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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의 무게

스스로에 대한 기대, 남에 대한 기대를 '조금' 내려놓다.

by 읽어봐요

"어깨가 무거워."


혹시 어깨에 무거운 짐이라도 진 것처럼 몸이 축 처지고 마음이 답답할 때가 있지 않으세요? 딱히 힘든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럴 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짐의 정체가 바로 '기대'일 때가 참 많더라고요. '나는 이 정도는 해야 하는데', '그 사람은 당연히 이렇게 해주겠지', '세상은 마땅히 이래야 하는데' 하는 그런 기대들 말이에요.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기대를 마음에 품고, 때로는 그 기대 때문에 스스로 힘들어하며 살아가는 것 같아요.


사실 기대를 한다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일 거예요. '내일은 날씨가 좋았으면', '이번 시험은 잘 봤으면' 하는 것처럼 미래를 그리거나 더 좋은 결과를 바라는 마음이니까요. 이런 기대는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죠. 문제는 이 기대가 너무 커져서 현실과 동떨어지거나, '무조건 이렇게 돼야 해!' 하는 고집스러운 생각으로 바뀔 때 생겨요. 마치 내가 쓴 대본대로 세상이 짜잔 하고 움직여주길 바라는 것처럼요. 하지만 현실은 우리 생각대로,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잖아요? 그럴 때 우리는 쉽게 실망하고 속상해하며 '불행하다'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거죠.


이 무거운 기대의 짐은 주로 세 가지 방향에서 우리를 누르는 것 같아요. 바로 나 자신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서요.


가장 먼저, 우리는 '나 자신'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면서 스스로를 힘들게 해요. 이게 어쩌면 가장 우리를 괴롭히는 기대일지도 몰라요. 우리는 스스로에게 '항상' 잘해야 하고, '완벽해야' 하며, '실수 한 번 없이' 성공해야 한다고 자꾸 주문을 걸어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늘 밝고 씩씩해야 하고, 어떤 힘든 일도 척척 해내는 멋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그림을 그려놓고, 실제 내 모습이 거기에 조금이라도 못 미치면 금세 '난 왜 이럴까' 하며 스스로를 탓하죠. 새로운 걸 배우면 남들보다 빨리 잘해야 하고, 시작한 일은 무조건 좋은 결과를 내야 하며, 힘든 일이 있어도 티 내지 않고 혼자 다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기대는 왜 생기는 걸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욕심 때문이겠죠. 그리고 더 잘하고 싶다는 열정도 있을 거예요.


욕심과 열정은 분명 필요해요. 그게 없으면 사람은 나아갈 수 없어요. 더 발전할 수 없죠.

하지만 나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높으면 우리는 계속 불안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기분을 느끼게 돼요. 과정을 즐기기보다 결과만 바라보게 되고, 내가 노력한 것이나 작은 성공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죠. 넘어져도 괜찮고, 실패하면서 배울 수도 있다는 걸 자꾸 잊어버리게 만들고, 결국에는 지쳐 나가떨어지게 만들어요. 저도 예전에 완벽하게 잘 해내려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를 얼마나 피곤하게 했는지 몰라요. 작은 실수 하나에도 밤새 뒤척이고, 기대만큼 결과가 안 나오면 세상 끝난 것처럼 속상해했죠. '나는 이것밖에 안 되나 봐' 하면서요.


두 번째 무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거는 기대예요.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걸 기대하죠. 친구라면 당연히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 편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연인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내 기분을 척척 알아채고 늘 나를 제일 먼저 챙겨주길 바라요. 가족이라면 언제나 나를 이해해 주고 응원해줘야 하며, 직장 동료라면 당연히 나와 생각이 같고 잘 도와줘야 한다고 여기기도 하죠. 마치 내가 원하는 역할을 정해주고 상대방이 그 역할대로 딱딱 움직여주길 바라는 것처럼요.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각자의 사정과 감정을 가진 별개의 존재잖아요. 내가 기대하는 대로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을 때가 훨씬 많아요. 그럴 때 우리는 쉽게 서운함을 느끼고, 관계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죠. "어쩜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하고 속상해하는 마음속에는 사실 '난 당신이 이렇게 해줄 거라고 기대했는데, 왜 내 기대랑 다르냐'는 실망감이 숨어있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사람 사이에 어느 정도 기대는 필요하죠. 서로 믿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그 기대가 너무 크거나 '내 생각대로' 상대방이 움직여주길 바랄 때, 그건 좋은 관계를 망치는 원인이 될 수 있어요.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내 기대를 자꾸 상대방에게 맞추려고 하면, 우리는 점점 외롭다고 느끼고 관계는 어색해질 수밖에 없어요.


