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별에 대한 애도
* 이 글에 나오는 이름은 가명이며, 오래된 사례들의 인적사항과 정보를 가공하였습니다.
미자님께.
미자님, 선한 인상이 기억에 남아요.
저희 센터에 처음 오신 날, 아들과의 사별을 들었습니다.
아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허심탄회하게 말씀하셨지요.
사별 후 감정은 말할 수 없이 복잡합니다.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함, 고인의 마지막 날 아무 생각 없이 했던 언행에 대한 후회, 나만 두고 먼 길 갔다는 원망, 무엇보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이에 대한 그리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 휘청이게 하는 슬픔, 엄정한 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무력감이 느껴집니다.
여러 색깔의 감정을 나눈 후 몇 개월 전 사별인데 지금 오신 이유를 여쭤보았죠.
아들 명의 땅으로 인한 친척들과의 갈등 때문이었어요. 원래 아버지 형제들의 공동명의였던 땅을 친척들이 팔 것을 요청하셨다는 거예요. 남편은 알겠다고 하셨고 미자님은 안 된다고 버티는 중이었죠. 안 그래도 아들을 먼저 앞세우신 게 얼마나 한스러우실까요? 사실 무덤은 미자님 가슴속에 있을 텐데요. 아직 아들에 대한 애도가 덜 된 상태에서 땅 이야기가 나오니 미자님은 발끈하셨던 거지요.
애도 과정은 부정(부인), 분노, 타협, 우울, 수용 다섯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아들의 죽음을 수용한 것처럼 보였지만, 여전히 가슴속에는 불 같이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아들의 사망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예전처럼 생활하는 가족들에게 말 못 할 괴리감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자녀가 죽은 다음에 부부의 다른 애도 방식과 괴리감 때문에 헤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땅 문제가 분노를 터뜨리게 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습니다. 미자님은 친척들에게 일방적으로 설득당하고 수세에 몰렸죠. 그 자리에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컸습니다. 상담 첫날 흥분한 목소리로 내 안에 화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하십니다. 분노의 가장 큰 이유는 결혼 초부터 남편에 대한 불만이 쌓여왔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애인처럼 어머니의 감정을 잘 알아주고 가끔 데이트 신청해 저녁 식사나 영화 관람을 했어요. 주위 친구들이 부러워할만한 모자관계였어요. 땅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여부는 잠시 뒤로 미뤄두고 아드님과 어떻게 밀착되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내담자는 친척들이 많은 남편의 고향에서 만만치 않은 대가족 시집살이를 고되게 하느라 꽃다운 젊은 시절이 다 갔어요. 하지만 시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격려와 위로에 인색한 남편에 대한 실망, 외로움으로 큰 아들에게 집중합니다. 아드님이 남편의 역할을 맡은 어른 아이였던 거예요.
그 화의 불씨를 지핀 건 땅 문제였지만 점점 그 원인을 찾다 보니 현재 남편과 며느리에 대한 원망감이었던 겁니다. 아들 생전에 제대로 된 따뜻한 끼니를 제대로 차려주지도 않았고 자기 방의 정리정돈조차 못하는 며느리의 행동이 워낙 마음에 들지 않았죠. 아들이 죽은 후 며느리 탓을 하고 싶으셨던 거예요. 아들이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은 어떻게 밥을 먹고 당신 건강 하나만 챙기는지 기가 막혀하셨지요.
슬픔을 처리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김종기 님은 1995년 6월 학교폭력 피해로 16살의 꽃다운 나이에 죽음을 선택한 외아들을 그리며, 그 아버지가 다시는 이 땅에 자신과 같이 불행한 아버지가 없기를 소망하는 마음에서 비영리 공인법인인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을 만드셨습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의 저자 수 클리볼드도 아들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아들의 마음을 다시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가해자의 우울증에 대해 널리 알려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녀의 죽음으로 인해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승화시키는 분들도 계십니다.
미자님은 가장 쉬운 ‘남 탓’이라는 방어기제를 쓰셨던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들이 죽을 때 옆에 있지 않았던 자신을 제일 용서하기 어렵기 때문이겠지요. 아마 가장 분노가 향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자신일 겁니다. 자식은 가슴을 쥐어뜯어가며 고통 속에 죽어가는 동안 나는 뭘 한 걸까? 하신 거지요. 갑작스레 인사도 없이 떠난 아들에 대한 실망스러움도 있었을 거고요.
현재 진행형인 남편과 며느리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기보다 엄한 땅 이야기로 관심이 쏠리면 내가 처음에 어떤 것에 화가 난 건지 잊어버립니다. 촉발된 상황에 장작을 더 넣어 태우려 하셨던 겁니다. “아드님 명의 토지는 어떻게 결정하셨어요?” 하는 질문에 대답 없이 미소 지으십니다. 분명한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그것 또한 본인의 아집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우리 마음이 편치 않을 때는 조그만 자극에도 집착하게 되어 있어요. 생떼 쓰는 어린아이 달래듯 봐줄 필요가 있습니다. 결정은 상담자인 제가 하는 게 아니고 내담자 스스로 하는 거죠. 부디 아드님을 이제 놓아주시고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느끼며 지내길 빕니다.
만약 아드님이 옆의 빈 의자에 앉아 있다면 뭐라고 할까요? 아마도 “어머니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먼저 가서 죄송합니다. 저는 괜찮으니 이제 어머니께서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어머니 이렇게까지 저를 사랑하고 생각해주신 걸로 충분해요.” 하늘에서 대답할 겁니다.
마지막에 나를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하셨죠. 상담이 몇 회 진행되지 않았는데도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건 그만큼 미자님께서 현명하셨다는 거예요. 부디 평안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