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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주하 Oct 04. 2023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오진당하다

정신과 의사 현명하게 선택하기

이 글을 보고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을 망설이거나 중단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정신과 진료는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며, 환자와 의사 간의 신뢰가 중요합니다. 이 글에서 제시한 정신과 의사 선택에 대한 팁은 참고용으로만 활용하시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의사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의사와 충분한 상담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치료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부터 밝혔지만, 이 글은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지 말라고 쓰는 게 아니다. 이걸 보고 치료 중인 주변인들에게 '이거 봐 정신과 함부로 가는 거 아니라니까.'라는 말을 한다던가 본인이 받고 있던 치료를 무작정 중단해서는 안된다. 부제목도 '정신과 의사 현명하게 선택하기.'지 않은가. 그런데 뭐랄까, 내 치료는 조금 이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한 낌새들이 참 많았다. 그런데  말 그대로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갔다 보니 그런 걸 따질 여유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무언가 찜찜했는데 그 당시엔 그냥 넘겨버렸던 포인트'들을 써보고자 한다. 아, 내 브런치 유입 키워드 중에 '정신과 오진' 같은 것들이 있었다. 이런 걸 검색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듯하다. 나 같은 사람이 부디 또 생기질 않길 바라며.


요즘 정신과의사가 나오는 영상, 그들이 쓴 책, 정신과 상담 수기 등이 굉장히 많다. 스트레스와 억압된 분노가 많은 한국사회의 수요가 반영된 듯하다. 나 또한 정신의학, 심리학적 지식을 습득하면서 부모와의 갈등을 감정보단 분석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또 이것이 나의 인생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떻게 해결해 가야 할지에도 관심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콘텐츠가 늘어나는 것을 환영한다. 그런데 보다 보면 마음 한편이 불편해질 때도 있다. 바로 정신과에 가면 나를 괴롭히던 고통이 뿅 하고 해결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콘텐츠들. 간혹 그런 것들을 보면 마음이 '불안하다.' (치료 수기 같은 글들이 이런 뉘앙스인 경우를 종종 봤다. 편견을 무너뜨리고 같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가보라고 권유하는 글이라 그렇겠지만.) 사실, 그런 건 어디에도 없다.


나는 첫 내원당시에도 스트레스와 불안이 매우 심한 상태였으나 약을 먹는 3년여의 기간 동안 더더욱 심각해져 갔다. 엄마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약을 먹던 당시엔 '사람 몰골이 아니었다.'라고 한다. 그냥 효과가 없거나 조금 힘들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일상생활이 불가능했었다. 약 부작용으로 겪었던 증상 10가지만 써보겠다.

AI뤼튼에게 독약을 먹는 여자 이미지를 그려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그려주었다.

                                        

1. 극도로 불안하다. 동물원 철창에 갇혀 오래 방치된 동물처럼 계속 작은방과 큰방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심할 땐 매일 수십 번 했다. 너무 심할 땐 응급실에 갔는데 베드에 누워만 있어도 심박수가 150에 다다라 기계에서 소리가 났다.


2. 분노 조절이 잘 되지 않는다.


3. 자살생각이 갑자기, 강박적으로 든다. 정상적인?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할 수 있을 법한 자살생각은 합리적이라곤 볼 수 없어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선 '자살하고 싶다.'라는 문장이 바이러스 먹은 컴퓨터의 팝업창처럼 생각났다.


4. 안 좋은 과거의 일이 계속 떠오른다. (전문용어로 반추사고라고 한다.)


5. 임신한 것도 아닌데 가슴에서 유즙이 흐르고 유방통이 심해 식은땀이 난다.


6. 생리주기가 늘어져서 48일 만에 한 적도 있다.


7. 잠을 너무 많이 자서 하루에 14시간 넘게 잤던 기간도 있다.


8. 체중이 10kg 가까이 불었다.


9. 앉아있는 행위 자체가 힘들며 앉게 되면 손발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된다.


10. 속이 메스꺼워서 음식 냄새를 맡거나 식사를 하기가 어려운 기간도 있었다.


