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없고, 남자도 없고, 갑자기 일마저 똑 끊겨버린 영화 프로듀서 ‘찬실’. 현생은 망했다 싶지만, 친한 배우 ‘소피’네 가사도우미로 취직해 살길을 도모한다. 그런데 ‘소피’의 불어 선생님 ‘영’이 누나 마음을 설레게 하더니 장국영이라 우기는 비밀스런 남자까지 등장! 새로 이사간 집주인 할머니도 정이 넘쳐 흐른다. 평생 일복만 터져왔는데, 영화를 그만두니 전에 없던 ‘복’도 들어오는 걸까?
초등학교 때 영어의 ‘ㅇ’자도 모르는 나를 어머니는 영어 말하기 대회에 내보내셨다. 어머니는 참 양심도 없으셨지. 알파벳조차 가르쳐주지 않으시고 알파벳 발음조차 모르는 내가 어떻게 그 대회를 치를 수 있겠는가? 나는 까막눈으로 영어 테이프만 반복해 듣고는 따라 말했는데 심사위원이 심사평에서 나의 교정할 발음을 끝없이 지적해서 진땀뺀 기억이 있다. 그 이후 나는 어머니의 인정을 받기 위해 영어를 배웠던 것 같다.
나의 청소년기와 대학 시절에는 ‘영어’가 인정받던 수단이었다. 나는 20대 중반, 대학원 입학과 동시에 심리학 공부를 해야했기에 영어에 미련이 크진 않았다. 하지만 그 이전의 대학 생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관계, 시간은 영어와 관련되었다. 하루아침에 몰두하던 무언가가 없어지는 것만큼 사람을 당황스럽게 하는 게 없다.
실직이나 명예퇴직을 한 후 다음 날 아침을 떠올려보자. 온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만 달라졌다. 출근해야 할 직장이 없고 어딘가 가기 위해 집을 나섰지만 막상 갈 곳이 없다. 이럴 때는 공허, 허탈, 허전이라는 단어 중에 어떤 단어가 제일 적합할까?
찬실이는 십년간 몸담았던 영화판에서 순식간에 버림받는다. 자신과 함께 일하던 감독의 장례가 끝나기가 무섭게 실직자 신세가 되어 아는 동생인 여배우 집에서 가사 도우미 일을 시작한다. 찬실이는 떳떳하게 돈벌이를 하며 '영'이라는 불어강사와 썸?을 타는 듯한 모양새다.
영은 “가을 볕이 참 좋았다.” 말한다. 찬실이는 그 말을 좋다고 받아준다. 영화보다 인생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영, 영은 영혼의 영(靈)일지 young일지 몰라도. 영화를 보는 나는 속으로 "왜 흘리고 다니는 거야?"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라는 백아연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이 영화를 보고 맨 처음 든 생각은 '상실'이다. 내게 가장 좋은 것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는 그에 대한 답이다.
찬실이에게 가장 좋은 것은 영화 일이었다. 연애를 생각할 여유가 없을 만큼 좋단다. 그녀의 단점이 딱 하나 있다면, 현실감 제로, 사는 게 뭔지 모른다는 게 흠이다. 어찌어찌 영화 만들며 밥벌이하고 영화PD가 자기 정체성의 100%인 것처럼 살았는데, 갑자기 영화 일이 없어지자 자기가 누군지, 인생이 뭔지 혼란스럽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뭘까? 영화는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영화가 중요한가, 내 인생이 더 중요한가? 위의 질문들에 영화 대신 내가 가장 욕망하는 걸 넣어보자.
주인집 할머니(윤여정)가 찬실이에게 무슨 일하냐고 묻고, 찬실이는 자신의 일을 설명하자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지나가는 듯 한 마디한다.
“자기도 모르는 일을 왜 했대.”
사실이다. 그녀 자신도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했다. 이게 나를 위하는 일인지, 뭘 위해서 일에 몰두했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할머니의 딸 방에 있던 라디오와 비디오 테이프 등은 딸도 영화를 좋아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골동품처럼 쌓인 영화와 관련된 물건은 결국 살아있을 때 의미 있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찬실이에게 보여준다. 죽음과 대비해서도 내가 내려놓을 수 없는 욕망이 있는가?
찬실이의 상실과 할머니의 상실이 하나의 장면에서 모아질 때, 나도 모르게 코가 시큰거리고 눈물이 났다. ‘어, 이거 뭐야. 준비 없이 당한 어퍼컷 같잖아.’ 나도 모르게 찬실이처럼 "할머니, 이게 뭐예요. 나까지 "하고 볼멘소리로 말하고 싶었다. 화분에 죽어있던 꽃의 만개와 시 한 줄이 날 울릴 줄 몰랐다.
할머니가 안 쓰는 건 버려야 한다고 하면서도 버리지 못한 것들, 그 중에서 라디오 하나를 자기 방으로 가져온 찬실이, 버리려 내놓은 영화관련 잡지책과 비디오들을 다시 자기 방으로 가져가고 마음을 다잡는다.
할머니가 콩나물을 다듬으며 한 명대사가 있다.
“나는 오늘 하고 싶은 하면서 살어. 대신, 애써서 해.”
찬실은 자기의 삶을 다시 찾겠다고 다짐하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인생이 나에게 던진 질문은 나만이 답할 수 있다. 누군가 대신 답해주기 어렵다. 상실의 자리에 아무리 다른 사람으로 채우려 해도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는다. 찬실이에게 '영화'라는 인생의 공백, 처음 찾아온 인생의 공백기를 과연 무엇이 채워줄 것인가? 우리는 '영화' 대신 뭘 넣을 수 있을까? '일', '자녀', '취미생활', '건강', '성공', '경제적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