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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다.

행복 대신 '불행하지 않음'에 초점을 둬봅니다.

by 읽어봐요

언제부터였을까요?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하게 행복을 갈망하고, 또 행복하지 않은 나를 쉽사리 실패자처럼 여기게 된 것이.

우리 모두 '행복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주문에 걸린 것처럼 살기 시작한 게 말이에요.


TV든, SNS든 온통 휴양지의 반짝이는 바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눈부신 성취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성공한 사람들은 인터뷰에서 어김없이 '행복의 비결'을 논하고, 사람들은 즐겁게 웃고, 우리는 그 모든 빛나는 조각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아, 나만 빼고 다들 저렇게 잘 살고 있구나', '나는 왜 저들처럼 충분히 행복하지 못할까?' 하고요.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닌지, 나만 이 레이스에서 길을 잃은 건 아닌지, 조용히 가슴 한쪽이 불안해집니다.

마치 행복이 인생의 최종 목표이자, 반드시 도달해야 할 유일한 정답인 것처럼 느껴지는 거죠.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어요. 그렇게 우리가, 모두가 갈망하는 그 '행복'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요? 사전적 의미 말고, 내 삶에서 진짜 느낄 수 있는 행복 말이에요. 늘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고,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쥐고, 마음에는 한 점 걱정의 그늘도 없이 완벽하게 평온한 상태? 그런 교과서적인, 혹은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유토피아 같은 순간이 과연 우리의 일상에서 지속될 수 있을까요?


어쩌면 행복이란 건, 우리가 애써 붙잡으려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더 빠르고 쉽게 흘러가 버리는 모래알 같은 건 아닐까요? 비 온 뒤 잠깐 떴다가 이내 사라지는 무지개처럼, 찰나의 황홀함으로 존재하다가 어느새 희미해지는 그런 속성을 가진 건 아닐까 하고요.


생각해 보면 가장 행복했던 순간조차 영원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것 때문인지, '행복해야 해!' 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다그칠수록 어깨는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마음 한구석에는 '나는 왜 남들만큼, 혹은 내가 기대하는 만큼 행복하지 못할까' 하는 자책감과 피로감만 차곡차곡 쌓여갔던 것 같아요. 마치 끝나지 않는 숙제를 부여받은 기분이었죠.

영원히, 영원히.


그래서 저는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조금 다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기로 했습니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가 외치는 '어떻게 하면 더 강렬하게, 더 완벽하게 행복해질까?' 하는 질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편에 있는 듯한 질문,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덜 불행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불행하지 않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 어쩌면 그건 행복을 포기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게는 그 질문의 전환이 막다른 길에서 발견한 작은 오솔길처럼 느껴졌습니다.

억지로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힘들고 몸에 맞지 않다면, '편안'한 상태인 불행하지 않은 정도만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이 질문의 전환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제 삶에서 바꿔놓았어요. 구름 위에 떠 있는 듯 막연하고 높은 '행복'이라는 목표 대신, 지금 내 발이 딛고 선 현실에서, 내 삶을 좀먹고 있는 불필요한 '불행의 요소'들을 하나씩 인지하고 걷어내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 거예요.


이건 결코 패배적인 후퇴나 체념이 아니에요. 오히려 저에게는 이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생존 전략에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저 멀리 어딘가에 있다는 파랑새를 찾아 허황된 꿈을 꾸며 헤매기보다, 당장 내 발밑을 어지럽히고 넘어지게 만드는 크고 작은 돌부리들을 먼저 묵묵히 치우는 일... 화려한 축포가 터지는 극적인 순간을 기다리기보다, 그저 매일 밤 뒤척이지 않고 편안히 잠들 수 있는 최소한의 잔잔한 평화를 지키려는 노력 같은 거예요.

하하, 말이 너무 거창하려나요? 쓰고 나니 조금 부끄럽네요.


쉽게 말하면 뜬구름 잡는 게 아니라, 이미 내 손안에 있는 걸 잘 다루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생각해 봐요. 행복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삶은 때로 우리를 너무 쉽게 지치게 만들잖아요? 그보다는 차라리, 내 삶의 만족도에서 마이너스 점수를 주는 요인들, 즉 '불행'의 점수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편이 어쩌면 더 지치지 않고 꾸준히 갈 수 있는, 더 지속 가능하고 닿기 쉬운 목표일지도 몰라요.


남들과 나를 끊임없이 저울질하는 비교의 습관을 알아차리고 잠시 멈춰보는 것, 나 자신과 타인에게 거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조금은 느슨하게 풀어놓는 것, 나를 존중하지 않거나 이유 없이 갉아먹는 관계에서 용기를 내어 거리를 두는 것,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불쑥 찾아와 나를 괴롭히는 내 안의 부정적인 목소리에 무작정 휘둘리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

그런 아주 소소하고, 어찌 보면 평범한 노력들이 꾸준히 모여 내 삶의 불행의 총량을 줄여나갈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렇게 되면 불행을 비워낸 바로 그 빈자리에,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어떤 종류의 평온과 자연스러운 만족감이 조용히 깃들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 에세이에 앞으로 이어질 글들은 바로 그 '불행하지 않음'을 찾아가는, 혹은 만들어가는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고군분투기이자, 여전히 진행 중인 어설픈 실험의 기록이에요.


제가 모든 답을 찾았거나 어떤 경지에 도달해서 쓰는 글은 결코 아닙니다. 세상 어느 누가 '불행하지 않는 법'을 완벽히 알겠어요. 그 누구도 완벽한 해답을 줄 수 없고, 누구나 따라 하면 즉효를 보는 마법 같은 비법을 제시할 수는 없을 거예요. 대신, 그저 저와 비슷한 고민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작은 위로나 공감이 되고, 때로는 '어? 이런 방법도 있네. 나도 한번 이렇게 해볼까?' 하는 아주 작은 용기나 실마리를 줄 수 있다면, 그걸로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정답을 찾기보다, 각자의 길 위에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함께 걸어갈 동반자가 필요한 건지도 모르니까요.


정답은 여전히 저 너머에 있거나,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마치 신기루처럼요.

하지만 이 서툴고 솔직한 여정을 함께하며, 부디 당신도 저처럼 '적어도 오늘은 아주 불행하지는 않았네'라고, 하루의 끝에서 스스로에게 담담히 말해줄 수 있는 날들이 조금 더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거창한 행복은 아닐지라도, 그 소박한 인정과 위안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분명 꽤 괜찮은 방향으로, 조금 더 단단하게 흘러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니까요.


이제, 그 가능성을 믿고 저와 함께 첫걸음을 떼어보려 해요.

우리는 서로 만나지 않았지만, 제가 글로 쓴 세상에서 만나게 되었으니 이것도 인연이겠죠.


앞으로도 하루 5분만 저를 읽어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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