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영화, 언제까지 보기만 할 거예요?
영화를 통해 내면아이를 치유하세요.
( 제가 여기서 쓰려는 건 영화를 감상하는 입장에서의 수용치료만 해당됩니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여러분은 영화 ‘겨울왕국’을 보셨나요?
안나가 엘사의 방문을 두드리며 노래 부르는 장면을 볼 때 어떠셨어요? 제 내담자는 영화관에서 그 장면을 보다 울음이 나와 주체할 수 없어 당황스러웠대요. 상담하다 보니 어릴 때 안나처럼 언니와 함께 놀고 싶었는데 거절당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여러 차례 기대가 좌절되었고 성인이 되어 가까이 하기엔 먼 언니가 되었어요. 이처럼 영화를 보다 내면의 눌러왔던 감정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순수하게 언니와 함께 놀고 싶었던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을까요?
저는 신혼 시절 픽사의 애니메이션 'Up'을 관람했어요. 영화 도입부 5분 정도 칼 할아버지와 엘리 할머니의 결혼생활을 단편 영화처럼 보여줍니다. 결혼식 장면부터 엘리 할머니가 먼저 세상을 뜨고 장례를 치르기까지의 부부의 인생이 지나가는데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뚝 떨어졌습니다. 부모들이 아이들 보여주러 왔다 울고 나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던데요. 저는 당시 결혼 후 3개월 정도 되었을 때라 노부부의 사랑이 진정성 있게 느껴졌어요. 실화를 모티브로 했기에 ‘나도 실화의 할머니처럼 서로 아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싶었습니다.
영화는 이처럼 현재 내가 갖고 있는 갈등이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드는 무수한 자극들을 스크린에 비춰줍니다. 하얀 막에 여러 장면들이 느리게, 때로는 손살 같이 지나가면 우리 자신과 인생을 빗대어 봅니다.
Segen 의학사전에 의하면 영화치료는 치료 도구로서 영화, 특히 비디오를 사용하는 치료, 자가 치료의 한 방법입니다. 영화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배우고, 의식적으로 영화를 관람함으로써 치유와 성장의 촉매제가 될 수 있습니다. 영화치료는 통찰, 영감, 정화, 안정과 변화를 위해 영화 속 이미지, 줄거리, 음악 효과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치유적인 특성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
가장 큰 건 오락성입니다. 가만히 수동적으로 보기만 해도 재미가 느껴집니다.
특히 관객 안에 억압되었던 감정들이 정화되어 대리 만족됩니다. 영화 ‘맘마미아’와 같은 뮤지컬 영화은 50~60대 여성 분들이 자신의 리즈 시절을, 전설적인 밴드 퀸의 음악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많은 남성 분들이 잘 나갔던 왕년을 떠올리며 추억과 흥을 재경험합니다.
각 인물에게 어느 부분은 동일시하거나 그들이 나의 모델이 되어줍니다. 이상형은 따라하고 싶고, 진상 캐릭터는 반면교사가 됩니다.
‘내가 주인공이라면.’ 이라는 전제 하에 되고 싶은 사람, 가지 못했던 길에 대해 알 수 있어요. 영화 ‘라라랜드’에서 오랫동안 꿈꿔왔던 배우가 되어 전남자친구와 재회했을 당시 몇 분의 피아노 연주 동안 남자친구와 그려왔던 미래가 그려집니다. 현실과 이상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언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 두 사람이 각자 꿈과 사랑을 모두 얻기엔 한계가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굳이 똑같이 경험하지 않아도 그들을 통해 감정을 느끼고 결과를 예상합니다.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에서 여주인공은 결혼생활 동안 매일 똑같다고 느끼며 이웃집 남자가 주는 새로운 자극에 매료됩니다. 남편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닭요리, 장난이 일상의 변주를 만드는 거라는 걸 뒤늦게 깨닫습니다. 자극이라는 게 얼마나 허망하며 잠깐의 쾌감이 지난 다음에는 다시 둔감해져 더 이상 자극이 될 수 없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관객들은 새로운 이성를 만나더라도 '새' 짝이 곧 '헌' 짝이 된다는 걸 짐작할 수 있어요.
