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사장에게 다가온 '비건'
카페 사장의 쉬는 날. 몸은 쉬어도 머릿속은 카페 일로 가득한 토요일이다.
책상에 자리를 잡고 <혼모노>를 읽다 문득 요즘 계속 머리를 맴도는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비건' 디저트였다.
카페를 운영한 지 벌써 5년째. 처음엔 그저 맛있는 디저트를 만들어 드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아내와 함께 다양한 디저트를 내놓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 뭔가 변화를 느낀다. 주 고객층인 여성 손님들의 관심사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엔 단순히 "맛있으면 장땡"이었다면, 이제는 "건강하면서 맛있어야 한다"로 바뀌고 있다.
카페의 대표 디저트는 브레드 푸딩과 쿠키다. 거기에 더해 이미 쌀가루로 만드는 몇 개의 디저트가 있다. 최근 들어 손님들이 디저트를 고를 때 좀 더 신중해지는 모습을 자주 본다.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관심을 갖기도 하고. 쌀가루가 들어갔다고 하면 조금은 신기하게 보시기도 한다. 직접 비건 디저트를 문의하신 분은 아직 없지만, 손님들의 말과 행동에서 작은 변화가 조금씩 느껴지고 있다.
손님들의 변화를 느끼면서, 나 또한 변화를 시도해보고 싶다. 손님들께 좀 더 건강한 디저트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커지고 있다. 맛있으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그런 디저트를 준비하고 싶다.
전에도 몇 번 들어본 적은 있지만, 오늘은 '비건'이라는 단어를 처음 제대로 검색해 봤다. 부끄럽지만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몰랐다. 검색 결과 생각보다 간단했다. 동물성 식재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것. 고기, 생선은 물론이고 유제품, 계란까지 모두 제외. 우유 대신에 두유나 아몬드 밀크, 식물성 오일이나 코코넛 오일을 사용한다고 했다.
머릿속 어디선가 경보가 울린다. 계란과 버터 없이 어떻게 디저트를 만드는 거지? 내가 아는 레시피에는 이 두 재료는 꼭 들어가는 재료이다. 카페의 인기 디저트 메뉴에 버터와 노른자 또는 계란이 들어간다. 특히 쿠키는 100% 들어가는 상황이다.
포기하기엔 너무 일렀다. 유튜브에서 검색을 하며 정보를 모았다. 생각보다 유튜브에는 비건 디저트 레시피 영상이 있었다. 그리고 비건용 버터가 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영어로 검색했을 때에는 좀 더 다양한 레시피를 볼 수 있었다. 어쩌면 비건 디저트에 이제야 관심을 갖는 건 조금 늦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몇 시간의 탐색 끝에 다행히 재료는 갖고 있었다. 충분히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물론 몇 가지 재료는 새롭게 구매해야 하지만, 충분히 테스트용으로 만들 수 있을 거 같았다.
이제 다음 단계는 "실행"이다. 아직 만들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고민들이 몰려왔다. 기존 디저트를 유지하면서 비건 디저트를 추가로 테스트할 수 있을까? 최소 3가지는 만들어봐야 할 텐데, 과연 시간이 될까? 비건 디저트의 보관 기간은 어떨까? 실온에서 판매해도 괜찮을까? 냉장에서 판매하면 어떻게 되지? 등. 5년간 나름 카페를 운영하면서 쌓은 경험도 '비건'이라는 단어 앞에는 무용지물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우스웠다. 아직 만든 것도 없는데 판매 걱정까지 하고 있는 내 모습이. 그래서 정리한 건 "일단, 만들어보기라도 하자."이다.
거창한 계획보다는 필요한 재료를 사고, 재료 소분을 하는 순간 끝까지 만들 거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다음 주 중 하루를 정해서 첫 번째 비건 디저트를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다음 주에 실제로 만들어보면, 분명히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부족한 부분을 하나씩 채워나가든지, 더 맛있게 하기 위해서 방법을 찾지 않을까?
쉬는 날의 끝자락, '비건'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다음 주 계획을 조금씩 세우고 있다. 손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주말 쉬는 날에도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카페가 될까? 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조금이나마 손님께 기억에 남는 카페가 되고 싶다. '비건'이 그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