마지막으로, 우리는 '세상' 혹은 '인생' 자체에 대해서도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경향이 있어요.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하고, 착하게 살면 복을 받으며, 세상은 공평하게 돌아가야 한다고 믿고 싶어 하죠. 내 인생은 별 탈 없이 술술 풀리고, 나쁜 일이나 힘든 일은 나를 비껴가기를 바라요. 하지만 실제 세상은 어떤가요? 노력해도 잘 안될 때도 있고, 억울하거나 이상한 일들도 자주 일어나잖아요. 착하게 살아도 힘든 일을 겪기도 하고, 인생은 결코 내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죠.


이런 현실 앞에서 '세상은 원래 공평해야 해!' 또는 '내 인생은 문제없이 흘러가야 해!' 하는 생각을 꽉 붙들고 있으면, 우리는 계속 화가 나고 실망하며 세상을 탓하게 돼요.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지?', '세상은 정말 불공평해!'라고 외치면서 스스로를 불쌍한 사람으로 만드는 거죠. 인생이 원래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완벽하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실망감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요.


그렇다면 이 무거운 기대의 짐들을 어떻게 좀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기대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 반복되는 패턴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마법 같은 해결책은 없겠지만, 제가 넘어지고 일어서면서 조금씩 익혀온 몇 가지 방법들이 있어요.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내가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이에요. '아, 내가 지금 이런 기대를 하고 있구나', '이 기대가 혹시 너무 큰 건 아닌가?', '혹시 '무조건 ~해야 해'라고 생각하고 있진 않나?'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거예요. 특히 실망하거나 화가 나거나 서운한 감정이 들 때, 그 감정 밑바닥에 어떤 '채워지지 않은 기대'가 있는지 살펴보는 연습이 도움이 돼요. 내가 기대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그 기대에 생각 없이 끌려다니지 않을 힘이 생기기 시작해요.


다음으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이에요. 이건 그냥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에요. 내가 바라는 것과 실제 현실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지금 상황을 '아, 지금은 이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거죠. 내 능력의 부족한 점,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의 불확실성을 외면하거나 싸우려고 하는 대신, 그냥 '그렇구나' 하고 인정하는 태도예요. 완벽하지 않은 나 자신을, 내 뜻대로 안 되는 다른 사람들을,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기대가 무너졌을 때 느끼는 불필요한 실망감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현실을 받아들였다면, 다음은 '기대 수준을 조절'하고 '생각을 부드럽게' 하는 연습이 필요해요. '무조건 성공해야 해!'가 아니라, '일단 최선을 다해보자' 라거나, '이 정도만 돼도 괜찮아' 하는 식으로 기대치를 좀 더 현실적으로 낮추거나 조절하는 거예요. 그리고 일이 내 기대와 다르게 흘러갈 때 좌절하기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볼까?' 하고 다른 방법을 찾거나 계획을 바꿔보는 부드러운 생각이 필요해요. 인생은 쭉 뻗은 고속도로가 아니라 구불구불한 길과 같아서,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길로 들어서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더라고요.


특히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상대방이 내 마음을 텔레파시처럼 알아주길 기대하는 대신, 내가 뭘 느끼고 뭘 원하는지를 솔직하고 부드럽게 '말로 표현'하는 연습이 중요해요. 물론 내가 말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항상 내 기대대로 해주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서로 오해하거나 혼자 서운해하는 일은 훨씬 줄어들 수 있어요. 그리고 나 자신과 인생에 대해서는,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결과'에 대한 기대를 조금 내려놓고, 대신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과정'과 '노력'에 더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돼요.

결과가 좀 아쉽더라도,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과정 자체를 인정해 주고 그 안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거죠. 마지막으로,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을 자주 떠올리는 것도 정말 중요해요. 채워지지 않은 기대만 바라보다 보면 우리는 이미 누리고 있는 많은 좋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쉽게 잊어버려요. 내가 가진 작은 능력들, 내 곁을 지켜주는 좋은 사람들, 오늘 하루 별 탈 없이 보낸 평범한 순간들에 대해 '참 고맙다' 하고 생각하는 마음은, 어깨를 누르던 기대의 무게를 훨씬 가볍게 만들어 줍니다.


기대의 짐을 내려놓는다는 건, 꿈이나 희망을 버리라는 뜻이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나를 힘들게 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기대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더 가벼운 마음으로 진짜 현실을 딛고 내가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과정이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를 다독이고,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며 여유를 갖고, 세상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지혜를 배우는 길이에요. 이런 연습은 아마 평생 해야 할 거예요. 그래도 괜찮아요. 그 무거운 기대의 짐을 조금씩 내려놓을 때마다, 분명 마음은 어제보다 훨씬 가벼워지고, 덜 불행한 기분으로 오늘을 살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 같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연습을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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