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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마지막 날의 기록

6월의 마지막 날, 그분을 다시 뵈었다.

by 읽고쓰는스캇

대략 1년여 전, 한 여성 손님이 카페를 자주 찾아주셨다. 안부 인사와 짧은 대화를 나누는 정도였지만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미혼으로 처음 오셨던 그분이 어느새 결혼을 하시고, 천천히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눈치채고 있었지만 먼저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커피를 내드리던 중 그분이 먼저 말씀하셨다.

"저 곧 출산이에요. 출산휴가, 육아휴가 이후에 다시 돌아올게요."


뒤늦게 임신 축하 인사를 건넸고, 이어서 말했다.

"임신 축하드립니다. 다시 복귀하시면 꼭 카페에 와주세요. 제가 그때까지 버텨볼게요."


만삭의 그분은 미소를 지으며 "알겠어요."라고 답하셨다.


그 때나 지금이나 카페 운영이 쉽지 않았다. 매출을 걱정하며 하루하루 버텨가는 현실 속에서, 다시 찾아오겠다는 그분의 말이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손님이 나가신 후 베이킹실에 홀로 앉아 생각했다. 카페를 더 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고. (이 사실을 아셨다면, 그분께는 부담이시겠지만)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아내와 베이킹실에 앉아 가끔 그분 이야기를 했다. 그분은 어떻게 지내실까? 회사에 복귀하실까? 복귀하시면 정말 다시 오실까.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그분은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런데 오늘, 그분이 약속대로 돌아오셨다.

베이킹실에서 설거지를 하느라 처음엔 제대로 못 봤다. 설거지를 급하게 마무리하고 키오스크 쪽으로 걸어가는데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그분이 키오스크 앞에 서계셨다. 임신이나 출산의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분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그분도 나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오랜 친구가 깜짝 방문한 듯한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왜 그렇게 크게 웃었는지 신기하다. 아마 서로의 약속을 지켜냈다는 기쁨 같았다.


오랜만에 오신 그분께 정성껏 커피를 내리고, 서비스로 바닐라 사브레도 함께 내어드렸다. 안부를 묻고 싶었지만 괜히 부담스러우실까 봐 조심스러웠다.


20분 정도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며 사브레를 드시고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니 새삼 감회가 깊었다. 나가시기 전 남은 음료를 테이크아웃 컵으로 바꿔드리면서, 점심시간에 몰린 손님들 때문에 제대로 된 안부 인사는 나누지 못했다. 그건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다.


오피스 상권과 주택가 사이에 위치한 이 작은 카페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진다. 퇴사 인사를 하러 오신 손님, 이사 전 마지막으로 들르시는 손님들과 다양한 만남을 갖는다. 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이런 특별한 인연이 찾아온다. 단순한 손님과 카페 사장의 관계를 넘어서, 서로에게 작은 약속을 남기고 그것을 지켜내는 순간들. 이런 소중한 만남들이 지금의 나를, 지금의 카페를 만들어가는 것 같다.


사소할 수 있는 대화 하나가 나에게는 버틸 이유가 되고, 그 손님에게는 여길 돌아올 이유가 된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은 더욱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6월의 마지막 날, 다시 돌아온 손님 덕분에 마음이 한층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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