 대강 이러한 부작용들을 겪었는데 정신과 환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증상과 겹치는 것들이 많다 보니 의사는 부작용이 나타날 때마다 계속 또 다른 약을 추가하여 약 7종을 하루에 3번 필수로, 두 번은 힘들 때 먹을 수 있을 수 있도록 처방해 주었다. 나는 의사를 바꾸고 나서도 한동안 계속 약을 먹다가 한계치에 도달했다. 이제 정말 죽어야겠다고 결심을 한 후 용기가 나지 않으니 약을 끊으면 용기가 날까 싶어서 약을 끊어버렸다.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점점 건강해져서 괜찮은 상태를 누리고 있다. (지금 단약한지 딱 1년째가 된다)


사실은 이렇다. 나는 애초에 약이 거의 필요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약을 먹던 당시 대화를 나누었던 심리상담사들도 아닌 것 같다고 했었는데 그땐 그게 잘 들리지 않았다.) 첫 내원당시에 보였던 극도의 불안감과 분노는 성장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을 감안한다면 정당한 것이었으며 이미 해소되어야 했던 것이었는데 미루고 미루다 그때서야 분출한 것이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엄마아빠에게 학대당했을 땐 미성년자라 어쩔 수 없이 찍소리도 못하고 억누르며 지내오다가 성인이 되고 나서 빵! 하고 터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사는 나의 이러한 히스토리도 듣지 않고 양극성장애의 조증시기에 해당한다며 몇 번 내원하지도 않은 나에게 기분조절제인 리튬을 처방했다.


양극성장애를 설명한 글을 아래에 첨부해 본다.

양극성 장애 | 질환백과 | 의료정보 | 건강정보 | 서울아산병원 (amc.seoul.kr)


나중에 되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정신과에선 몇 번 내원하지도 않은 환자에게 확실하게 ~~~~ 입니다. 하고 진단명을 붙이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그래서 진단서도 한 달 이상 지켜본 후에 발급 가능한 것이다. (설령 조현병 증상을 보이더라도 곧바로 조현병이라고 하기가 어려운 게, '단기 정신병적 삽화'라고 하여 짧은 기간 조현병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내가 알기로, 양극성장애환자들은 대개 오랜 기간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우울증으로 치료받다가 (혹은 치료받지 않았더라도 그런 증상을 겪다가) 항우울제가 잘 듣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기분조절제를 쓰자 증상이 잡혔다던가, 우울증으로 내원하여 항우울제를 쓰니 조증삽화가 와서 진단받았던가, 우울증으로 치료받다가 뚜렷한 조증삽화가 온 케이스 등이 대부분이다. 조증 시점에서 내원을 하게 된다면 대부분 보호입원이나 가족들의 강력한 권유로 내원하게 된다고 한다. 나는 첫 주치의가 말한 조증삽화라는 기간에 제 발로 내원한 환자였다. 치료를 받으며 병식(환자라는 인식)을 가지기 전까진 조증 때 본인이 느끼는 감정이 (고양감이든 짜증이든) 정당하다고 느끼기에 병원에 스스로 내원하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그때 조증삽화 아니었다. 내가 양극성장애 환자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도망쳐야 할 각이라고 알려주는 단서들이 꽤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의사가 이랬는데 빨리 바꾸지 않은 건 내 탓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 사실 맹목적으로 신뢰한 내 탓이 일부 있는 것도 맞다. 다른 건 그렇게 검색과 비교를 해대면서 왜 그땐 안 그랬는지.


1. 무례하다. 첫 내원부터 내가 하는 말들이 듣기 힘들다고 대놓고 기분 상하도록 표현했다. 내 말을 듣기 싫어하는 듯했다.(말이 빠르고 의사 말을 계속 자르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고방식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증상이고 그래서 내원한 것인데......)


2. 부작용 호소를 무시한다.

생리주기가 48일로 늘어졌어요 → 50일만 안 넘으면 돼요 (부인과 의사가 듣고 '누가 그래요?' 했다.)

살이 너무 쪘어요 → 내가 볼 땐 안 그래 보이는데?

유즙이 흐르고 유방통이 있어요 → 흔한 부작용이에요

잠을 14시간 자요 → 원래 잠이 많은 타입일 수도 있어요 (나는 학창 시절 운동선수였다.)

극단적인 행동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성격이 원래 극단적인 것 같아요

등등......


3. 반말한다. (원래 미성년 환자에겐 환자의 동의하에 반말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성인이 된 이후에 내원하였다.)


4. 성실하지 못한, 환자들과의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5. 환자 이야기를 듣는 태도가 좋지 않다. (비웃는다던가 인상을 확 쓴다던가)


6. 진료순서를 임의로 조작한 적이 있다.(이때 진료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여 전원 했다.)


7. 자살생각이 드는 것을 호소하자 '자살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라고 하고 '죽겠다고 결심한 사람을 어떻게 막겠냐'라고 했다.