희로애락, 세상사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 진리, 보편성을 알게 되어 나, 타인, 사회에 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집단무의식을 알아차리고 영화를 통해 한풀이 굿을 합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영화 ‘지슬’을 그 자체로 숙연한 제의라고 했어요.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도가니’는 성폭력을 당한 장애학생에 대한 사회의 정당한 분노가 들끓었어요. '도가니 신드롬'을 통해 본 문학의 치유적 의미에 대하여 유강하님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한 고통의 연대는 도가니 사건에 대한 재조사와 해결을 이끌어 내는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소설이 불쏘시개 역할을 했지만 들불이 될 수 있게 만든 건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통해 학생들의 공포와 분노를 생생하게 간접경험한 460만 관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통해 내면 아이를 치유하기도 하고요.
‘국제시장’을 보고 부모와 조부모가 떠오른 관객이 많을 겁니다. 저도 친정아버지가 떠올랐어요. 전쟁 중 피난길에 아기였던 친정아버지는 기억하진 못하지만 온 몸에 마음의 상처가 남아 있으셨거든요. 영화를 도구로 사용한다면 가장 치유적인 장면은 바로 할아버지가 된 덕수가 아버지와 상상 속에서 재회하는 장면입니다. 아버지가 어린 덕수에게 말합니다. “얼마나 고생했는지 다 안다. 내가 못한 거 네가 잘 해줘서 진짜 고맙다. 나도 네가 보고 싶었다.” 할아버지의 상처 받은 내면 아이가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지 공감 받습니다. 어릴 때부터 한 평생 가장 역할을 한 노고를 아버지께 인정받는 장면입니다. 그 장면으로 인해 덕수 할아버지 안에 내면아이가 치유됩니다.
영화 '키드'는 내면아이를 이해하는 데 좋은 영화에요. 러스 듀리츠(브루스 윌리스)는 40대 성공한 이미지 컨설턴트인데 어느날 8살 자신을 만나요. 8살 자신을 다시 만나 어떤 경험 때문에 안면경련이 생겼는지 기억하게 됩니다. 그 아이와 대화하고 위로하며 스스로를 성장시켜요.
마지막으로 말할 수 있는 효과는 내가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해당 주제와 관련된 영화를 보면 다양한 해결방식과 조언을 얻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좋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은 교육이 됩니다. 예를 들어 여자 청소년들이 볼만한 영화들 ‘우아한 거짓말’, ‘하나와 앨리스’, 다큐멘터리 영화 ‘땐뽀걸즈’(동명 드라마 아닙니다.), 남자 청소년들의 성장에 관한 영화 ‘완득이’, ‘천하장사 마돈나’, 등이 있습니다. 20대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내 깡패같은 애인’, ‘리틀 포레스트’와 같은 영화를 보며 주인공들에게 동일시하며 위안 받습니다.
그렇다면 영화를 '어떻게' 치유 도구로 쓸까요?
간단해요. 영화를 보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감상에 대해 능동적으로 이해하고 소화시키면 됩니다.
자기에게 준 영향을 글로 써보거나 다른 사람들과 감상을 나누는 거예요.
다음은 관람 후 가능한 질문들입니다. 영화 보는 중에 메모를 적어두면 도움이 됩니다.
글쓰기가 어렵다면 다른 사람과 영화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아래 질문들은 Birgit Wolz 박사의 Cinema Therapy 글을 참고하였습니다.
1. 영화를 보면서 당신의 감정, 감각, 호흡이 어땠는지 기억합니까?
영화가 당신에게 준 영향은 무엇입니까?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중 어떤 면에서 당신에게 감동을 주었는지 적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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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화 속에서 당신이 좋아한 것과 싫어한 것에 주목하십시오.
어떤 캐릭터나 행동이 특히 매력적이었는지 또는 매력적이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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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캐릭터에 대한 강한 긍정적인 / 부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영화 캐릭터나 그의 행동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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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영화 속에서 내 이상적인 모델로 삼을 만한 배역이 있습니까?
어떤 강점을 개발했습니까? 그 외에 내가 변화하거나 따라하고 싶은 다른 역량도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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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영화의 어떤 장면을 특별히 보기 어려웠는지 써보세요.
이것이 당신 내면에서 억압했을지도 모르는 것에 관련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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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만약 그 영화가 당신에게 독특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나요?
어떤 가치, 미덕, 능력, 지혜, 등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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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어떤 장면에서 감동이나 자극을 받았습니까?
바로 그 부분에서 잠재의식이 건드려졌을 수 있습니다. 특정 장면이나 캐릭터를 보면서 건강, 지혜, 이상적인 자아를 연결시켜주는 경험이요. 치유와 온전함으로 이끌 수 있는 정보, 꿈을 갖고 있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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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영화를 본 후 어떤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나요?
오래된 습관이나 감정 패턴을 버리거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본 게 있다면 적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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