노하기보다,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 그래서 지금 내 마음이 이렇게 힘들구나.' 라고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셋째는, 초점을 '바꿀 수 없는 것'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옮기는 연습입니다. 현실을 받아들였다면, 이제 우리의 에너지를 '어떻게 이 상황을 바꿀까?' 에서 '이 상황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의미 있는 방식으로 반응할까?' 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만성적인 질병을 없앨 수는 없더라도,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고, 즐거움을 주는 활동을 찾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 '주어진 조건 안에서' 나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황의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내 삶의 주체적인 행위자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넷째는, 어려움 속에서도 '의미'를 찾거나 '배움'의 기회를 발견하려는 노력입니다. 때로는 정말 견디기 힘든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우리에게 깊은 성찰과 성장의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우리는 삶의 소중함을 깨닫기도 하고, 이전에는 몰랐던 내면의 강인함을 발견하기도 하며, 타인의 아픔에 더 깊이 공감하는 따뜻한 마음을 배우기도 합니다. 물론 모든 고통에서 억지로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절망 속에서 작은 희망의 빛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연습, 즉 '자기 자비'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힘들어하고 슬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그럴 때 자신을 책망하거나 다그치기보다, '정말 힘들었겠다', '이런 상황에서도 애쓰고 있구나' 하고 스스로를 따뜻하게 다독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치 사랑하는 친구가 힘들어할 때 위로해주듯이, 나 자신에게도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연습은 우리가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는 데 큰 힘이 되어줍니다.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용기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평생에 걸쳐 꾸준히 연습해야 하는 마음의 근육과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다시 옛 습관처럼 현실에 저항하며 힘들어할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럴 때마다 다시 알아차리고, 부드럽게 받아들임의 자세로 돌아오려는 노력 그 자체입니다.


이 용기를 조금씩 키워나갈 때, 우리는 더 이상 바꿀 수 없는 것들과 씨름하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주어진 현실 속에서 평온함을 찾고, 내가 진정으로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을 위해 현재를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불필요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한결 가볍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세상과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함께, 삶의 '어쩔 수 없음' 앞에서 좌절하기보다, 그것을 끌어안고 나아갈 수 있는 단단하고 평온한 마음의 용기를 키워나가면 좋겠습니다.


그 여정 속에서 분명 우리는 이전보다 더 깊은 지혜와 평화를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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