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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 Oct 15. 2021

그 날

제가 불안 장애라고요?



 가끔 그 날을 처음부터 끝까지 슬로우 비디오로 재생시켜보곤 한다. 갑자기 어, 내가 왜 이러지? 이게 지금 무슨 기분이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식은땀이 나고, 어지럽고, 저기 저 바닥으로 쓰러질 것 같고, 손과 발을 가만히 둘 수 없고, 속이 메스껍고,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고, 목구멍이 좁아진 느낌이 들면서 숨이 잘 안 쉬어지던 첫 날을 말이다. 그 날, 나는 내가 죽는 줄 알았다.


 연휴가 시작되기 바로 전 날이라 회사는 어수선했다. 일찍 퇴근하라던 팀장의 이야기를 듣고 일단 회사 밖을 나와서 그 즈음 가장 자주가던 카페로 가 콜드브루 2병을 샀고 그 중 한 병을 마시며 남편을 기다렸다. 남편이 금방 왔고 차에서 우리는 배고프다, 뭘 먹을까 얘기를 하다가 소월길 드라이브를 하며 시청쪽으로 갔다. SFC는 우리가 이십대 때부터 자주가던 장소였고 우리는 그 곳의 식당들에 꽤 빠삭했다. 가장 덜 붐비는 식당인 아시안 음식점을 골랐다. 사실 주차장에서부터 뭔가 조금 이상하긴 했다. 심장이 뛰는 게 느껴지고(보통의 경우에 내 심장 박동을 느낄 일은 거의 없으니까) 속이 좀 쓰렸다. 전자는 거의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지만 당시 나는 오랫동안 역류성식도염을 앓고 있었고 좋은 컨디션이라는 감각을 잃은 지 오래였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릴 때부터는 확실히 뭔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이상하게 초조했다. 초조하다는 기분을 그토록 강렬하게 느낀 게 거의 그 때가 처음이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난다. 나는 내 손을 차분하게 둘 수 없었고 계속, 정신없이 움직였다. 이상하게도 식당 안의 모든 것이 과장되게 느껴졌다. 다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목소리는 너무 컸고 서빙을 하는 사람들의 동작도 너무 컸고 음식 냄새는 이상하게 나를 흥분시키면서도 역겨운 기분이 들게 했다. 모든 것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건너편에 앉은 남편에게 전혀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나의 호흡과 뱃 속, 전신을 타고 흐르는 이상한 흥분과 떨림 하나하나에 곤두서 있었고 급기야 업장에 흘러나오던 꽤 빠른 리듬의 음악에 맞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걸 느꼈고 기절할 것 같았다. 의자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쉽지 않았다. 일어나는 순간 바닥으로 고꾸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식은땀을 흘리던 나는 결국 "자기야, 나 안되겠어." 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가장 가까운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가는 차 안에서 나는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가슴이 조여오는 느낌 때문에 옷을 거의 다 벗은 채였다. 호흡이 정말 잘 안되는 와중에도 남편을 바라보며 속으로 ‘아, 어떡하지. 우리 지난주에 혼인신고 했는데. 쟤는 이제 나 없이 홀아비가 되겠구나’ 뭐 그런 걱정을 했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니까 숨이 더 안쉬어지는 거 아닐까?!) 나는 그 때 내가 심장마비나 심혈관에 무슨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100프로 확신했었다. 응급실에 가서 응급수술을 받게 될까? 그렇겠지? 그럴거야. 어떡하지. 너무 무섭다. (숨 안 쉬어짐)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숨이 안 쉬어지다니! (숨이 더 안 쉬어짐) 숨을 못 쉬면 인간은 죽는거라고!