8. 나를 약이 잘 듣지 않는, 치료가 어려운 환자로 느껴진다는 것을 티 내서 자책감을 가지게 했다. (이것은 정신과 상담 시에 발생하는 전이현상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긴 한다. 의사가 자신의 고유한 것들을 잘 드러내지 않으니 환자가 그 의사에 대해 주변인물들에게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추측을 하게 되고 그들에게서 느꼈던 감정을 재경 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엔 나를 위해주는 척 휘두르고 방해했던 엄마를 재경험 한 것 같다. 그 의사가 직접 말했듯이 '너무 자기 말을 곧이곧대로 따른다.'라고 했는데 어릴 적 엄마 말을 잘 들어서 기쁘게 하고 싶은 감정을 재경 험한 것 같다.)


9. 사소한 것을 다 병증이라고 엮는다. 나는 내향적인 타입인데 한때 1주일에 한두 명 정도 약속을 잡고 만났었다. 그런데 이걸 경조증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경조증이 왔다고 판단하는 기준 중에 명확한 것이 없었다. 보통은 소비나 활동이 는다 (파괴적이거나 평소 모습과 같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면, 대출을 받거나 같은 물건 여러 개를 사는 식으로 불필요한 소비를 하거나 나름 필요한 물건들이라 하더라도 생활비가 부족해질 정도로 소비하는 것. 또는 원래 아침잠이 많은 타입인데 새벽마다 운동을 하러 나가는 것.) 나는 이랬던 적이 없다. 딱히 치명적인 손해나 갈등을 일으킨 적이 없다. 밝고 활기차져서 본인도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에 (기분장애는 같이 있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경조증 상태인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데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은 정신과의 근본적인 한계이긴 하다.)


10. 환자의 증상이 악화되면 안타까워하기보단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말한다.(듣기로는 이런 태도를 나한테만 보인게 아닌 듯하다 다른 분야의 전문가라면 모를까 의사의 태도로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전이현상에 대해 꽤 많이 썼는데, 정신과 내원과 의사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들 중에 이 '전이현상'이 있다.(물론, 사소한 일로 가는 사람보단 상태가 심각한데 여러 이유로 못 가는 사람이 훨씬 많긴 하다.) 전이현상을 느끼게 되면 의사를 나를 이끌어 주는, 내 삶을 인도해 주고 보호해 줄 존재처럼 여기게 된다. 너무나 힘들고 마음 기댈 곳이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성인의 삶에 이런 존재가 생기는 게 좋을 리가 없다. (너무 지치고 힘든 상황에선 도움 될 수 있다.)이 전이현상을 경험하게 되면 안 좋은 의사라는 게 마음 한편에서 느껴지더라도 쉽게 전원 하기가 어렵다.

두 번째로, 약은 증상을 완화하는 것이지 근본적인 문제를 없애주는 것이 아니다. 운동과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등의 노력을 강조하는 것이 지겹고 깊은 우울에 빠져있을 땐 거의 본인을 비난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래야 호전되는 것이 사실이다. 나도 그때 하던 일들을 싹 멈추고 마음 건강에 집중하며 다른 방법으로 개선해 볼 시도를 아예 하지 않은 채로 곧장 병원에 간 것이 아쉽다. 그 뒤에도 별 다른 노력 없이 약으로 개선되기만 바랐었다.

세 번째로,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극단적인 선택을 막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하기 때문에, 내가 사소하게 겪는 문제들도 불길하게 여길 수 있다.(반대로 너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의사 성향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의사가 과잉진료를 하려고 하지 않았어도 그렇게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마음을 잘 컨트롤하는 것이 의사의 능력이긴 하지만.


  나는 하던 일을 중단하고 불안을 조절하는 약만 몇 달 먹으면 해결될 일을 3년 넘게 이 약 저 약 먹으며 악화시켰다. 나는 전원 하여 다른 의사를 만났고 오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내 두 번째 주치의는 오진을 의심하며 '이래서 의사를 여러 명 만나봐야 하는 건데.'라고 했다. 여러 명 만나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첫 주치의는 자신감과 확신이 넘치는 태도였는데 두 번째 때 만난 의사는 신중한 성격이었다. 신중한 성격이 무조건 좋다는 것은 아니나 너무 과할 정도의 자신감을 가진 의사는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 본인의 성격적 단점을 보완해 주는 의사를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엔 자기 확신이 강하고 섣부른 판단을 잘하는 경향이 있어서 신중한 성격의 의사가 상담치료 면에서 도움이 되었다.


+오진인 것이 밝혀진 후 나는 그 의사에게 내원한 적이 있었다. 진단서를 받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약을 먹고 있지 않다고 하자 (양극성장애는 두 번 이상의 조증삽화를 경험했다면 약을 평생 복용해야 하는 것이 '기본값.'이다. 첫 주치의도 나에게 계속해서 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안내했었다.) 사과했을까? 아니, 자기가 처방한 약을 복용해서 나은 것이라고 했다. 아, 명의 중의 명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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