 응급실에서는 이러저런 검사를 했고 혈압을 여러 번 쟀다. 알러지 쇼크일 확률이 있다고 했다. 나는 평생 알러지가 있었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지만 의사는 면역력이 낮아진 상태거나 스트레스 상황이면 갑자기 특정 물질에 알러지 반응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우선 수액을 다 맞고 집에 돌아간 다음 가까운 병원에 내원해 알러지 검사를 해보라고 했다. 세상에 심장이나 폐에 문제가 생긴게 아닌거죠? 그런데도 그럴 수가 있나요?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그래도 집에 갈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러웠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가슴 속에 차가운 사이다를 콸콸 부은 것 같이 하루종일 가슴이 싸하고 흉통을 느꼈다. 심장이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고 식은 땀이 자주 났고 커피와 홍차는 더 이상 마시지 못하게 됐다. 어차피 오랫동안 위궤양과 식도염을 앓고 있던 터라 커피나 홍차를 많이 줄였던 때였다. 아이스아메리카노로 하루를 열고 유지하고 닫던 인생은 끝났다. 끊는 김에 담배도 끊었고 술도 끊었다. 그냥 모든 게 다 내 몸속에 침입해서 나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모른다는, 나를 또 그렇게 헐떡이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그 일이 발생한 곳이 아시안 음식점이라서 그런건지 나는 고수나 향신료처럼 조금만 풍미가 있거나 향이 센 음식은 냄새만 맡아도 속이 미식거리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긴장됐고 초조했고 깊은 숨을 잘 쉬지 못했다. 숨이 언제나 바트게만 쉬어졌고 목구멍 아래로는 공기가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상담의 선생님은 이 모든 것이 불안장애의 증상인 것 같다고 했다. 안 그래도 그럴 가능성을 두고 살펴보고 있었는데 진단을 내릴 요건이 충족된다고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역류성 식도염을 앓고 있는 것,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두근거려서 잠에 들지 못한다고 하는 것, 그래서 출근을 해서도 점심시간에 밥을 먹지 않고 두 시간 내내 낮잠을 잔다는 것, 얼마전 광고주 미팅에 가서 매일 여는 노트북의 비밀번호를 까먹었다는 것, PT를 할 때 갑자기 목소리가 떨리고 말을 끝까지 마칠 수 없었다는 것, 응급실에 간 날처럼 순간적으로 극심한 신체화 증상이 나타났다는 것(그 날 이후 일주일 정도 후에 강도는 조금 약했지만 거의 같은 증상이 한 번 더 나타났다), 그 신체화 증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   


 선생님은 역시나 이번에도 약 6개월 간의 내 생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난 일들과 나의 행적들을 꿰어내는데 탁월한 소질을 보였다. 이번엔 거기에 '불안장애'라는 새로운 라벨이 붙어있었다. 


 한아씨, 알잖아요.

역류성 식도염이라고 해서 모두가 하트번을 경험하진 않는다는 거. 모두가 불면증에 시달려서 회사를 못 가지도 않고요.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아니라 신체가 계속 각성상태에 있다보니 잠에 못 드는거에요. 한아씨가 계속 처방받는 약에 디아제팜이나 로라제팜같은 항불안제가 들어있잖아요. 소량이라도 그런 약들을 처방했다는 건 정말 위나 식도에 엄청난 수준의 결손이 있는게 아니라 심인성이라고 보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건 역류성 식도염이 증상 중 하나일 뿐이라는 뜻이고요.


 말을 들었을  솔직히 나는 조금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그 시기는 내가 조금은, 그래도 살만하다고 느끼던 시기였다. 아, 그러니까 정신적으로 말이다. 나도 이제 조금은 평범한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느끼던 때. 그런데 제가 이제는 불안장애라고요? 선생님, 저는 PTSD로 치료를 십 년 가까이 받았어요. 아시잖아요. 우울증이 심할 때도 불안은 크지 않았어요. 아니 최소한 제 사건이랑 무관한 일로 불안이 번진 적은 없었어요. 극장에 들어가면 심장이 쿵쾅거리고 숨을 못 쉬겠고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야할 때 목소리가 떨리거나 식은땀이 나거나 긴장되거나 한 적이 살면서 한 번도 없었다구요. 전 정말 그런 사람 아니에요. 근데 제가 갑자기 왜 불안장애가 생겨요? 어떻게요? 왜요? 그 날 아무 일도 없었어요. 매일 마시던 커피 마신 게 다에요. 카페인 알러지 가능성도 있다고 했어요.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 식의 질문들과 원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하지만 나는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상담실에서 그런 말이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굉장히 협조적이고 침착한 환자였다. 그래서 그냥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그래요? 그럼 전 이제 어떻게 해요?


그렇게 묻는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왜 이런 순간에는 목소리가 떨리지도 심장이 두근거리지도 그래서 쓰러질 것 같지도 않은지 그게 궁금했다. 그런데도 내가 정말 불안장애 환자가 맞나?  



PS 불안발작은 정식 용어가 아니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공황장애라는 말 보다는 불안발작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가장 큰 것은 실제로 내가 공황장애 진단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고 범불안장애 진단을 받았고 그로 인한 다양한 증상을 겪었으며 겪고 있고 그 중 어떤 것들은 발작이라고 할만큼 극심하고 강렬했기 때문이다. anxiety-attack과 panic-attack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아래 아티클을 참고해봐도 좋겠다.

https://www.singlecare.com/blog/anxiety-attack-vs-panic-att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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